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수장/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6.28

[수장]

바다의 날씨는 천변만화 했다
바람이 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배 뒤 고물간에 꼿꼿하게 앉아서
바다 끝을 바라보는 '바리'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리'를 빙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의 눈이 광기를 뿜어냈다
그 많은 눈들이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옷을 입은 채 바다로 들어가 반듯이 누웠다
하얀 옷깃이 잠시 부풀어 올랐다가 바닷물에 적시며 천천히 풀어졌다
한동안 그녀의 몸이 가라앉지 않고 파도 위에 둥둥 떠 있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눈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렀다
그가 아는 사람들도 눈에 흰 창을 허옇게 드러내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녀의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닷물 속에서 그녀가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살풋 웃었다

'바리'는 그렇게 바다에 수장되어 죽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저 광기를 뿜어대는 눈들 앞에서
그녀는 바다 저 밑에 가라앉아 천년 세월을 또 기다릴 것이다
그녀가 천년 동안 누워있는 바다 밑에는
하늘과 땅이 있고, 강과 바다가 있고, 산과 들과 바람이 있고,
해와 달도 날마다 뜨고 질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바닷속 비밀을
오직 자기 혼자만 안다고 믿었다

혹시, 그도 '바리'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도 '바리'는 배 위에 그대로 앉아서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바리’가 입을 열었다

‘동해 바다가 펄펄 끓기 전에 이 땅의 꼬리가 먼저 불에 탄다
사람들은 지랄병이 심해져 모두 아귀처럼 풀을 뜯어먹고
나무뿌리를 파먹고 모래를 씹어 먹고 이제 남의 살을 뜯어 먹다가
마지막엔 자기 살을 베어 먹는다
사람 중에 사람이 없으니 이 땅은 주인 없는 땅이 되어 영원히 버려질 것이다‘

그녀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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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10 [수장]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6-28 15:13
조회수: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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