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종이에 먹과 수채/08.03.01
['목어' 08 - 솟구쳐 오르다]

내 몸이 솟구쳐서 위로 오를 때 어떤 막연한 희망이 나의 피부를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작정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다.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서 위를 향해 한껏 솟구쳐 오르면서 내 가슴은 자꾸만 희망을 만들고 있었다.

두 손을 머리위로 내밀고 허리를 곧게 편 채 양쪽 발로 번갈아가며 물을 밀었다.
마치 나는 한 마리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희망의 기분을 만끽했다. 급하게 스쳐지나가는 물이
나의 피부에 덕지덕지 묻은 절망의 더께를 벗겨내 주는 것 같았다.
수면으로 가까워 질 수록 주변은 조금씩 더 밝아졌다.
머리가 굼실대는 수면을 쪼개면서 먼저 튀어 오르자
내 몸은 거의 가슴께 까지 세상에 내던져지듯이 솟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시화바다의 한 가운데는 안개가 없었다.
오른쪽으론 도시가, 왼쪽엔 저울섬 형도가 보였다. 형도 너머로 대부섬 황금산이 빛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 쪽엔 누런 안개 위로 공단의 굴뚝과 고층 아파트들이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어
시화바다 위에 떠있는 나를 감시하듯 바라보고 있다.
바깥에서 멀리 바라보니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로봇들 같았다.
고딕양식의 하늘숭배를 흉내 낸 검은 굴뚝과 고층 아파트들이 누런 안개를 뚫고
다시 하늘마저 뚫으려고 오후의 햇빛에 희빈득 거리고 있다.
잘 갈아놓은 날카로운 송곳 끝처럼 하늘을 향해 도열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도시를 사랑한다. 도시도 나를 사랑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줄 준비와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도시와 나는 서로 사랑이라는 날 선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하필이면 도시를 떠나버린 누이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도 역시 도시가 나에게 겨누는 사랑싸움의 애증이 묻어난 칼날이기도 했다.

눈부신 햇빛이 사방천지에 가득한 봄날이었다.
이 도시 때문에 실연당한 누이를 데리고 도시의 끝에 있는 오이도 바닷가로 낚시를 갔다.
물론 누이가 요청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심각한 상황을 위로라도 할 겸 소풍을 나온 셈이다.
물에 낚시를 담군지 두어 시간이 지나도 전혀 입질이 없었다.
누이와 나는 낚시를 핑계로 그저 따사로운 봄바람을 맞으며 수면에 꽂힌 투명한 낚싯줄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두어 시간이 흐른 뒤에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낚시도구들을 챙겼다.
낚싯줄을 감던 누이가 깜짝 놀랐다. 누이의 낚시에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힘없이 끌려 나왔던 것이다.
누이는 낚싯줄을 들고 눈부신 햇빛에 작은 물고기를 비쳐 보았다.
멀겋게 투명한 작은 몸짓이 한번 크게 뒤틀더니 바르르 몇 번 더 떨다가 금방 조용해 졌다.
날카로운 낚시가 물고기의 작은 입을 야무지게 꿰어 벌써 아가미 근처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 작은 미물을 햇빛 아래 유심히 비쳐보던 누이의 어두운 선그라스 아래로 하얀 눈물방울이 미끄러져 내렸다.
누이가 갑자기 그 미물을 자신의 발아래 내동댕이친 다음에 운동화 발로 몇 번이고 짓뭉개버렸다.
발아래 흙과 작은 물고기가 서로 뒤섞여져 아무런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 때 까지 짓뭉갰다.
낚시도구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기던 내가 뜨악해져서 물었다.

‘왜 그래?’

‘그냥...’

‘잔인하게 시리...’

‘그래, 난 이 도시보다 더 잔인해져야 돼!’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누이의 눈은 검은 선그라스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신적 상처를 당한 사람은 어느 순간 상처를 준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멸시한다.
그것은 이 도시가 강요했던 열등의식을 몸속 깊이 기억하고 보관하고 있는 사람의 망상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누이는 밝은 얼굴로 이 도시를 떠났다.
그날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우리들이 낚시를 했던 바닷가는 이미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나는 누이의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서해 큰 바다를 향해 힘차게 팔을 저어 나갔다.
내가 마음껏 헤어가고 있는 이 바다 속엔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여태껏 목숨을 부지한
마지막 남은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 바닥 빌딩숲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둔중한 그 괴물이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까지 귀가에 맴돌고 있었다.

‘나? 물고기지. 나무로 만든 물고기... 木魚!’

그러다가 문득 저 바다가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모두 막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 끝에서 내가 마치 바다감옥에 갇혀 있다는 갑갑증이 나를 덮쳐왔다.
요즘은 무엇이든지 모두 일종의 ‘산업’으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가두어서 모두 급하게 죽이거나 천천히 죽이거나 썩혀서 망조 들게 한 다음에
서서히 생명을 하나씩 살려낸 척하고 환경을 복원한 척하면서 이런 결과들을 돈벌이로 연결시켰다.
실제 싱싱한 꽃 한 송이 보다는 잘 만들어진 조화 한 송이가 더 비싸듯이 도시는 이렇게 먹고 살아갔다.

바다 감옥... 그렇다. 나는 바다 감옥에 든 죄인이다. ‘나’라는 생각 자체가 죄의 근원이다.
우리의 맨 첫 조상이 과일 한 개를 훔쳐 먹었다는 죄 때문에 그들의 후손인 60억 인구가 모두 죄인 신세가 되었다.
가장 혹독한 연좌제다. 그것은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가 지은 죄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에게 연좌제로 얽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이 넓은 바다에서조차 내 한 몸 숨길 곳이 없다. 어디로 딱히 갈 곳도 없다.
나는 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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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54 / '목어' 08 - 솟구쳐 오르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2-09 11:37
조회수: 4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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