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황해문화 가을호] 30매

공동체적 신명의 기억투쟁
-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전 <홍성담-흰 빛 검은 물>


김종길


“속가슴을 온통/짓붉게 펼쳐 내놓은/아, 넋들의 최후/그리고 시작!”(김준태,「노을」)이라고,
목을 놓았던 광주 5․18민중항쟁이 30년을 맞았다.
그때로부터 30년을 돌아서 맞이하는 이 해는 새로운 ‘맞이함’이어야 하나, ‘양복 입은 전두환’으로
불리는 MB정권은 빛 고을의 벼랑에서 5월의 기억을 수장시키려 한다. 그들에게 광주는 여전히
불온하고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여기의 광주가 아니라 ‘광주’라는 하나의 상징,
하나의 세계, 하나의 외침 때문에.
홍성담은 30년을 오롯이 그 상징의 열매를 위해, 그 세계의 깊이를 위해,
그 외침의 미학을 위해 존재한 거의 유일한 작가이다. 모두가 역사의 물결을 따라
천변만화의 세계를 맛보면서 자신들의 길을 좇아갔으나
그는 ‘광주’에서 미학적 화두를 꺼내고 깨치고 그것을 확장시켰다.
그가 5월 광주를 체험한 뒤 온 몸으로 응집한 ‘신명의 미학’은 시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을 조금씩 변화시켰으나 그 고갱이는 바뀐 적이 없다.
그의 신명은 살림의 경우에도 죽임의 경우에도 언제나 능동적 주체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신명에서 전투적 신명으로 그리고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통일의 미학과
그 모든 세계를 초월해 동아시아의 미적 원형으로 향하는 현재의 화두까지
그는 ‘광주’라는 순교, 부활의 영토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전 <홍성담-흰 빛 검은 물>(4.24-6.6)은
30년의 세월을 거쳐 영근 그의 회화적 세계를 확인하고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실을 몽타주한 거대한 신명의 미학]

이번 전시에는 1999년 개인전 <탈옥>(가나아트센터)에서
2009년 개인전 <야스쿠니의 迷妄_3>(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운영 평화공간Space*Peace)에
이르는 10년간의 작품이 총 망라되었다. 게다가 최근 새로운 형식으로 실험하고 있는 ‘문자도’와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었던 ‘그림일기’ 연작까지 출품되었으니
작가 홍성담의 진면목을 판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또한 상록전시관 1~2층 7개의 공간에 펼쳐놓은 그의 작품들은 그가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그가 독자적으로 일궈놓은 회화적 형식과 구조로 완성되었는데,
거기서 나는 두 개의 큰 특징을 산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 그는 하나의 화면에 모순의 현실과 들끓는 현실, 사건의 현실을 몽타주 화법으로 엮어
세계의 풍경을 직조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수라(阿修羅.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의 현실을 유토피아적 판타지로 바꾸지 않고 그것들을 한데 섞이게 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실체를 드러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1980년대의 오월판화 <사시사철․봄>에서 처음 보여주었던 이 형식은
최근의 일본 야스쿠니 신사를 주제로 한 연작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일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신 몽유도원도>(2002)와 <가화假花>(2003), <치란의 밤>(2008),
<야스쿠니의 미망-2>(2008), <야상곡 야스쿠니-2>(2008), <야스쿠니의 미망-5>(2010)와 같은
대작들에서 홍성담 회화론의 미적 전형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 제작된 <야스쿠니의 미망-5>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냈던 기이하고 잔혹하며 두려운 풍경이,
중앙의 한 여인을 중심으로 좌우 여러 겹으로 새겨져 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가 아니라
모든 시점은 중앙의 한 여인을 향하되 각기 다른 몸짓과 형상을 취하고 있으며,
임신한 여인들과 군인들, 망령들, 잡귀(오니)들, 그리고 아이들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검은 바탕(물)위에 구현된 이 화면의 세계는 야스쿠니라는 전대미문의 신화적 묘지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육하고 강탈했으며, 억압했는지 보여준다.
그 묘지는 민중의 피와 뼈를 먹고 자랐던 것이다. 그 묘지는 결국 죽임의 신화지가 되고
권력지가 되었다. 죽은 자들이 신으로 부활해 다시 산자들을 욕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본의 현실이며 또한 이 회화 속 현실이다.

그의 몽타주 기법은 김지하가 「현실동인 제1선언」에서 갈파했던 몽타주론과 다르지 않다.
김지하는 선언문에서 몽타주에 의한 현실의 총체적 반영과 현실모순의 선명한 집중표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몽타주의 소격효과는 관조심리 내부의 대상에 대한 기초적 친숙감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소외감을 동시에 조성시킴으로써 비판적 기분을 유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형식의 원형을 안악 고분벽화, 도석화, 불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로 고구려 벽화나 고려 불화는 몽타주 화법의 한 경지를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몽골의 전통화 ‘주락Zurag’에서도 몽타주 화법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울산의 반구대암각화도 다르지 않다. 특히 주락은 유목민들의 생로병사를 하나의 화면에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몽타주 화법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것은 동아시아의, 아니 오랜 인류의 미학적 양식일지도 모른다.

홍성담이 몽타주 화법에 대한 역사적 근거와 해석을 통해
자신의 형식으로 창출했다고는 볼 수 없겠으나 면면히 이어졌던 동아시아의 전통이
그를 통해 발현되고 있음은 충분히 목도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고대 동아시아 샤먼의 후예로써 끝없이 이어지는 이 모순의 세계를
모순의 화법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몽타주는 그 자체로 모순의 형식이다. 모순의 형식이 강조될 때 즉 가지런한 질서가 아니라
엇박자와 같은 충돌, 개입, 오버랩일 일어날 때 ‘사건’은 창조적 해석을 낳는다.
그래서 그가 몽타주로 완성한 화면들은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이 강조되며 실재와 비실재,
현실과 초현실, 그리고 그것들의 은유와 상징이 섞여서 웅혼한 장엄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는 그의 화면 속 인물들의 ‘알레고리allegory’를 통해 신명의 미학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제2선언문 <신명을 위하여>에,
“우리는 우리 민중예술의 기본 개념이 되어 온 제의와 놀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이러한 신명이야말로 현대 예술이 잃어버린 예술 본래의 것이었으며,
집단적 신명은 바로 잠재된 우리 시대의 문화역량이기 때문이다.”고 적고 있다.
신명은 흥이요, 멋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신명은 단순히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흥과 멋이 아니다.
거기에는 신이, 영성이, 천지신령이, 그러니까 몸과 목숨을 아우르는 제의로서의 흥이 있고,
또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멋이 있다. 그의 회화는 때때로 죽임의 장면들로 가득하며
어둡고 음습한 풍경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장면들 옆으로는 그것을 극복하는 살림의 몸짓과
생명의 포태가 충만하다.
2002년 월드컵과 2008년의 ‘촛불’을 겪으면서 그는 집단적 신명의 실체를 엿보았고
동시에 그 이면에 똬리를 튼 어떤 어둠의 절대성을 발견했다. 그
가 그린 월드컵과 촛불의 풍경은 그래서 신명의 양극으로서의 음양이 동시에 출현한다.
거기에는 흥과 취의 함성이 물결치면서 멋으로 상승하는 미의 숭고가 발현되고 있으나
반면 전체주의적 집단성이 군무를 통해 드러날 때처럼 추의 숭고도 발현된다.
그는 ‘미추美醜’의 양극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홍성담에게 있어 알레고리는 리얼리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홍성담의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알레고리는
비단 서구적 리얼리티로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다.
그의 회화는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이고 제의가 펼쳐지는 들이며 산이기 때문이다.
달리말해, 접신한 무당이 쏟아내는 공수처럼
그의 회화는 과학적 사실주의로 해석될 수 없는 곳에 위치한다.
가장 엇비슷한 개념이라면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 환상적 리얼리즘일 것이다.
실재와 비실재, 현실과 초현실이 이분화 되지 않고 하나의 화면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현실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명의 미학은 긍정과 부정이 부서지고 삶과 죽음이 어울리며,
슬픔과 기쁨이 섞이는 이종교호 결합의 역동이자 만신이 굿의 끝에서 성취하는 흰 빛과 같다.
죽은 자와 산자를 해우시키는 빛, 격정과 분노를 평안과 용서로 화해시키는 빛,
하늘과 땅이 교합하는 빛, 거대한 흰 그늘과 같은 그 빛.  

<신 몽유도원도>에서 흰 빛은 물이다. 웅녀의 자궁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과 ‘소沼’는 희다(素).
여기서 흰 빛은 흰 물이면서 또한 푸른 물이다.
흰 것과 푸른 것이 만나 생명의 강줄기가 되고 하늘이 된다. 푸른 물과 푸른 하늘은 하나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별빛이 또한 희다. 그리고 그 반대편의 역에 검은 물이 고여 있다.
<가화假花>에서 흰 빛은 흰 꽃이다. 굿 꽃과 상여 꽃이 영성의 꽃이라면
‘가화’는 푸른 보리수의 열반의 꽃이며 당산의 꽃이자 신단수神壇樹의 신령한 꽃이다.
<치란의 밤>의 밤에서 흰 빛은 일본의 국장 국화가 아니라 수천수만으로 떠다니는 반딧불 정령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검은 물로 형상화 되었다.
<야스쿠니의 미망-2>에서 흰 빛은 흰 대지다. 죽음의 정령들이 산화되어 대지에 쌓인 흰 빛을 보라!
여기서도 역설은 신사와 천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검은 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야스쿠니의 미망-5>의 흰 빛은 흰 종이다. 그 종이는 고대로부터 신목에 매 달고 꽂았던
성스러운 종이다. 그의 작품에서 흰 빛과 검은 물은 현실을 직조하기 위한 상징과 은유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의 미학적 전통을 전유하는 매개적 개념으로 볼 수 있을 터이다.

[아나키즘과 기억투쟁을 위하여]

그는 1980년 5월 18일과 27일 사이의 10일이라는 시공간을 전세계에 유포하려는
아나키스트적 정신의 소유자다. 광주를 통해 그가 획득한 평화와 인권정신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오직 저항에 의해서 성취되고 체현되는 것이듯 평화와 인권도 마찬가지다.
‘10일’의 상징이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 아시아 연대의 상상,
동아시아 아키타입archetype의 복원을 뜻한다. 광주에서의 그 10일 동안 시민들은
남한의 법과 제도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러나 그 고립은 동시에 진정한 자율이면서 시민 자치의 공동체가 완성된 순간이기도 했다.
불과 10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자, 가난한자, 지식인, 노동자, 심지어 거지와 창녀의
구분이 사라진 유토피아의 현실을 체험했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무중력, 무진공의 세계에서
그들은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세계와 마주쳤던 것이다.
홍성담은 바로 그 세계의 새로운 완성을 위해 싸운다.
그러니까 민족주의 올가미로 목숨을 조이는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그 명분으로 세계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드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그런 전투적 신명이 야스쿠니 회화에서 아름다운 미학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아나키즘은 세계의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으로 치닫는 계급적 자본주의와
생명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전쟁기계들의 잔혹한 욕망, 그리고 종교와 종족,
민족의 이름으로 타종교 타민족을 약탈하는 야만성의 극복에 있다.
그의 회화는 그래서 그것들을 증거하는 욕망과 야만적 풍경을 떠나지 않으나
그렇다고 그곳으로 함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세계의 너머에서 오래된 동아시아와 만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동아시아 바로 그것이 그가, 그의 회화가 추구하는 미학적 원형이다.
흥미롭게도 1980년 5월 광주의 ‘10일’이라는 상징공간은
오래된 동아시아의 전통과 교통했던 기간이었다.
동학의 최제우와 강증산이 예지했고 싸워서 성취하려 했던 세계와 그 세계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홍성담은 기억투쟁의 지속을 위해 회화적 신명을 놓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가 작고한 김남주처럼 홍성담을 광주와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하고 전유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 기억으로부터 총체적인 홍성담의 미학이 진일보하고 또한 소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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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동체적 신명의 기억투쟁 _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전 <홍성담-흰 빛 검은 물> / 김종길(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
이름: damibox


등록일: 2010-07-27 12:27
조회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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