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29
['木魚' 94 - 신경줄을 끊다]

한쪽 집게발로 붉은 뿌리의 밑둥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바르작거리던 꽃지가 몸의 균형을 잡아서 앞뒤로 굴렸다.
몇 번 더 구르다가 붉은 뿌리 둥치에 몸을 올려붙였다. 뿌리에 납작하게 달라붙어서 조심스럽게 밑으로 기어가
붉은 뿌리가 돋아난 틈새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까만 눈을 길게 쏙 빼어서 흔들었다.
우리들에게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은 뒤에 틈새로 기어 들어갔다.
우리는 목어의 등에 엎드려서 어두운 틈새 입구로 들어가는 꽃지를 바라보았다.
청둥이는 나를 올려다 보면서 엉엉 울었다.

‘꽥꽥꽥 우리들 끼리만 살려구 저 연약한 꽃지를 지옥의 틈새로 들여보냈어! 엉엉엉’

목어가 마지막 힘을 쓰는지 등이 팽팽해지면서 꼬리와 턱지느러미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목어의 몸을 조이면서 끌어당기는 붉은 뿌리에 의해 왼쪽 턱지느러미가 너덜거렸다.
이젠 목어도 포기한 듯 몸의 긴장을 풀어버렸다. 청둥이가 목어의 머리쪽으로 기어가서 외쳤다.

'목어 아저씨! 조금만 더 참으세욧. 꽃지가 뿌리 틈새로 방금 기어들어갔어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목어가 눈을 크게 떠서 억지로 웃어보였다. 휘감은 뿌리가 목어를 들어 올리더니 거대한 눈 아래쪽에 시궁창 같은 입을 열렸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 같은 어둠으로 가득한 아가리 입이었다. 거대한 눈이 말했다.  

‘크흐아악! 지옥의 문은 열렸고 파멸의 수레바퀴는 더욱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크흐흐 너희들에게 지옥이 되어야 하는 내 아가리가 너무 증오스럽구나.
그러나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어. 안돼! 크흐악’

꽃지는 어두운 굴을 끼어가듯 틈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세 자 깊이 정도 내려가자 온통 어두움뿐이었다.  어둠에 눈이 적응을 하자 붉은 뿌리 속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가느다란 솜털들 사이에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신경줄들이 보였다. 그 한 중심에 가장 두꺼운 신경줄이 녹색빛을 띠면서 씰룩거렸다.
이 틈새 어둠속은 생각과 다르게 너무 안온했다.
이곳이 사납게 날뛰는 붉은 뿌리의 근원인데도 거대한 눈의 분노도 증오도 원한도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미세하고 부드러운 솜털에 둘러싸인 채 씰룩거리는 녹색빛 신경줄들이 오히려 서글프게 보였다.
때로는 살아있다는 것은 서글픔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외부와 단절되어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가운데 가장 두꺼운 녹색 신경줄을 즉시 집게발로 가득 물어서 힘을 주었다.
그러나 집게발 아랫날이 신경줄의 중간 정도 들어가서 쇠보다 단단한 심을 만났다. 다시 온 힘을 집중해서 집게발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집게발 보다는 신경줄의 심이 더 단단했다.
쇠가 서로 엇갈리는 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집게발 아랫날에 금이 갔는지 심한 통증이 등깎지까지 전해졌다.
녹색빛 신경줄이 위험함을 느꼈는지 급히 부풀어 오르면서 검푸르게 변했다.
그녀가 재빨리 다른 집게발로 바꾸어서 반쯤 잘라진 곳을 다시 물고 힘을 주었다. 힘을 주느라 꽃지의 가느다란 발들이 바르르 떨렸다.
소리가 쩡 울리면서 신경줄이 잘려졌다.

거대한 눈 아래 쩌억 벌린 시커먼 입이 갑자기 꽉 다물더니 붉은 뿌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목어를 휘감았던 뿌리가 힘이 빠져 스르르 풀리면서 바닥으로 철부덕 떨어졌다.
내가 청둥이에게 외쳤다.

‘풀렸어! 꽃지가 신경줄을 찾아서 절단했다. 절단했어!’

‘괙괙 목어 아저씨! 이제 우리는 살 수 있어요.
빨리 꽃지와 하얀사람을 데리고 이 생지옥에서 나가야 되요!’

그러나 목어는 빨리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가 눕혀진 육중한 몸을 바로 잡아보려고 꼬리를 흔들면서 지느러미를 몇 번 더 젓다가 그만 두었다.
그의 몸 어디가 심하게 부수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육중한 몸이 천천히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때 붉은 뿌리 틈새에서 꽃지의 집게발이 보였다. 붉은 뿌리의 신경줄을 자르고 다시 기어 올라온 꽃지가
틈새 입구에서 빠져 나오려고 다른 발들에 힘을 주면서 몇 번 더 애를 썼지만 자꾸만 꽃지의 날카로운 발끝이 미끄러졌다.
신경줄이 끊기자 붉은 뿌리의 힘이 풀리면서 틈새와 붉은 뿌리사이에 꽃지의 몸이 눌려서 걸려버린 것이다.
청둥이가 그런 꽃지를 보다가 막무가내로 뛰어 내리려고 하자 다시 내가 말렸다.

'안된다! 신경줄이 끊어지면 딱 아홉 셀 동안만 거대한 눈의 힘이 정지한다.
그 이후엔 다시 복원되어 우리는 또 그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일단 먼저 목어를 일으켜 세워야 해!'

청둥이가 다시 목어의 머리 쪽으로 기어가서 악을 썼다.

'목어 아저씨! 정신 좀 차려봐! 아저씨가 살아나지 못하면 우린 다 죽는다. 엉엉엉 괙괙'

목어가 몸을 크게 떨면서 정신을 수습하려고 안갖 힘을 썼다. 그러나 그의 몸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청둥이가 목어의 머리위에서 발을 굴렸다. 그러나 목어가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목어의 눈이 점점 초점을 잃으며 희미해졌다. 목어의 몸은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청둥이가 발을 굴리면서 목어의 턱지느러미를 잡아당겨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이미 목어의 몸은 거대한 눈의 하얀 속살 바닥에 거의 가까워지고 있었다.

'꽥꽥꽥 아저씨! 일어나야 해! 제발 정신 좀 차려서 일어나야 돼! 엉엉엉
목어 아저씨가 다시 살아나면 내 날개도 포기할 수 있어. 괙괙괙 그까짓 날개는 필요 없어.
목어 아저씨만 다시 살아 난 다면 난 하늘을 날지 못해도 좋아. 제발 좀  정신을 차려. 목어 아저씨!'

청둥이가 악을 써대며 목어의 눈 주변을 부리로 마구 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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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39 / '木魚' 94 - 신경줄을 끊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29 15:48
조회수: 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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