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25
['木魚' 93 - 괴로운 눈]

‘끌끌끌 살아있는 인간아! 이 요사스럽기 한이 없는 인간아. 그렇게도 너희 인간들의 미래를 알고 싶더냐?
미래를 알게되면 너희가 스스로 만든 파멸을 피해 갈 수 있다더냐? 끌끌끌
지금 이 시각에도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구나.
너희의 알량한 영혼과 썩어빠진 육신을 기대어 중심이라고 여겼던 것은 이제 힘을 잃었다.
고삐 풀린 혼돈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크흐흐악 괴롭다 괴로워! 오늘도 너희 인간들이 흘려보낸 끈적끈적한 욕망과
느끼한 기름기가 끌끌끌 내 심장을 두껍게 만들어 나의 증오와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구나. 크하악’

거대한 눈이 시퍼런 불꽃을 번쩍이며 위쪽을 향해 치켜떴다. 그리고 붉은 뿌리들을 위로 들어 올려서 세차게 휘두르며
진저리를 쳤다. 물속이 크게 출렁거리며 하얀 물보라가 가득했다.
목어의 육중한 몸도 물보라가 일으키는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물속은 물보라 때문에 시야가 잔뜩 흐려졌다.
목어가 재빨리 오른쪽으로 돌아서 별똥별을 향해 내려갔다.
거대한 눈 아래쪽에 돋아서 별똥별을 감싸고 있던 두 갈래 뿌리들 중 한가닥이 목어의 정면을 향해 뻗치면서 공격을 했다.
별똥별을 향해 내려가던 목어가 다시 방향을 위쪽으로 올리면서 정면으로 뻗어오는 뿌리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거대한 눈은 영리했다. 우리들 뒤쪽으로 돌아 온 붉은 뿌리 하나가 바람처럼 다가와 목어의 몸을 휘감아 버렸다.
목어가 꼬리지느러미를 세차게 흔들어 보았으나 휘감고 있는 뿌리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얀사람이 금빛 삼지창으로 그 뿌리를 내리 찍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물속을 울렸다.
뿌리가 흠칫 놀라며 목어의 몸에서 풀어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반대쪽에서 또 다른 뿌리가 날아와
하얀사람의 옆구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하얀사람은 삼지창을 움켜쥔 채 멀리 날아가서 거대한 눈의 하얀 속살위에 떨어졌다.
목어가 다시 균형을 잡은 뒤에 하얀사람을 구해보려고 바닥으로 몸을 낮추면서 접근하자 별똥별을 감싸고 있는
뿌리 두 개가 동시에 위와 아래로 날아왔다. 목어는 몸을 올려서 밑으로 날아오는 뿌리는 피했지만
위쪽으로 날아오는 다른 뿌리에 휘감기고 말았다. 뿌리에서 벗어나려고 목어가 몇 번 크게 힘을 쓰면서
몸을 뒤트는 바람에 우리들은 모두 목어의 등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가까스로 목어의 등지느러미를 잡았다.
청둥이와 꽃지도 간신히 매달려 버티다가 다시 목어의 등위로 기어 올라왔다.

‘끌끌클크 나도 이럴 수밖에 없는 내가 증오스럽다만 이젠 어쩔 수 없다.
끌끌끌 미래가 보고 싶다구? 이제 너희들은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는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내 시궁창 뱃속을 지나 인간의 시간에서 이탈하여 저 물속 빌딩들의 부속품으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크하악크흐
안돼! 이러면 안된다. 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누구... 크흐악아악... 나를 도와야... 크으악‘

거대한 눈이 목어를 휘감고 있는 뿌리에 힘을 주어 강하게 조였다.  
목어의 몸이 비틀리면서 어디 한쪽이 부서지는 소리가 우지끈 울렸다.

‘클크르르 나는... 아아 이 원한이...안돼! 그러나 어쩔 수 없어. 아하악 안돼 클크하악’

거대한 눈이 몸부림을 치면서 목어를 자기 쪽으로 천천히 끌어 당겼다.  
목어가 뿌리에 끌려 옆으로 뉘어진 채 별똥별 위를 지나갔다. 목어는 언뜻 별똥별을 내려다보았다.
일렁이는 불빛 사이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여인의 얼굴이었다. 푸르스름한 별똥별 속에 여인이 위를 향해 받듯이 누워 있었다.
여인이 눈을 떠서 붉은 뿌리에 휘감겨 끌려가는 목어를 슬픈 표정으로 한번 쳐다보더니
뭔가 말을 하려는 듯 활처럼 날렵한 진달래 빛 입술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어버렸다. 그리고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불꽃이 크게 일렁이면서 여인의 얼굴을 가렸다. 붉은 뿌리는 더욱 힘을 주어 목어를 끌어 당겼다.
목어가 빠져 나오려고 갖은 힘을 써 봤으나 그럴수록 뿌리는 더욱 강하게 조였다.
다시 우지끈 하면서 목어의 몸 어딘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목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저 거대한 눈 바로 아래쪽에.... 두 갈래 뿌리가 돋은 곳... 그 틈새 속...
석 자 깊이에 신경줄이 있다..... 그것을 끊으면
이 뿌리의 힘을... 잠시 멈출 수 있다...’

목어의 소리를 듣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멈칫거리자 청둥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악을 썼다.

‘이 나약한 인간아. 너의 그 잘난 손가락으로 어떻게 좀 해보라구!’

몸이 점점 비틀려가는 목어가 겨우 입을 열었다.

‘틈새... 석 자 깊이라서... 사람의 손은... 어림도 없어...’

뿌리가 더욱 강하게 조였다. 또 와지끈 소리가 나면서 목어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꽃지가 나를 올려다보면서 급하게 외쳤다.

‘우리들 중에서 나 밖에는 저 좁은 틈새에 들어갈 수 없어.
내가 가겠다. 나를 저 뿌리가 돋은 틈새를 향해 정확하게 던져줘!’

‘꽥꽥꽥 안돼! 네가 저 구렁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살아서 우리를 보지 못한다.
그럴 바에 차라리 이대로 모두 함께 죽자‘

청둥이가 울면서 날개로 꽃지를 덮어 눌렀다.
그녀가 집게발로 청둥이의 날개를 강하게 물자 청둥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날개를 털었다.

‘이곳에서 함께 죽긴 싫다. 나는 살아서 올라올 것이다.
나를 저 틈새로 던져주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뛰어 내리겠다’

나는 몇 번 더 망설이다가 혼자서 뛰어 내리려는 꽃지를 손안에 꽉 쥐고
붉은 뿌리가 돋은 틈새를 향해 던질 준비를 했다. 꽃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 던져서 하얀 속살 위로 떨어지면 나는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
저 하얀 속살에 살아있는 것이 닿으면 모두 녹아버린다구.
정확하게 뿌리 틈새 입구에 던져야 해!’

나는 온정신을 집중하여 뿌리 틈새를 향해 던지려고 꽃지를 쥔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다시 손을 내리고 말았다. 꽃지가 집게발로 내 손을 톡톡 치면서 차분한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마음을 가다듬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던져! 빨리!
지체하다가는 목어도 우리도 모두 죽는다. 자! 편한 마음으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뿌리 틈새를 노려보다가 틈새 바로 위쪽 붉은 뿌리 밑둥치를 보고 힘껏 던졌다.
청둥이가 날개로 내 다리를 마구 때리면서 외쳤다.

‘꽥꽥 이 잔인한 인간아! 우리들끼리만 살겠다고 불쌍한 꽃지를 던졌어. 꽤애액
헤엄도 제대로 못하는 꽃지를 저 생지옥 바닥에 던졌어. 꽤액 꽤액
이 무자비한 인간아! 꽥 꽤액 그렇게도 네 목숨이 아깝더냐 괙 으헝헝
연약한 꽃지가 어떻게 저 거대한 눈구멍과 괴기스러운 뿌리들을 잠재운단 말이냐.
결국 우리 모두 죽을 것인데 차라리 틈새고 나발이고 간에 내가 내려가야 했어. 괘애액 괙‘

청둥이가 눈물을 뿌리면서 막무가내로 뛰어내리려 하자 내가 말리며 그의 하얀 날개죽지를 힘껏 움켜쥐었다.
청둥이가 악을 쓰면서 발을 동동거렸다.

‘놔! 이 무책임한 인간아. 내가 내려가야 한다.
이 청둥이의 물갈퀴로 저 거대한 눈구멍을 헤집어 영원히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꽃지를 데리고 올 거야. 꽥꽥꽥 꽃지야!’

내 손에서 떠난 꽃지가 포물선을 그리며 맨 뒷발의 넓은 발바닥을 길게 뻗어 방향을 고쳐 잡아 날아갔다.
꽃지의 작은 몸은 틈새 바로 위 뿌리 밑둥치에 맞아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순간에  
집게발로 뿌리의 껍데기를 물고 겨우 대롱대롱 매달렸다.
꽃지가 다른 발들을 바르작거리며 붉은 뿌리에 몸을 붙이려고 안갖 힘을 쓰고 있었다.  

붉은 뿌리는 목어를 더욱 옥죄며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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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38 / '木魚' 93 - 괴로운 눈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25 18:13
조회수: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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