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바다 밑에 숨어있는 칼/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6.19


[바다 밑에 숨어있는 칼]

바다 밑에
큰 칼이 숨어있다

만 년 전에 애비가 만든 칼이다
애비가 그 칼을 담금질 할 때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바닷물에 식혔다고 했다
그때 마다 바닷물이 펄펄 들끓고
칼은 쉭쉭 울부짖었다

그 칼날에 사람의 목이 천 년 동안 날마다 수 만 개씩 잘렸다
오늘도 큰 칼은 그가 자른 수천수만의 백골 위에 길게 누워있다
칼이 피맛을 그리워 쉭쉭 울 때면 바다가 요동을 쳤다

'바리'가 칼날 위에 장하게 서서 칼에게 말했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의 피를 머금은 칼아!
바다 밑에 누워서 무엇을 꿈꾸느냐'

칼이 큰 몸을 가늘게 떨면서 울었다
곧 요동을 치려는 칼을 '바리'의 맨발이 지그시 누르며 칼날 위를 천천히 걸었다

'칼아! 칼아!
내가 너의 자루를 잡아 어깨위에 높이 올려
동쪽을 향해 비껴들고 서쪽을 향해 흩뿌리며
남쪽을 두고 고개를 돌려 북쪽을 향해 눈물 한 방울을 흘릴 것이다'

'바리'가 칼날을 밟으며 자루 쪽으로 걸었다
저 칼자루를 쥐지 않으면 밤바다를 잠재울 수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알은 칼이 뉘어진 곳 주변에 숨겨져 있다

꾀가 많은 사람들은 알을 원격조정하기위해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 폰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저들의 스마트 폰과 컴퓨터가 발신하는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서
바닷물의 염도를 훨씬 더 높여야 한다
이쯤 되면 바다 속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저들의 전파에 동의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한쪽으로 모이고
알을 지키겠다는 물고기들도 떼를 지어 다른 한쪽으로 모인다
바다는 아무런 구호나 깃발이나 쇠파이프나 물대포나 최루탄이나
유인물 한 장도 없이 금방 아수라 세상으로 돌변한다

산소탱크의 기압계가 많이 떨어졌다
나는 황급히 두 발로 물을 차면서 수면위로 올라갔다

검은 바다 서쪽으로 달이 지고
곧 동쪽 바다에서 새로운 달이 거푸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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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06 [바다 밑에 숨어있는 칼]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6-19 14:46
조회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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