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31
['木魚' 96 - 꽃지를 낚다]

거대한 눈의 동공 속으로 벌써 하얀사람의 팔꿈치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청둥이가 또 눈물을 뿌리며 나에게 외쳤다.

‘이 쓸모없는 인간아! 하얀사람을 잡아당겨서 빼내야 된다구!
저대로 내버려 두면 하얀사람은 죽는다‘

하얀사람이 오히려 편안한 얼굴로 청둥이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욱 투명해졌다.

‘흐흐흐 청둥아! 어느 것도 두 번 죽을 수 없단다. 흐흐흐 이 바보야!
빨리 목어를 일으켜야 된다구. 목어의 목이 형편없이 틀어져 있어.
왼쪽 아가미를 힘껏 쪼아라!‘

청둥이가 목어의 이마 위로 기어가서 발을 구르며 다시 악을 썼다.
그리고 나의 발목을 날개로 감고 목을 아래로 길게 빼어 목어의 왼쪽 아가미를 되는대로 마구 쪼아댔다.

‘아저씨! 이 바보 멍텅구리 목어야! 제발 좀 움직여봐!
아저씨가 움직이지 못하면 우린 다 죽는다구!‘

내가 하얀사람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흐흐흐, 우린 또 언젠가 다음에 꼭 만날 것이다.
그땐 나도 너의 한소리에 저승길로 올라가겠다. 그렇게 해 줄 수 있겠지?’

‘그래! 내가 다음에 만나게 되면 너의 영혼을 정성껏 씻어서 하늘길로 평안히 모시겠다 ’

‘그래... 약속해....다음에....’

하얀사람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깨와 얼굴이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둥이가 목어의 아가미를 마구 쪼아대다가 동공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하얀사람의 남은 몸둥이를 보면서 목이 메었다.
목어가 심하게 흔들렸다. 목어의 목둘레 여기저기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목어의 아가미가 크게 열리면서 막혔던 숨을 길게 내쉬고 몸을 움직였다.
청둥이가 펄쩍펄쩍 뛰면서 목어에게 말했다.

‘꽃지를 찾아야 돼!’

꽃지가 거대한 눈 아래쪽에 엉켜있는 뿌리들 속에서 청둥이를 불렀다.
하얀사람의 삼지창이 거대한 눈의 동공에 박히면서 그 충격으로 모든 뿌리들이 돌돌 말린채 서로 엉켜 있었다.
그리고 삼지창이 박힌 고통 탓에 시야가 보이지 않거나 하얀사람을 빨아들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인지
뿌리들은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곳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꽃지를 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또 뛰어내리려고 채비를 하는 청둥이를 목어가 말렸다.

‘안돼! 저 붉은 뿌리를 건들면 안돼! 우리는 다시 휘감기게 된다’

내가 목어에게 물었다.

‘꽃지가 갇혀있는 엉킨 뿌리들 가까이엔 접근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

‘청둥아! 꽃지를 꼭 데리고 나가야지?’

‘엉! 이 나약한 인간아.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네 몸을 잠깐 빌리자’

나는 청둥이의 두발을 나꾸어 채서 손아귀에 꽉 쥐었다. 그리고 목어의 턱 밑으로 급히 내려가
나의 두 발목을 목어의 입속에 넣어 걸고 거꾸로 매달렸다.
거대한 눈의 동공 속으로 하얀사람이 벌써 무릎까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청둥이가 내 손에 거꾸로 매달린 채 날개를 휘저으며 버럭 화를 냈다.

‘괙괙괙 왜 그래! 인간아. 너 뭘 하려고 그래? 엉! 날 거꾸로 쥐고 어떻게 할 판이야?’

‘목어! 시작해봐’

목어가 턱밑 지느러미로 물을 저어 엉킨 뿌리들에 빠르게 다가가 왼쪽으로 몸을 뉘면서 방향을 틀었다.
목어의 입에 거꾸로 매달린 나의 몸이 목어가 방향을 트는 원심력에 의해 엉켜있는 뿌리들 쪽으로 쏠렸다.

‘청둥아 네가 고개를 길게 빼면 목의 하얀 띠는 더욱 멋지게 빛나지.
자! 이 다리도 길게 뻗고 허리도 길게 뻗고 목도 길게 뻗고 주둥이도 꽉 다물어서 쭉 내밀어라!
그래, 날개는 옆구리에 단단히 꽉 붙들어 매고! 붉은 뿌리에 스치지 않도록 몸둥이를 최대한 길쭉하게 쭉 빼라구!’

나는 목어의 입에 거꾸로 매달려 청둥이의 발목을 손에 쥐고 온 힘을 다해 허리를 길게 빼어
엉켜있는 붉은 뿌리들 사이로 집어넣었다.
청둥이도 발목을 내 손에 맡겨둔 채 허리와 목을 길게 빼어 꽃지를 향해 주둥이를 쭈욱 내밀었다.

‘지금이다! 꽃지는 집게발로 청둥이의 부리를 단단히 물어라!’

꽃지가 뒷발에 힘을 주어서 뛰어 오르며 집게발로 청둥이의 주둥이를 힘껏 물었다.
나는 꽃지가 청둥이의 주둥이에 매달린 것을 확인하고 목어의 입속에 든  내 발목을 굴렸다.
목어가 알았다는 듯이 급하게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엉켜있는 붉은 뿌리들 속에서 청둥이와 꽃지가 빠져 나오다가 웅크리고 있던 붉은 뿌리의 끝에
청둥이의 날개가 스쳤다. 붉은 뿌리가 움찔하더니 두어번 꿈틀거리다가 주둥이에 매달린 꽃지를 보고 달겨들었다.
그것을 보고 악을 써대려는 청둥이의 주둥이를 꽃지가 더욱 강하게 물었다.
붉은 뿌리가 우리의 뒤를 따라 솟아서 낼름거리며 꽃지를 덮치려고 날카로운 끝을 구부려 세웠다.
꽃지의 집게발에 물린 채 청둥이의 주둥이가 신음하듯이 악을 썼다.

‘괴윽 괴이익! 쁘릐그... 끗즈가 우흠해! 괴이윽 괴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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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1 / '木魚' 96 - 꽃지를 낚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1-01 13:13
조회수: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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