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담과의 대담 - 뒤셀도르프 헤르트의 붕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 즈음해서
유럽사람의 시각은 세계화의 승자편에 서있는, 분단된 나라의 남쪽을 감탄과 경이 그리고 두려움 없이 바라본다. 남한이 가져온 경제성장의 기적은 어느 다른 나라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군부독재는 극복되었고, 1980년대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은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으며, 사회의 민주화는 완성된 듯 하여 문화의 자유보장이 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올해에 있었던 프랑크 푸르트의 책 시장 또한 흥미진진한 한국문학의 다양성으로 우리를 감탄케 했다. 만일 게다가 북한과의 통일이 이뤄진다면, 이 염치없는 요약을 용서하시길 바라며, 한국사람 뿐만의 자랑이 아니라 세상의 만족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붕커 교회에서 지금 보여지는 전시는 „Resistance & Meditation“ 그리고 „나는 칼. 낫기 위해서 상처를 입힌다“ 라는 인용구가 부착되었다.
Einseitig.Info (Dirk Jürgensen): 오늘의 한국은 어디가 병들어 있으며, 칼을 어디에 사용할 곳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Hong Sung-Dam:
한국(한반도)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최소한 18세기 까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이 아름답다라는 의미는 그저 정체되어 있는 봉건사회의 고답적인 뜻이 아니라,
18세기 말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잘 견디어 내면서 사회 기층의 변혁의 힘이
[갑오농민혁명]으로 주체적인 근대성에 눈을 뜨게 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아시아 공영권을 앞세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은 한반도의 아름다운 꿈을 모두 무산시키고 말았다.
한반도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써 精神的, 人的, 物的으로 엄청난 수탈을 강요 당했다.
이를 테면 일본극우주의자들의 탯줄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쿠니神社]에 당시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태평양 전쟁에서 총알받이를 했던 한국인 징용자들 약 2만명의 위패가 현재까지도 안치되어 있다. 그들이 죽은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천황의 군대로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해방된 한반도는 미국의 동아시아의 군사전략적 필요에 의해 민족분단이라는 수치를 겪어야 했다.
이후 민간인 200만명이 학살당해야 했던 [한국전쟁]을 겪고나서
남한은 세계 초유의 친미반공국가가 되었으나, 1960년 [4.19 혁명]에 의해서
주체적인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곧 그 이듬해 군부쿠데타에 의해서 민주주의의 꿈은 좌절되었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했고 해방직후 남한정부의 군부에서 좌익반란사건을 주도했던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의 이러한 경력의 컴프렉스를 감추기 위해서 더욱 친미반공국가를 공고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사회 각계각층의 모든 요직에 친일세력들이 온존하며 자기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이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강고한 반공국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국토의 분단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있다.
1905년 일제 침략 36년, 그리고 특히 반공군부정치 약 40년 동안 한반도의 모든 것은 [반쪽]이었다. 한반도의 뇌는 한쪽만 작동했다. 한반도의 새는 한쪽 날개로만 날았다.다른 한쪽을 생각만 하는 것 조차 [반공법-국가보안법]으로 엄하게 다스려 졌고, 군사정권은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울 때 마다 반공법의 칼날을 미친듯이 휘둘렀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평생을 지내거나 사형당하거나 혹은 은밀하게 피살당하거나 심지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기도 했다.
한반도의 분단은 각 개인에게 몸 속 깊이 들어 앉아서 肉身과 靈魂의 분리까지 강요했다.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하자면 분단의 벽은 한반도를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모순과 갈등이 예술에 있어서는 물론 창조의 훌륭한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에서 보여주고 있는 문학예술의 힘은
대개의 경우 이러한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려고 했던 당시 작가들의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투옥과 목숨값을 지불하고 [自由 비슷한 것]을 얻었다.
지금 한반도 남쪽은 어떤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남쪽이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민족의 영구적인 분단을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나는 지극히 자유스러운 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바라보고 있다.
첫째,
나는 [분단]이라는 [틈새]를 타고 세상의 모든 악마가 넘나드는 것을 경험했다.
이 [틈새]를 비집고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적 전략도 수립되고 있고,
이 [틈새]에서 군부의 권력이 탄생했고,
이 [틈새]로 국가주의가 횡횡 했고,
이 [틈새]를 타고 친일분자들이 아직까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고,
이 [틈새] 속에서 자본가의 민중 수탈도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틀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언제든지 국가주의와 국가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둘째,
자유는 한 개인에게나 한 사회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 잘못한 역사를 청산해 본 경험이 없다.
잘못된 과거에 대해 누구 하나 용서를 빈 사람도 책임을 진 사람도 없다.
자기책임에 대한 무경험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유가 과연 어떻게 변질 되어 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셋째,
위에 말한 문제들 속에서 우리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고 있는 삶의 보편적 가치가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한국은 [현대화]를 오로지 [경제적 발전의 추구]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한국의 경제는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보다 훨씬 더 혹독한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생명은 거룩한다. 아무리 하잖은 미물이라도 혹은 그것이 잡초 한 잎,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라도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여,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것은 나의 적이다.그리고 그러한 적들이 존재하는 한 내가 예술행위를 해야 할 이유이다.
한국사회에 대해서 위에 말한 문제들이 일정한 정도 해소되기 전까지는
나는 내 생명에 대해 항상 불안을 느낀다. 나의 생명에 대한 불안감 뿐만 아니라,
내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에 불긴한 징후를 느낀다.
Einseitig.Info: 세계화는 유럽에서는 다양한 차원에서 악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본의 세계화에서, 저인금 나라들의 일자리 조정에서, 테러의 세계화에서, 지역의 정체성상실에서, 세계전역에 걸친 문화의 통제에서 악마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홍성담씨 역시 메디어와 테크닉의 다양성을 사용하셨습니다. 회화. 시. 조각 그리고 더구나 비디오 퍼포먼스로 각기 다르게 예민해진 인간에게로 다가갑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홍성담씨는 본인의 예술을 재료의 다양성을 통해서 세계화합니다. 홍성담씨께 있어서 전통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그리고 세계화적인 양식의 사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고 유럽에서의 우리도 칼 역할을 하는 홍성담씨에 의해서 „상처받아야“ 하나요?
Hong Sung-Dam:
예술가에겐 [지옥]조차도 변혁의 대상이다.
[지옥]도 사람이 남아서 살아가는 한 그곳 삶의 보편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
나는 당연히 [지옥]을 선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예술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서 매체는 단순한 도구이다.
영상을 만드는 카메라의 샤터나 컴퓨터의 마우스는 단지 [페인팅 붓]의 의미이며
시를 쓰는 펜, 역시 그렇다.
그리고 동영상이 상영되는 모니터나, 혹은 연극의 무대, 원고지, 영화의 스크린은 단지 [페인팅 캔버스]이다.
이것들은 현대적인 매체라기 보다는 이미 고전적인 양식이 되어버렸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쟝르나 매체가 아니라 형식과 내용이다.
[빅 브라더]의 목표는 다양한 매체의 추구가 아니라, 同種 同流의 형식과 내용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도록 감시 통제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부르짓는 정보화의 요체는 그들이 이미 제시한 규격에 맞는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이것을 그들은 세계화를 위한 [보편성]의 획득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이라는 것은 [문화]를 자본화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문화의 세계화라는 코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각 지역의 예술가들이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형식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마음껏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물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미 인류는 피카소의 그 어려운 그림형상들도 탁월하게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셀 뒤상의 레디메이드 도 흡족하게 분석했다.
그렇다, 지금 악마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미국은 일찍이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를 배웠다. 미국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악마성은 어쩌면 서구 유럽의 역사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럽은 지구상에 엄청난 죄악과 모순을 남겼다.이러한 것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없이 현대를 극복할 수 없다.
혹시 만약 당신이 나의 작품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면,
나의 칼에 의한 상처라기 보다는
이미 오래 전에 [빅 브라더]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의 그림을 통해서 이제야 확인했을 뿐이다.
Einseitig.Info: 홍성담씨는 참선과는 거리가 멀게 예를 들어 비디오 작업에서는 기꺼이 도전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건 우리가 사는 시끄러운 현 세대에 대한 승인입니까(이 현 세대는 우리에게 종종 단지 도전자만을 인식하게 합니다)?
Hong Sung-Dam:
[명상]과 [저항]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저항]이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에게 겨누는 칼날이라면,
[명상]은 내 자신에게 겨누는 칼날이다.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를 닮아 버렸다]는
신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의문을 품었다.
혹시 오랜 세월 동안 파시즘의 국가폭력과 싸우다가 내 자신 스스로 파시즘을 닮아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했다.
사랑과 증오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이 서로 상대적 극점에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성찰을 부단히 해야 한다.
나의 [저항]은 저항을 위한 저항이 아니라 [저항]을 종결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 [테러 마켓]은 뉴욕 911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보면서 만들어 졌다.뉴욕 시민에겐 참으로 야박한 말이지만 911 테러로 제로 그라운드가 되어버린 이후에도 역시 왜 이런 참담한 테러를 당했는가에 대한 성찰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세계 유일제국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것에 급급한 것은 물론 이려니와 심지어는 [테러]까지도 브랜드 가치로 상품화하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나는 [테러마켓]이라는 무비작품을 통해서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나의 무비작품 [피의 강]은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cnn 에서 방영하는 이라크 전쟁 뉴스를 보면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환상에 빠졌다. 나 역시 어느새 그런 착각에 잠깐씩 빠지곤 했다.
한국전쟁과 월남전 그리고 수십년을 국가폭력에 시달려 온 나는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여, 내 자신 속 어느 구석에 마치 전쟁광적인 면이 없지 않은지에 대해서
성찰하는 의미로 작품 [피의 강]을 만들었다.
Einseitig.Info: 명상적인 것으로 되돌아 가지요. 붕커성당은 보통 갤러리가 갖는 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들으셨겠지요. 같은 장소에서 얼마 전에 전시되었던, 그리고 형식이나 내용적으로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보이는 오토 판콕의 작품들을 보고 나서, 특히 홍성담씨의 고무판화와 목판화가 홍성담씨의 작품들과의 대화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방공호가 홍성담씨에게 준 감성적인 영향은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건물의 역사와 홍성담씨 그림들의 역사와의 대화를 경험하셨습니까?
Hong Sung-Dam:
그렇다.
한마디로 요약하긴 힘들지만 나는 독일 붕커 전시회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국가주의가 만든 전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성당으로 위장하여 만들어진 반공호에서 국가주의의 국가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그림들을 전시한다는 것!
국가주의가 만든 전쟁에 의해 자신의 모든 삶이 유린 당한 경험과
국가폭력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삶의 경험이 서로 만났던 것이다.
둘로 분리된 안과 밖이 이곳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혹시 붕커 갤러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반공호]와 나의 그림이 만나는 구조나 컨셉트를 모두 이해하고 분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마 [심상치 않는 그 무엇]은 느꼈을 것이다.
[심상치 않는 그 무엇!]을 다른 말로 [징후] 혹은 [징조]라고 한다.
예술가는 바로 당대의 [징후]나 [징조]를 만들어 낸다.
그 [징후]가 그저 단순한 징후로 끝나지 않고 하나의 담론으로 발전하는 것에는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
Einseitig.Info: Einseitig.Info: 홍성담씨의 작업행위는 홍성담씨가 „반역자“로 낙인되어 징역살이를 해야만 했던 개인사의 극복을 의미하는가요? 그건 회상작업이며 치료의 차원이 될 수 있을까요? 항상 미래를 지양해야 하고 결국엔 잊어버려야 한다고 자주 외쳐대는 구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ong Sung-Dam:
대단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화가, 혹은 예술을 창조해내는 작가에게 국한하여 이야기 하자면....
제가 지금까지 예술행위를 해 오면서 주변 작가들이나 선배작가들의 경험을 보자면
첫째, 망나니 같은 삶을 살아가는 한 작가가 자신의 예술행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예술행위 속에서 자신의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둘째, 매 시기 문화의 일정한 양식이 새롭게 등장 할 때는 예술 자체의 변혁적 역동성에 의해서 아주 신선하고 참신한 정신이 뒷받침을 합니다만,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애초의 동력을 잃고 상업주의와 결합하면서 반드시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때 마다 새로운 예술의 정신으로 빛나는 작가들이 등장하여 타락한 예술史를
구원하더군요.
셋째, 예술의 근본정신은 혁명성에 있습니다.
진정한 작가는 오늘 아침에 이룬 것을 바로 오늘 밤에 때려부수고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창조행위의 가장 근본은 [자유의 정신]입니다.
하여, 예술가를 당대의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비유되기도 합니다.
당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감하는 예술가의 특별한 안테나는 당대의 보편적 삶의 가치를 규정하는 하나의 민감한 준거틀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엔, 예술행위가 안으로는 제자신에 대한 성찰과 지난 상처의 극복으로,
그리고 밖으로는 세상의 온갖 생명에 대한 억압구조를 극복해 나가는 것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감은 과거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사람]에겐 미래에 확정될 [결과]가 더없이 중요하겠지만
세상과 함께하는 [삶]에는 그 깐 넘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류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숭상하는 모순 때문에
절망의 길로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inseitig.Info: 지난주에 우리 Online-Magazin은 뒤셀도르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옷첸라트(Otzenrath)라는 동네의 소멸을 테마로 다루었습니다. 갈탄채석을 위해서 그 동네는 폐허가 되었으며 후에는 파헤쳐질 것입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이주를 했습니다. 선조들이 살았던 집을 떠나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들은 또한 책임자인 에너지 그룹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했답니다. 늘 그랬듯이 단지 그곳 주민들의 기억만이 남아있게 될 터이고, 그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손들에 의해서 해석될 사진이나 그림들만이 남아있게 될 테지요. 급성장하는 한국에서도 역시 그렇게 많지 않은 경이감으로 지난 역사의 흔적을 다룰터이지요. 어떤 그림들이 남아있을 것이며, 한 세기 후에는 어떻게 이해가 될까요?
Hong Sung-Dam:
[삶]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글로 기록된 역사가 당대의 삶을 모두 이야기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역사에 기록된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은 단 몇 줄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소설 [목로주점]이나 [제르미날], [레미제라블]에서 당대 민중들의 가쁜 숨결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리끼의 [어머니],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에서 러시아 혁명 당시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의 세밀한 호흡이 한 곳에 헝클어져 대지를 어루만지며 흐르는 거대한 강처럼 변해가는 진정한 [역사]를 만나게 됩니다.
도대체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이런 민중들의 거대한 삶은 하나의 작은 [흔적]으로만 취급합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가의 외로운 잡초 하나가 늦가을 찬바람에 말라가는 것을 [사라진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듯이 그것은 하나의 [기운]으로 남아서 우리 주위를 떠 돌다가
혹시 우리들이 다시 그와 같은 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의 [힘]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Einseitig.Info: 그림들은 도대체 지난 과거에 대해 사실적인 재 추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만일 비교할 대상이 없어도 아직도 사용합니까? 어쩌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만일 후세의 사람들이 오늘날에 제작된 그림들을 본다면, 사실성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후세들의 이해 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이 먼저 중요할 까요?
Hong Sung-Dam:
[사실적인 것]은 하나의 자료나 재료입니다.
밭에 뿌리를 박고 있는 배추를 보고서 우리는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배추를 재료로 사용하여 김치를 만들고, 그 김치를 우리는 음식이라고 이름합니다.
[사실성]은 그것 자체로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이 [사실성]을 바탕으로 형상화에 성공했을 때 무게있는 감동이 생성됩니다.
Einseitig.Info: 유감스럽게도 홍성담씨의 작품들에 대해서 붕커 교회에서는 2005년11월 25일까지만 경탄할 수 있어요. 이후에 독일의 어디에선가 또 다른 전시가 기획되어 있습니까?
Hong Sung-Dam:
이후 독일에서 전시계획은 없습니다.
만약 다시 독일에서 전시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 붕커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을 포함하여 저의 최근작들을 선 보이고 싶지만 요즘 덧없이 미쳐 날뛰는 모더니즘에 푹 빠져 있는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저의 그림을 초청하는 것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Einseitig.Info: 홍성담씨의 작품의 많은 부분을 시가 차지합니다. 지난 동안에
수많은 시가 독일어로 번역이 되었지요. 혹 가능하시다면, 우리 대담의 장식으로 시 하나를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 자리에서 깊은 사례의 말씀을 드립니다.
Hong Sung-Dam:
하늘.
어두워 지고
땅.
싸이렌 소리 발자국 소리 달음질 소리
그리고 모두 숨어버렸다.
사랑하는 여인도 숨었고
전쟁을 만든 저 검은 손도 숨었다.
하늘.
사람들 죽이는 소리
땅.
노란 싹 생명이 돋는 소리
내 손도 숨었고
神도 숨어 버렸다
------------------------------------------------------------------- 아래 독일어 번역은 유우숙(미술학박사)가 했다.
Hong Sung-Dam im Gespräch
Von Dirk Jürgensen
wei starke Charaktere treffen aufeinander. Auf der einen Seite die für ein künstlerisches Kleinod viel zu spröde und massige Bunkerkirche in Düsseldorf und auf der anderen der sensible, manchmal laute Künstler und verletzte Widerstandskämpfer Hong Sung-Dam aus Seoul/Südkorea.
Wer sich die Ausstellung unter dem Titel „Resistance & Meditation“ (Widerstand & Meditation) anschaut, wird das Gefühl nicht los, die beiden seien füreinander geschaffen, beide hätten viel zu erzählen. Von ihren Geschichten voller Gewalt in Rechtlosigkeit und ihrer Kraft, Neues, Besseres zu beginnen, ist es in Korea, in Deutschland, eigentlich überall gleichermaßen wichtig zu erfahren. Am 25. November 2005 ist vorerst zum letzten Mal Gelegenheit dazu.
Hong Sung-Dam, geboren 1955, in den späten Achtzigern als Mitglied der Demokratiebewegung Gefangener des damaligen Militärregimes in Südkorea, wurde monatelang gefoltert. Erst nach intensivsten Bemühungen durch Amnesty International und Appellen prominenter Künstler, wie zum Beispiel Günter Grass, ließ man ihn wieder frei. Hong Sung-Dam ist notgedrungen ein politischer Künstler.
Seine Linolschnitte der Düsseldorfer Ausstellung zeigen in der Manier drastischer Comics klassischen Bildaufbaus die Szenen des Krieges, der Folter, des Aufschreis und des Leids. Den Bezug zur alltäglichen Gewalt der Nachrichtenwelt findet er in seinen Videos, die, wie auch die Linolschnitte und Plastiken, in den dunklen Zellen des Bunkers ihre wahre Kraft beweisen. Lauter Widerstand wechselt sich mit meditativer Stille ab. So sieht man auf einer Leinwand, wie der Künstler langsam, viel zu langsam und schemenhaft sich selbst, seinen Schatten(?), verfolgt oder ihm voran geht, sich irgendwann einzuholen scheint, doch verliert und endlich am Anfang der Szene weit von sich entfernt wiederfindet.
Einseitig.info konnte von Hong Sung-Dam Einiges über seine geteilte Heimat, seine Kunst, seine Ziele, sein Schaffen in einer globalisierten Welt und seinen Kampf gegen das Vergessen erfahren.
Einseitig.info (Dirk Jürgensen): Die Augen eines Europäers sehen voller Bewunderung, Erstaunen und nicht ohne Furcht den südlichen Teil ihres geteilten Landes auf der Gewinnerseite der Globalisierung. Das Wirtschaftswunder Südkoreas ist mit keinem anderen zu vergleichen. Die Militärdiktatur ist überwunden, die blutige Niederschlagung der Demokratiebewegung von 1980 ist ein Teil der Geschichte, die Demokratisierung der Gesellschaft scheint vollzogen und wirkt sich auch auf die Freiheit der Kultur aus. So überraschte uns sogar die Frankfurter Buchmesse in diesem Jahr mit einer Vielfalt interessanter koreanischer Literatur. Wenn nun auch noch eine Wiedervereinigung mit dem Norden stattfände, entschuldigen Sie bitte diese schamlose Verkürzung, könnte ein Koreaner sehr zufrieden mit sich und der Welt sein.
Hong Sung-Dam: Korea war ein schönes Land. Spätestens bis zum 18. Jahrhundert war Korea ein ruhiges und schönes Land. „Schön“ bezieht sich nicht auf die Ästhetik der stillstehenden feudalen Gesellschaft. Das 18. Jh. war der Wendepunkt für Korea, weil das Land die stürmische internationale politische Lage überstanden hatte und das Land mit der „Bauernbewegung vom Jahr Gab-O“ selbständig seine Augen für die Modernität öffnete. Aber die Plünderung des japanischen Imperialismus mit der Absicht einer „Großostasiatischen Wohlstandssphäre“ zerstörte den schönen Traum Koreas. Korea wurde als Vorposten für die Festlandseroberung des japanischen Militarismus ausgenutzt und dabei sowohl körperlich als auch seelisch und dazu noch materiell ausgebeutet.
Zum Beispiel sind die Totentafeln von 20.000 koreanischen Soldaten, die im Pazifischen Krieg als Kugelfang für den japanischen Imperialismus gestorben waren, in „yaskuni shinsa“ aufbewahrt, der Nabelschnur der japanischen Ultrarechten. Obwohl sie schon vor einem halben Jahrhundert gestorben sind, werden sie so immer noch gezwungen, Soldaten für den japanischen Kaiser zu sein. 1945, musste das durch die japanische Niederlage befreite Land Korea dann aber die Teilung des Landes als Folge der amerikanischen Kriegsstrategie erleben.
Nach dem Koreakrieg, der das Leben von 2 Millionen Menschen gekostet hat, wurde die Hälfte der Halbinsel ein USA-freundlicher antikommunistischer Staat. Und im Jahr 1960 bildete man eine neue selbständige demokratische Regierung durch die „4.19 Revolution“. Das Militärregime Jung-Hee Parks, der während der Kolonialzeit die japanische Elitemilitärschule absolviert und daher die Rolle einer Marionette des japanischen Imperialismus gespielt hat, sicherte für den Staat die pro-amerikanische und antikommunistische Richtung, um so Jung-Hee Parks Lebenslauf zu verdecken. Und die wichtigen Stellungen in der Regierung und der Gesellschaft wurden von japanfreundlichen Leuten besetzt. Mit einem Wort gesagt, ohne die Vergangenheit bewältigt zu haben, wurde die Modernisierung des antikommunistischen Staates bis zum Jahr 1998 beschleunigt, als Dae-Jung Kim zum Präsidenten gewählt wurde.
Die Teilung der Halbinsel bedeutet mehr als Landesteilung. In der 36 Jahre währenden Zeit als japanische Kolonie und in den ca. 40 Jahre dauernden antikommunistischen Regierungszeiten war alles auf der Halbinsel nur „die Hälfte“. Das Gehirn der Halbinsel funktionierte nur zur Hälfte. Der Vogel der Halbinsel flog nur mit einem Flügel. Allein an die andere Hälfte zu denken, wurde streng durch antikommunistische Gesetze oder das Staatsaufrechterhaltungsgesetz kontrolliert. Und das Militärregime schwang die Messerklinge des antikommunistischen Gesetzes.
Viele wurden sind zu lebenslänglicher Haft verurteilt oder hingerichtet oder heimlich erschossen oder sind spurlos verschwunden. Die Teilung der Halbinsel saß in den Körpern aller einzelnen Menschen und erzwang die Loslösung der Seele vom Körper. Wenn man genauer diagnostiziert, machte die Mauer der Teilung die Halbinsel zur Irrenanstalt. Solcher Widerspruch und Konflikt werden natürlich für die Kunst eine wunderbare Quelle der Schöpfung. Zum Beispiel, die Power der literarischen Kunst, die in der Frankfurter Buchmesse gezeigt worden ist, ist das Produkt des Willens der Künstler, die einen solchen Widerspruch und Konflikt damals zu überwinden versuchten.
Wir haben etwas „dem Frieden ähnliches“ erworben, nachdem Unzählige verhaftet worden sind und ihr Leben geopfert haben. Es könnte sein, dass die südliche Halbinsel jetzt das freieste Land auf der Welt ist. Aber wer kann garantieren, dass die Freiheit kein Resultat einer ewigen Teilung des Landes ist?
Einseitig.info: Ihre aktuelle Ausstellung in der Bunkerkirche trägt den Titel „Resistance & Meditation“ (Widerstand & Meditation) und wird von dem Zitat „Ich bin ein Skalpell. Ich verletze, um zu heilen.“ begleitet. Woran krankt es im Korea von heute und wo halten Sie es für nötig, das Skalpell anzusetzen?
Hong Sung-Dam: Ich betrachte einige Probleme in der liberalen südlichen Halbinsel: Erstens – ich erfuhr, dass alle Dämonen auf der Welt durch die „Spalte“ der „Teilung“ hineinkommen. Von der „Spalte“ aus wird die amerikanische Militärstrategie über Asien geschmiedet, aus der „Spalte“ entstand die Macht der Militärregime, in der „Spalte“ wimmelte es von Nationalismus, durch die „Spalte“ haben die Japanfreunde immer noch von allen Seiten die wesentliche Macht über Wirtschaft, Politik und Gesellschaft in der Hand, in der „Spalte“ befand sich die Ausbeutung des Volkes durch die Kapitalisten. Wenn die Teilung Koreas auf keinen Fall gelöst wird, wird die Zukunft Koreas sich der Gefahr des Nationalismus und dessen Gewalt aussetzen. Zweitens – die Freiheit verlangt von der Einzelperson und auch von der Gesellschaft unendliche Verantwortung. Unsere Gesellschaft hat noch nie versucht, die Vergangenheit zu bewältigen.
Keiner hat um Verzeihung für seine die fehlerhafte Vergangenheit gebeten, keiner hat die Verantwortung dafür getragen. Niemand ahnt, wie sich Freiheit ohne Verantwortung verwandeln kann. Drittens – durch die oben genannten Probleme sind die allgemeinen Werte, die unsere Gesellschaft der einzelnen Person abverlangt, vollkommen zusammengebrochen. Korea hat die „Modernisierung“ nur als „Streben nach wirtschaftlicher Entwicklung“ verstanden.
Einseitig.info: Die Globalisierung stellt sich in Europa vielfach als Dämon dar. Er zeigt sich in der Globalisierung des Kapitals, in der Verschiebung der Arbeitsplätze in Billiglohnländer, in der Globalisierung des Terrors, im Verlust lokaler Identität, in der weltweiten Gleichschaltung der Kultur. Sie verwenden selbst eine Vielfalt von Medien und Techniken. Mit Malerei, Poesie, Plastik und nicht zuletzt Videoperformances und erreichen ganz unterschiedlich sensibilisierte Menschen. Im positiven Sinne globalisieren Sie Ihre Kunst über die Vielfältigkeit der Mittel. Was bedeutet Ihnen die Verwendung klassischer und moderner, eben auch globalisierter Methoden?
Hong Sung-Dam: Die koreanische Wirtschaft entwickelt sich noch grausamer als der in der Welt sich ausbreitende Neoliberalismus.
Das Leben ist heilig. Es gibt nichts, was nicht heilig ist, obwohl es ein wertloses Zeug wie ein Unkraut oder Stein auf der Straße sein kann. Daher ist alles, was das Leben bedroht, mein Feind. Und solange solche Feinde existieren, habe ich einen Grund, Kunst zu machen. Bevor die Probleme der koreanischen Gesellschaft, die ich oben genannt habe, nicht gelöst werden, werde ich um mein Leben besorgt sein. Bei den Künstlern ist sogar die „Hölle“ ein Gegenstand der Renovation. Solange wir auf der Welt leben und hier die „Hölle“ existiert, werde ich die „Hölle“ wählen, um nach einem allgemeinen Lebenswert zu streben.
Ebenso ist das Medium für das letzte Ziel meiner Kunst ein einfaches Instrument. Der Auslöser der Kamera oder die Maus des Computers bedeuten dasselbe, was der Pinsel für Malerei bedeutet oder auch Füller für ein Gedicht. Und der Bildschirm, auf dem ein Video zu sehen ist, oder die Bühne des Theaters, das Schreibpapier, die Projektionsleinwand im Kino sind dasselbe wie die Leinwand für Malerei. Sie sind schon nicht mehr modernes Medium sondern bereits veraltet.
In der Kunst sind Form und Inhalt wichtiger als Genre oder Medium. Das Ziel des „Big Brother“ ist nicht das Streben nach verschiedenen Medien, sondern Überwachung und Kontrolle, mit der man Form und Inhalt seinem Geschmack anpassen will. Kernpunkt ihres Strebens ist die Übermittlung von Formen und Inhalten, die sie festgelegt haben. Dies ist der durch sie verordnete Gewinn für die Allgemeinheit durch die Globalisierung. Die sogenannte „Kommunikation“ ist nur ein Vorwand für die Kapitalisierung der Kultur.
Um von der Globalisierung der Kultur, von diesem Draht abzuweichen, müssen die Künstler aller Regionen mit der ihnen eigenen kulturellen Art und Weise ihre eigenen Probleme vermitteln.
Und die Rezipienten solcher Schöpfungen haben sich um Verstehen zu bemühen. Schon haben die Menschen die komplizierten Bildformen von Picasso hervorragend verstanden, und sogar die Ready Mades Marcel Duchamps befriedigend analysiert.
Einseitig.info: Sollten wir uns damit also auch in Europa von Ihnen als Skalpell „verletzen“ lassen?
Hong Sung-Dam: So ist es. Den „Imperialismus“ haben die jetzt dämonisierenden USA vom früheren Europa gelernt. Es ist möglich, dass dieser dämonische Charakter, den jetzt die USA zeigen, in der europäischen Geschichte seine Wurzel findet. In der Phase der Modernisierung hinterließ Europa schlimmste Verbrechen und Widerspruch in der Welt. Ohne allseitige Vergangenheitsbewältigung kann man die Gegenwart nicht überwinden.
Wenn Sie durch meine Arbeiten verletzt sind, ist es eine Bestätigung der Verletzung, die Sie früher durch „Big Brother“ bekommen haben, jedoch keine Verletzung durch mein Messer.
Einseitig.info: Fern ab von der Meditation beschreiten Sie zum Beispiel im Video gern den Weg der Provokation. Ist dies ein Zugeständnis an unsere laute Gegenwart, die uns oft nur den Provokanten wahrnehmen lässt?
Hong Sung-Dam: „Meditation“ und „Widerstand“ sind nicht zwei sondern eins. Wenn „Widerstand“ die Klinge ist, mit der ich auf die mein Leben bedrohenden Feinde ziele, ist „Meditation“ die Messerklinge, die ich gegen mich selbst richte.
Eine Sage lautet: „während man mit dem Teufel kämpfte, um den Teufel zu beseitigen, wurde man dem Teufel ähnlicher“. Ich fragte mich selbst. Ich musste mich innerlich prüfen, ob ich in den langen Zeiten meines Widerstands gegen den Faschismus nicht vom Faschismus beeinflusst worden bin. So wie Liebe und Hass, weil sie sich gegenseitig bedingen, nicht zwei sondern eins sind, und ständig überprüft werden müssen. Mein „Widerstand“ ist nicht um zu widerstehen notwendig, sondern um den „Widerstand“ zu beenden.
Eine Arbeit von mir „Terror Market“ ist nach dem Terror von New York am 11. September und der Invasion der USA in Afghanistan entstanden. Für die Bewohner von New York kann es kaltherzig klingen, aber sie erscheinen so, als ob sie sich nach der vollkommenen Zerstörung nicht selbst fragen würden, warum dort so etwas passieren musste. Sie sind dagegen nur interessiert, ihre Stärke, Nr. 1 auf der Welt zu sein, zu zeigen. Dazu kommt noch der typische Kapitalismus, der mit dem „Terror“ als Marke, als Ware handelt. Das wollte ich in meiner Videoarbeit betonen.
„Der Fluss des Blutes“ entstand während des Irakkrieges. Viele wogen sich in der Illusion, dass sie an einem Computerspiel teilnahmen, als sie die Nachrichten über den Irakkrieg von CNN sahen. Selbst ich habe mich manchmal solcher Illusion hingegeben.
Nicht nur Koreakrieg und Vietnamkrieg, sondern auch mein Leiden unter der Gewalt des Nationalismus führte mich dahin. Ich habe daher die Arbeit „Der Fluss des Blutes“ gemacht, um mich zu überprüfen, ob in mir irgendwo der Kriegwahn sitzt.
Einseitig.info: Die Bunkerkirche bietet nicht den Rahmen einer üblichen Galerie. Sicher haben Sie von der Geschichte der Kirche erfahren. Nachdem ich vor einiger Zeit an gleicher Stelle eine Ausstellung von Werken Otto Pankoks sah, die teilweise stilistisch und thematisch gewisse Verwandtschaften aufwies, hatte ich besonders bei Ihren Linol- und Holzschnitten den Eindruck, sie verstärkt die Möglichkeit des Dialogs mit Ihren Werken. Wie war die emotionale Wirkung der Bunkerzellen auf Sie und erfuhren Sie eine Kommunikation zwischen der Geschichte des Gebäudes und der Geschichte Ihrer Bilder?
Hong Sung-Dam: Ja. Es ist nicht einfach, den Eindruck kurz zusammen zu fassen, aber durch diese Ausstellung habe ich vieles empfunden. Dass der Nationalsozialismus um den Kriegsangriffen auszuweichen, also aus Tarnungsgründen den Bunker als Kirche gebaut hat, und dass gerade in diesem Bunker die Ausstellung stattfindet, in der kritische Bilder der Kriegverbrechen gezeigt werden. So treffen sich hier die Erfahrungen totaler Verletzung des Lebens, einmal durch den Krieg des Nationalsozialismus in Deutschland und zum anderen durch die nationale Gewalt in Korea. Dort empfand ich in etwa, dass zwei Welten, die äußere und die innere, hier einen Körper gebildet haben.
Obwohl sicher nicht alle Bunkerbesucher das Konzept nachvollzogen haben, worin meine Bilder und der „Bunker“ sich treffen, haben sie es wohl trotzdem etwas „nicht Normales“ empfunden.
Die Künstler schaffen „Omen“ oder „Vorzeichen“ der Zeit. Und dass solche „Vorzeichen“ nicht als einfacher Vorzeichen enden als Gesprächsthemen sich weiter entwickeln, dafür braucht man Hilfe von Menschen wie Sie.
Einseitig.info: Vielen Dank, Herr Hong, ich nehme dies gern als Aufgabe mit in die Redaktion und möchte unser kleines Gespräch mit einem Ihrer Gedichte abschließen.
Sommer
Erde und Wind treffen zusammen
Und versprühen Regen
Liebe und Hass treffen sich
Und spucken Feuer aus
Regen und Flamme umschlingen sich
Und gebären Zorn
Der Zorn trifft den Menschen
Und beide pflügen die Welt um und stellen sie auf den K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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