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구산동 막사의 전투

비가 숨쉬듯 온다.
비가 막사의 함석지붕을 세차게 두들기다가
어느덧 잦아들어 가끔 먹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얼핏 보이다가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빗줄기가 거세진다.
하늘을 가득 덥고 있는 먹구름이 숨을 쉬는가 보다.

막사의 모든 것이 습기가 가득하여
지금부터 사방군데서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다.
곰팡이는 아무도 모르게, 하늘도 모르게,
얕은 틈바구니에서 시작하여
금방 뿌옇게 덮어버린다.

스믈스믈
벌레들이 기어나온다.
벌레.
아무리 잡아내도 소용없다.
막사 밑 땅 속에 막사크기의 벌레 집이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이놈들이 인해전술, 아니다. 충해전술로 밀어부치고 있다.
이번 여름 전 까지만 해도
이넘들이 서로간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었다.
이를테면
막사에 손님이 왔을 때는 이놈들 스스로 출현을 자제했고
그러나 손님이 있든 없든 최소한의 예의, 즉 규율을 깨는
꼴통들이 하나 둘 쯤 있어도
손님이 있을 때는 요 꼴통 벌레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나도 자제했다.

불가의 말씀을 빌릴것도 없이
귀한 손님에게
갖잖은 벌레 한마리 뭉개 죽이는 모습을 보여서 나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것이 싫기도 했지만
벌레를 뭉갤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런 욕찌거리를 들려주기 싫은 이유였다.
"씨팔! 이 ㅈ 같은 것들이! 앗나! 죽어라! 죽여! 문데!"  

이렇게 벌레와 나는 서로간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면서 공존했다.
그런데 이넘들이 지난주 어느 어간에서 부터
귀한 손님이 방문해 있을 때도,
혹은 식사를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이구석 저구석에서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벌레들은 세 종류다.
바구미 같은 콩벌레 - 작은 멧돼지다.
짧은 다리가 여럿달린 벌레 - 요놈은 매우 느리다.
긴다리가 여럿 달린 벌레 - 요놈은 빠르기가 미친년 널뛰듯 한다.

요즘 나는 상당히 잔인해졌다.
심지어 스믈스믈 기어가는 벌레를 잡아 죽일때도
욕찌거리를 이미 뛰어 넘어 인간을 함부로 폄하하는 욕을 서슴치 않는다.
저 세가지 종류의 벌레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하나씩 지어 주었다.
그 이름이라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내가 꼴 보기 싫어 하는 인간의 이름을 잠깐 빌린 셈이다.

그래서
벌레를 잡아 발 뒤꿈치로 뭉게 죽일 때 질러대는 소리가 이렇다.
"요 개새끼! 벌레 같은 놈 * * * 야! 뒈져라!"

아!
막사에서는
매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납짝하게 개떡으로 변한 개같은 인간들의 시신이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고 있다.

숨쉬듯 내리는 비와
끈적끈적한 습기와
뿌연 곰팡이와
벌레들.

이것들과의 전투가 매일 계속되고 있다.          [0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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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산동 막사의 전투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4:19
조회수: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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