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아트인컬쳐 2010.6월호 [프리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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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오월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군대에 간 아들이 지어미 지아비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무도한
국가폭력이 자행되었던 역사다.
이 무고한 수많은 주검을 딛고 우리 역사는 비로소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자기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한반도의 남쪽에서 벌어진 학살극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지만 그 분노는 독백의 웅얼거림에 불과했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신군부세력들이 학살의 진상에 빗장을 걸어 잠궜지만
가장 먼저 그 금단의 빗장을 열었던 것이 예술가들이었다.
각 지역 현장 마당극패 들은 물론 소설가와 시인들이 학살의 진상에 관하여 외쳤다.
그 누구보다도 시지각(視知覺)으로 훈련된 화가들의 직감과 예감은 더 빨랐다.
학살자들이 광주의 진상을 감추기 위해 잠궈 놓은 문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현대’를 유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화가들이 가장 먼저 온 몸으로 느낀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서사(敍事)를 가지고 있다. 유폐된 ‘현대’가 강제하는 현실은
이들의 상상력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때문에 이 조각난 현실을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각자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타의에 의해 유폐된 ‘현대’를 강요당했던 화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고,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분노와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화가들은 압살당한 ‘현대’를 다시 살려내는 무당으로써 자기 치유의 힘을 갖게 되거나
혹은 상처를 보듬은 채 살아가는 힘을 획득하게 되었다.

하여, 화가들은 스스로 모여서 전시(展示)라는 굿판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대정신展, 토해내기展, 해방40년역사展, 두렁展, 땅展, 광주자유미술인회展, 시민미술학교展, 삶의 의식展, 20대힘展....
감히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그림 굿판이 1980년대 내내 벌어졌다.
화가들은 굿을 베푸는 사제(司祭)로써 그 고통스러운 임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굿은 이미지(視覺)와 소리(聽覺)로 이루어진다.
굿을 베푸는 司祭는 시각이미지로써 세상에 現象을 알리고 ‘소리’를 통해 치유를 한다.
司祭로써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그동안 사람들이 애써서 외면해 왔던 유폐된 ‘현대’의 실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은 지난 상처와 현실을 보게 되고, 극복의 대안을 구상한다.
五感은 視知覺으로 부터 열린다.
회화가 敍事性을 획득할 때 그 논리적 구조의 형상화에 의해서 ‘이미지’와 ‘소리’를 함께 갖는다.
그림에 나타난 각종 형상들은 각기 그 나름의 미학적 원리에 의해 사람의 정서를 움직인다.
정서적인 것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강한 힘으로 작동한다. 정서의 움직임은  
대개 무의식중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
그들 화가들이 그린 화폭에는 역사의 진실뿐만 아니라 한반도 풍광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한 풍광이라면, ‘순수한 자연’은 얼핏 악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에 의해 사건을 은폐하는 중요한 정책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한반도의 '순수한 자연' 속에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그려 넣었다.
한없이 아름다운 이 땅의 풍광과 이곳에서 벌어진 잔혹한 국가폭력 사이에 미학적 긴장이 형성된다.
이 긴장관계가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유형무형의 것들에 대하여 저항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視知覺은 일종의 상징이다.
굿판에서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과도 같다.
이 화가들은 산산조각 난 ‘현대’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司祭로써 자신들의 그림을 통해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상징을 만들어 냈고 그리고 그 그림들을 음식처럼 젯상에 올려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음복(飮福)하게 했다.

1980년대 내내 화가들은 그림 굿판을 통해서 부당한 권력자들에 의해 감추어진 ‘현대’를 되찾아 사람들 앞에 펼쳐보였던 것이다. 즉,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이자 예술가의 보편적 지향인 ‘자유,인권,평화’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진정한 현대미술의 정신은 ‘1980년 오월’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국가와 정부가 몸을 부비면 항상 무한권력을 탐한다.
바르지 못한 권력은 항상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을 부른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유를 유보하고, 국가의 이름으로 인권을 억압하고,
국가의 이름으로 평화를 거명하면서 전쟁의 기운에 불을 지핀다.
‘죽이기’가 ‘살리기’로 치환된 4대강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언어가 철저하게 뒤집혀진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도 두렵다.
예술가는 자기성찰로 찾아낸 ‘현대’를 끊임없이 투영해내야 한다.
예술가의 몸이‘현대’를 떠나면 가공되고 조작된 현실과 역사 속에 자기를 가두게 된다.

오늘, 우리들이 성찰해 내야 할‘현대’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오늘은 1980년대 보다 훨씬 더 화가들의 치열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혹여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을 포기 했는가.
아니다.
사실은 상상력을 포기했기 때문에 현실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감히 광주오월의 고통과 저항을 넘어서서 창조적 예감을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감내해야할 창조적 고통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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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예술가들에게 광주오월은 무엇인가/ 홍성담
이름: damibox


등록일: 2011-05-20 14:22
조회수: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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