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05
['木魚' 43 - 태어 나다 _ 목어내력 01]

대략 구백년 전에 나는 이곳 쌍섬 큰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한 작은 섬에 평생 숨어살면서
남양만과 군자만은 물론 강화 김포 그리고 황해도 해주까지 그 세력을 떨친 유명한 수적이었지.

우리는 초겨울 남양 앞바다에서 세곡선을 털다가 관군에게 토포되었지.
나는 해망산을 넘어 도주하다가 토포꾼에게 붙잡혀서 목은 저잣거리에 효수되고
해망산 언덕에 버려진 몸둥아리는 이틀이 지나도록 꿈틀거리다가  
살은 짐승과 새들의 밥이 되었고 뼈는 썩어 흙으로 내려앉았어.

그로부터 삼백년 후에 남쪽에서 올라오는 봄바람이 솔씨 하나를 싣고 와서 흙으로 변한 내 몸둥이 위에 박았어.
나는 솔씨가 내린 뿌리를 타고 연두빛 새싹으로 땅 바깥에 모습을 내밀었지.
소나무로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 거야.

나는 다른 소나무들 보다 월등하게 빨리 자랐어.
오십년도 되지 않아서 이미 그곳 언덕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지.
초봄에 바다 위를 훑듯이 세차게 불어대는 영등바람에게 물었어.

‘왜 나홀로 이렇게 키가 큰가?’

‘예전의 너는 평생 숨어살아야 했던 도적이었으니
이번 생에서는 백리 밖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널 잘 볼 수 있도록 태어난 것 뿐‘

나는 곧 인근 백리 지경에선 누구나 다 아는 멋있는 나무가 되었지.
바다 건너편 별망포구나 조기나루에서도 뻘밭 너머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나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어.
이젠 온갖 새들도 나의 품속에서 쉬었다 가고 사람들도 내가 드리운 그늘에서 더운 땀을 닦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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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39 / '木魚' 43 - 태어 나다 _ 목어내력 01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8-06 17:01
조회수: 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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