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20
['木魚' 46 - 만져 보다_ 목어내력 04]

그는 유포 쪽으로 향한 길머리에서 방향을 틀지 않고  해안가 긴 모래밭을 향해 그대로 직진했다.
유포로 향하는 길머리 안쪽에 숨어서 기다리던 이십여 명의 사병들이 모래밭 윗쪽에서 솔밭 언덕을 타고 쫓아 왔다.
갈대숲이나 수로둑에 숨어있던 살수들도 모두 모습을 드러내며 그를 향해 달려왔다.
뒤쪽에서 별편전 몇 개가 휘리릭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와 모래위에 박혔다.
이 모래밭이 끝난 지점 풀 섶에 또 다른 도추꾼들이 숨어있을게 분명했다.

추격해 오던 솔밭의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갑자기 뚝 멈추어 섰다.
동시에 그가 모래밭에 쌓인 목책더미 뒤로 급하게 몸을 날렸다.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주변에 화살이 두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혔다.
이미 목책더미 뒤에 숨어서 노리던 살수 세 명이 갑자기 날아든 그를 보고 당황하며 환도를 휘둘렀다.
그가 엎드려 피하자 비껴나간 환도가 목책에 크게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냈다. 팔꿈치로 살수의 명치를 후리자
목책에 부딪쳐 튀어 오른 환도를 손에서 놓치며 옆으로 넘어져 나뒹굴었다.
살수가 놓친 환도를 그가 즉시 오른 손에 받아 쥐어 다음 살수가 내리 치는 칼을 막아 강하게 밀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살수의 턱밑에 꽂았다.
그의 칼에 밀리던 살수의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쏠리는 것을 보고 옆으로 허리를 틀면서 그의 목을 그었다.
세 번째 살수가 환도를 겨눈 채 황급히 몇 걸음 물러서서 공세 시점을 찾고 있었다.
김무석이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쉬며 나지막한 소리로 뱉었다.

‘괜한 목숨을 베기 싫다. 뒤로 물러나 목숨을 아껴라’

살수가 칼을 겨눈 채 엉덩이를 빼면서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는 것을 보고
그가 오른손에 들린 낯선 환도를 모래바닥에 던져 박았다.
졸지에 주인을 잃은 환도의 칼자루가 바르르 떨었다.

목책더미에 등을 대고 검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건너 별망성 수군만호에서 이미 띄운 군선이
유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세찬 갯바람에 횃불의 긴 꼬리를 너풀대면서  건너오고 있었다.
해망산 언덕에 홀로 서있는 큰 소나무의 검은 형체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이 사병들은 훈련도감이나 어영청등에서 꽤나 한다는 놈들만 뽑아 판윤의 사병으로 특별하게 살수 조련을 받은 놈들이라
여타의 칼잡이들과는 다르다. 거기에 궁수들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오늘밤 안으로 우리 쪽 식솔들을
모두 요절 낼 심산인 것이 분명했다.

아까 갈대숲 언덕에서 수신호를 보내던 녀석들과 여나믄 명의 사병들이 모래밭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솔밭 언덕을 따라 쫓아오던 이십여 명의 사병들이 모래둔덕을 뛰어내리는 소리들로 땅이 쿵쿵 울렸다.
가까운 거리였다.

아직도 여인의 맨가슴의 온기가 남아있는 오른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넣어 복대를 만져보았다.
그녀가 작년 보름날에 만수를 기원하는 수를 놓아 복대를 만들어 무운을 비는 간단한 고사를 모신 다음에
자신의 맨허리에 묶어 주었다. 만수라는 글씨 위로 학과 하얀 구름들이 어울려 춤추고 있고
아래는 연꽃을 사이에 두고 원앙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글씨 양쪽으로 풍성하게 피어 있는 목단꽃 위에 나비 세 마리가 놀고 있다. 양 옆의 깃은 만자문양으로 막음을 했다.
그녀의 야무지고 맵시 있는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손끝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모두 각별히 조심해라! 지금이야 이름뿐이겠지만 명색이 조선 최고의 칼잡이다’

걸걸한 목소리였다.
그도 한 때 훈련도감의 별무사로 있다가 종사관이 된 이후 몇 년째 별장직에 제수되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성판윤의 사병군장으로 들어간 협도의 고수 천덕기였다.
그들은 삼년 전 이 일로 다시 만나서 한성판윤이 비밀리에 지시한 몇 가지 일들을 함께 해 치우기도 했다.

목책더미 뒤쪽에서 조심스런 발자국들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긴 모래밭을 따라 쫓아오던 사내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도 허리를 낮춘 채 병장기를 번뜩이며
목책더미 왼쪽으로 접근 하고 있었다.
환도를 빼어든 서너 명이 칼을 겨누고 두어 발 앞으로 나서자 그 옆의 장창과 엄파가 허공을 크게 한번 휘두르며 거들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천덕기가 나서서 협도를 옆으로 뉘어 잡으며 그들을 말렸다.

‘아니다! 너희들은 저 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영감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라’


  -목록보기  
제목: [Day by Day]-142 / '木魚' 46 - 만져 보다_ 목어내력 04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8-20 15:31
조회수: 3010


day_080820_1.jpg (178.5 KB)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