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바람길/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7.5

[바람길]

그녀는 이 폭풍우가 그치기 전에 이승을 빠져나가는
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바다를 베고 잠들었을 때 속히 가야 한다
이 바람길 끝에 문이 있다'

하얀 포말이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는 배 멀미를 심하게 했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신물을 꾹 삼키며 외쳤다

'세상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이 열리는 법이다'

작은 배는 파도 위에서 벌써 다섯 바퀴째 나뒹굴었다
파도 끝에 매달린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우리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가 멀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게워내기 시작했다
누런 물과 똑똑 끊어진 면발과 허옇게 탈색한 김치쪼가리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똥구멍으로 나가기 직전 것 까지 모두 목구멍으로 올라와 게워냈다
이제 더 나올 것이 없어서 헛구역질만 하고 있는 그의 입술에
긴 실처럼 끈끈한 침이 매달렸다

식음과 잠을 끊고 강과 광야에서 1백일 동안 악마와 싸워 이긴 그이는
보리수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대각을 이룬 그이의 몸에서 아름다운 빛이 났다
그이를 좋아하던 여자가 우유 한 사발을 그이에게 바쳤다
우유에서 풍기는 싱싱한 향기에 그이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이는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던지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즉시 뱃속이 부글부글 끓더니 설사를 시작했다
빈속에 갑자기 들어간 찬 우유가 탈이 난 것이다
몸에서 모든 것이 빠져나갔다
방금 마신 우유뿐만 아니라 창자도 십이지장도 간도 쓸개도 위도 심지어 혓바닥까지
뿌리 채 뽑혀서 똥구멍으로 빠져나갔다
눈도 코도 입도 몸에서 발산하는 아름다운 빛도 모두 빠져나갔다
이런 극심한 설사를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아마도 2500년 전 당시 그이의 몸과 정신의 황망함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결국 그이가 수년 동안 세상을 헤매면서 금과옥조로 여겼던 영혼마저도 빠져나갔다
육신은 빈껍데기뿐, 아무것도 없다
존재조차 사라졌다
그이의 나이 35세 12월 8일 비로소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정적이
빈껍데기만 남은 몸을 가득 채워 해탈의 세계에 들었다
이후 그이는 배앓이로 평생을 고통 받았다
그래서 턱을 한 손에 괸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뒤로는 설사를 하면서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적도 많았다
좋은 것, 기쁜 것, 맛난 것, 예쁜 것, 나쁜 것, 고통스러운 것, 매끈한 것,
껄껄한 것, 편한 것, 답답한 것, 쓸쓸한 것, 미운 것 에 마음이 동하면
설사가 금방 그의 편향된 마음을 끊어주었다
그이는 결국 그 병으로 인해 80세에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 입멸했다

그의 헛구역질이 보리수나무 아래 그이의 설사처럼 위대하게 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설사와 구토는 서로 빠져나오는 길과 구멍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행위의 장소성이다
우루베라촌의 보리수나무 그늘과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배의 돛대 밑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바다 밑에 외롭게 잠겨있던 잠수함이
눈알을 바다위로 올려서
우리의 그런 모습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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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12 [바람길]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7-04 13:52
조회수: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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