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문자/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7.12

[문자]

'tan 알파각'과 '밑변 a'가 주어졌어도
생략된 공간에서는 '높이 b'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그는 인간들이 생략해버렸던 공간을 '대충' 가늠했다

이럴 때의 '대충'은 오히려 명확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배는 미끄러지듯이 달려갔다

세상의 모든 시계 바늘이 정지했다
바람도 그치고 소리도 그치고 빛도 멈추었다
슬픔도 그치고 사물들의 파동도 멈추어 섰다

빛이 없다,
그렇다고 어둠도 아니다

방향에 속도가 주어지지 않으면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
그래서 속도는 가끔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내는 마약이다
나는 바쁘다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잡아채기 전에
그가 대충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죽을 둥 살 둥 달려가야 한다

저 멀리서 하얀 유령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금방 공간을 꽉 채웠다
그들이 유영하면서 서로 몸을 잇대고 구부려 무슨 문자 같은 형상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어  또 다른 문자나 기호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수없이 그 짓을 되풀이 했다

그가 유령들이 만든 형상을 채 해독하기도 전에  
그들은 금방 흩어졌다가 다시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바리'가 일어서서 그 문자를 읽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배 밑창에 하얀 두개골이 닿아 긁히는 소리가
마치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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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14 [문자]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7-12 16:55
조회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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