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길 떠나는 연습/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6.13


[길 떠나는 연습]

떠난다는 것은 항상 두렵다

세상은 온갖 슬픈 빛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는 나무에 파여진 큰 구멍에 들어가 숨었다

"나는 이 높은 나무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른다
이 구멍 속에서 내내 지내는 것이 차라리 편안하다
나무뿌리가 뻗은 땅속에는 내가 배고프지 않을 만큼 먹을 것이 있다"

빈 술병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덤불 위에
'바리'가 금갑이 씌워진 말을 놓아주며 말했다

"너는 이 말을 타고 내 뒤를 따라오라"

아무래도 그는 나무 구멍에서 뛰어내려 말 등에 내려앉을 자신이 없었다
그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바리'가 스마트폰 두 개를 꺼내어 땅위에 가지런히 놓고
그녀의 두 발을 조심스럽게 스마트폰 위에 한 발씩 올렸다
그리고 양팔을 좌우로 넓게 펼치자 스마트폰이 그녀의 몸을 천천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나는 이렇게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스마트폰을 두 발로 딛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연습을 몇 번이나 더 해보였다

나무 구멍 속에서 바리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그녀를 꾸짖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너의 위로가 내 영혼을 치유하지 못한다
더 이상 나를 동정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바리’가 스마트 폰 위에 올린 발을 강하게 한번 구르자
그가 숨어있는 나무구멍까지 그녀의 몸이 급하게 솟아올랐다
그녀가 팔을 양쪽으로 벌려 몸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한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침이 튀겨 나갈 정도로 더 크게 악을 썼다

‘그러니까 저승사자처럼 아무 때나 나를 찾아오지 마라’

그녀는 그냥 조용히 웃기만 했다

덤불 속에 버려진 빈 술병 안에 숨어있던 여러 소리들이
하나 둘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사람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말과 소리들이다
때로는 위로를 가장하여 오히려 상처를 치명적으로 덧내는 소리와 말도 있었다

네가 스스로 위로 받기 위해서 상처받은 뭇 다른 영혼들을
위로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의 절대영역이란 본디 슬픔과 상처 속에 존재한다
내 영혼의 상처는 내가 치유한다

나는 나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것이 이승이든 저승이든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나는 나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산을 움직이는 일이든 바다를 메우는 일이든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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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04 [길 떠나는 연습]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6-13 17:34
조회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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