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25
['나무물고기' 74 - 뜨다]

물속은 둥둥 떠서 위로 올라가는 하얀 사람들로 온통 가득했다.
어떤 이는 조금 더 투명하고 또 어떤 이는 약간 보랏빛이 감돌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약간 붉은 기운이 서려있기도 했다.
각자 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는 하얀 사람들을 헤치며 건장하게 보이는 자가 목어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다가와서
뭔가 이야기 할듯하다가 그냥 웃어 보였다.
목어도 그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다 깜짝 놀라며 이제야 알아보았다는 듯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부드러운 힘에 떠 받쳐서 위로 들리는 것처럼 둥 떠올랐다. 목어가 부디 잘 가시라고 눈빛으로 말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떠오르더니 물속 끝 하늘 길을 따라 힘차게 솟아 올라갔다.
그 많던 하얀 사람들이 하늘 길로 너울너울 올라가는 모습이 하얀 나비 떼 같았다.
세상과 그들 사이에 질끈 동여매진 매듭이 하나 둘 풀어져 물속의 검은 바닥을 하얗게 덮어 춤을 추는 듯 했다.
서리서리 맺어진 매듭이 곱게 풀리는 모습으로 어두운 물속엔 따사로운 기운이 가득 넘쳐 났다.
그들의 대표격인 하얀 사람이 맨 나중에 둥실 떠오르기 직전에  우리들에게 다가와서 고맙다는 인사와 이별의 손짓을 했다.
청둥이가 나섰다.

‘괙괙괙! 말로만 고맙다고 하면 뭘해? 세상에 공짜는 없지’

하얀 사람이 둥 뜬 채 말했다.

‘무엇을 원하는가.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들어주겠다.
남은 하나는 다른 세상에서 너희들과 만나는 인연이므로 훗날에 말하자‘

그 때 얼른 꽃지가 말했다.

‘우리는 엊그제 저 물속 도시에 떨어진 별똥별을 꼭 보려고 한다. 저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알려 다오’

‘꽃지, 연평바다의 딸!
네가 우리를 가끔 보았듯이 나도 너를 가끔 보았다.
너는 날카롭고 딱딱한 겉모습과는 달리 항상 부드럽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있지. 넌 그동안 너무 외롭게 살았어.
혹시 누가 너의 모습을 볼세라 바다 밑에서 숨어사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잘 견디어 냈다. 꽃지 너는 조만간
저 강 건너 피안의 땅에서 우리들과 다시 반가운 얼굴로 만나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저 물속 도시 광장에 내려앉은 별똥별! 이승에 남은 산 자들은 꼭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
나 같으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하건만... 아무튼, 네가 원하는 대답은 목어에게 일러 주겠다’

청둥이가 나서서 무엇인가 질문을 하려는 것을 내가 재빨리 막아서며 급히 물었다.

‘당신들은 왜 하필이면 전자제품 쓰레기를 쌓아올려 신당을 만들었는가?’

‘하하하. 저 신당! 어제밤 우리들이 모여 이곳 소야바다를 뒤져내 저 쓰레기들을 구했다.
그리고 밤새 담을 쌓았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는 아주 힘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저 쓰레기들의 본색을 워낙 좋아 한다고 해서
바로 너를 홀리려고 돌멩이 대신에 저것들을 쌓아 당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신당이 아니라 인당인 셈이다’

그가 둥 떠올라서 하늘 끝을 따라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하얀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앞 계곡에 허전한 적막감만 남았다. 다시 어두운 밤이 된 것이다.
그들 영혼들은 마지막 길을 찾아 제 갈 곳으로 들어갔지만 나에겐 갑자기 모든 길이 끊어져 버린 것처럼 공허감이 가슴을 후볐다.
멍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돌처럼 굳은 채 서있는 나를 청둥이가 날개로 때리면서 말했다.

‘괙괙괙. 모야! 내가 꼭 물어 볼 것이 하나 있었는데. 내 왼쪽 날개를 꼭 찾아서 저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 엄마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인지...그런데, 너는 마지막 하나 남은 질문을
쓰잘것 없는 저 쓰레기를 물어보는데 아깝게 써버렸어. 젠장 저 하얀 사람은 왜 꼭 두 개의 질문만 받냐?
세 개든 네 개든 모두 들어주어도 세상이 뒤집어 지는 것도 아닐 텐데...
우리는 수백 수천의 하얀 사람들을 저승길로 올려주었는데도 딱 두 개의 질문만 받다니. 인심 한번 야박하군!
그리고 먼 훗날에 보자고? 괙괙괙 훗날 보자는 말은 하나도 믿을게 없다더라’

목어는 벌써 신당인지 인당인지 쓰레기 더미 오른편에 쉴 자리를 잡아 그 크고 육중한 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얀 사람들이 모두 하늘 끝으로 떠난 뒤 물속엔 초저녁 별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내일은 드디어 저 물속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아까 하얀 사람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자리를 잡아 편히 쉬도록 하자. 그리고 꽃지의 등깍지를 붙인 풀이 내일 아침까지 완전하게 굳게 되려면
청둥이는 날개를 펴서 꽃지의 등을 따뜻하게 덮어 주어야 할 게야’

나도 저만큼에 자리를 잡아 지친 몸을 뉘었다. 몸 속 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모두 텅 빈 것처럼
얼얼한 기운이 가시질 않고 더구나 머리 좌측에 강한 편두통까지 찾아왔다.
머릿속엔 가시 덩굴이 엉켜 만든 둥지 안에 털 대신 긴 가시가 수북하게 돋은 생물 하나가 살아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 생물이 숨을 천천히 들이킬 때 마다 날가시가 세워져 머릿속에 박힌 듯 통증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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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74 - 뜨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6:49
조회수: 2002 / 추천수: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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