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05
['木魚' 45 - 바람 불다_ 목어내력 03]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갯벌을 지나 갈대숲에 다다랐을 무렵에
인기척에 놀란 논병아리 두어 마리가 짧은 소리로 키리릭 울며 겨울 밤하늘을 푸드득 날아올랐다.
더 놀란 것은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급하게 갈대숲 앞에서 몸을 엎드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 때 갈대숲 뒷쪽 언덕에서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 오른쪽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작은 수로 둔덕에 숨어 있던
사병들 여나믄 명이 포진을 하며 각각 병장기를 뽑아드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렸다.

남자가 자신의 품에 안고 있던 돌배기 아이를 여인의 품으로 옮겼다.
한 손으로 여인의 등을 감싸며 눈으로 해망산 언덕에 서있는 큰 소나무를 가리켰다.

요 며칠 저 놈들 움직임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더니.... 결국 모든 것이 저놈들 짓이었어....
내가 놈들을 유포 쪽으로 유인하여 따돌릴 동안 당신은 아이와 함께 이 갈대숲 오른쪽을 따라서
골짜기 지름길을 이용해 저기 언덕 큰 소나무 뒤의 덤불속에 들어가 숨어 있으오.
나는 저 자들을 따돌리고 수화리 뒷산으로 해망산을 넘어가 당신에게 가겠소.
그 동안 당신이 날 기다려야 하오. 오늘따라 밤바람이 몹시 차구려.
아무래도 저 자들을 따돌리려면 어차피 한 판 해야 될 것 같아서 이 두꺼운 윗옷은 오히려 짐이 될듯하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동안 여자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연신 바튼 잔기침을 쿨럭였다.
남자는 두꺼운 배자를 벗어 여자의 머리와 등에 둘러 소매를 이용해서 가슴팍에 꽉 묶어 주었다.

여자가 남자의 오른 손을 꽉 쥐어 자신의 저고리 옷섶 사이로 밀어 넣었다.
여인의 맨가슴은 희미한 불기운이 남은 아궁이처럼 따뜻했다.
남자는 여인이 자신의 얼어붙은 손을 그녀의 가슴에 받아서 덥혀주는 이유를 잘 알았다.
무사의 눈과 코와 귀는 칼을 쥔 손바닥에 있다. 모든 기운을 칼날을 통해서 감지해야 하는 손이
추위에 곱아 있으면  장님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와 함께 살아 온 것이 겨우 3년 세월이다.
짙은 감청색 겨울 밤하늘이 그녀의 가지런한 가르마에 푸르스름하게 내려와 앉았다.
1년 전 아들을 낳은 뒤로 그녀의 몸이 급속하게 병색이 들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녀는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했다.
누비이불에 돌돌 말린 채 그녀의 품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돌배기 아들의 자두 빛 뺨에서 눈을 떼어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뺨에 하얀 눈물이 한줄 흘렀다.

여인이 남자의 허리춤으로 손을 넣어 복대가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푸르스름한 가르마에 입술을 댄 채 남자가 말했다.

여보 사랑하오, 당신과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오.
혹시 자시 까지도 내가 당신에게 오지 못하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지체없이 해망산을 넘어 남양 용두리 장개 성님에게 가면 모든 걸 알아서 해 주실 거우.
날이 밝기 전에 성님 식솔들과 함께 배를 타고 육섬 풍도 바다를 건너야 하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이마에서 입을 떼고 그녀의 가슴팍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 돌아서서 허리를 낮춘 상태로 갈대숲 왼쪽으로 바람처럼 달렸다.
갈대숲 너머 언덕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유포 쪽으로 튄다! 막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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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1 / '木魚' 45 - 바람 불다_ 목어내력 03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8-18 12:37
조회수: 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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