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19
['木魚' 53 - 칼속에 들다_ 목어내력 11]

숨을 죽여 바라보고만 있던 사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병장기를 다시 거머쥐는 소리가 들렸다.

김무석이 어깨 높이로 올렸던 칼을 천천히 거두어 왼손으로 옮겨 쥐며 김치호를 향해서 돌아섰다. 칼을 왼손으로 옮기면서
오른손 토시 속에 들어있던 2개의 표창을 은밀하게 손바닥 안으로 내려 감춘 채 김치호가 타고 있는 말에 물린 재갈을 바라보았다.
입속에서 닳아진 재갈은 겨울밤 별빛에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손에 쥐어진 호로 모양으로 잘록한 표창의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날릴 시점을 가늠했다.
좌우의 술렁거리는 소리를 깨고 김치호가 된소리로 말했다.

‘으흠....과연 조선 최고의 칼잡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구나.
오늘 밤 귀한 고수들이 세 명이나 죽는 꼴을 봐야 하다니.... 재주가 아깝다만...
이젠 칼로 해결할 일이 별반 없어서 널 살려둘만한 가치가 없다.
오늘 네 놈의 솜씨를 구경할 만큼 했다.
사수들은 지체 없이 살을 먹여라!‘

여섯 명의 궁수들이 살통에서 살을 뽑으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와 시위에 재는 순간에
김무석이 허리를 크게 틀면서 김치호의 명치끝을 향해 오른손을 힘껏 뿌렸다.
두 개의 하얀 선을 그으며 표창이 날아갔다.
김치호가 거의 반사적으로 말 등에 엎드렸으나 표창 한 개가 그의 왼쪽 눈에 박히고
나머지 한 개가 그의 갓 버렁을 뚦고 뒤쪽으로 날아가 모래위에 떨어졌다.
김치호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마치 창포묵이 으깨지는 촉감이 김무석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통해 강하게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여섯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1발은 비껴 날아가고, 2발은 가슴에, 2발은 옆구리와 복부에, 그리고 남은 1발은 어깨에 받았다.
화살이 몸에 박히는 충격으로 그의 몸이 선채로 모래위에서 반자 정도 뒤로 밀려나면서 잠깐 휘청거렸다.
왼 손에 쥐고 있던 칼자루를 거꾸로 돌려 쥐어 등 뒤의 목책에 칼끝을 박아 몸의 균형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다시 바람 한 줄기가 검은 바다에서 불어와 목젖을 지그시 눌렀다.
오른손을 허리춤에 넣어 손끝으로 복대를 더듬었다.
손끝에 묻어나는 자수 바늘땀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 같았다.

김치호가 한쪽 눈에서 쏟아지는 피를 손으로 막은 채 일어나며 악다구니를 했다.

‘저 독한 놈! 내가 진즉에 너를 없애야 했다’

‘그렇다. 나는 죽는다. 대신에 너는 평생 한쪽 눈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여봐라! 뭐하는 게야, 저 놈이 쓰러질 때 까지 다시 살을 먹여라!’

궁수들이 일제히 살을 재어 시위를 길게 당겼다.
김무석은 오른손으로 허리춤 속 복대의 촘촘한 바늘땀을 더듬다가 움켜쥐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해망산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중턱 언덕에 키 큰 소나무 한그루의 검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의 검은 형체가 자기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다시 날아오는 여섯 개의 화살을 고스란히 가슴과 배에 받았다.
짙은 감청색에 잠겨있는 겨울 밤하늘에 별빛이 파랗게 떨고 있었다.
그는 쌍 섬 앞바다, 군자만의 검은 밤바다를 저 멀리 어둠 끝부터 가까운 해안까지 마치 읽어내려 오듯이 보다가
해망산 언덕의 키 큰 소나무를 눈에 가득 담으며 모래위에 천천히 쓰러졌다.

먼 훗날 사람들은 이날 밤 싸움을 전설로 만들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전설 속의 숫자가 시시때때로 바뀌어 졌다.
왜나라에서 제일가는 열두 명의 무사와 별무사 출신의 사병 수십 명이 김무장의 칼과 대적하였다. 먼저 나선 사병 수십 명이
선채로 그의 단 칼에 목이 베어지고 그들의 어깨와 잘린 목을 밟고 날아가 병풍처럼 늘어선 왜무사 열두 명의 허리를
모두 두 동강이를 내자, 잘 조련된 별망성 수군 수십 명의 사수가 쏜 화살이 하늘을 까맣게 덮어 날아왔다.
그 중 절반을 그의 몸으로 받아내고 절반은 칼로 되받아 쳐서 궁수 절반이 자신들의 화살에 되맞아 죽고
그 중 한 개의 살이 한성판윤 둘째 아들 김치호의 왼쪽 눈에 박혔다.
솔가지에 솔잎이 돋듯 수많은 화살을 시커멓게 받은 김무장의 몸이 마치 큰 소나무처럼 보였다.
그가 칼을 하늘로 높이 던져놓고 몸을 솟구쳐 그의 칼 속으로 스며들어가 시화군자만 음섬 앞바다로 빠졌다.
아직까지 아무도 김무장과 그의 칼을 본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가 그의 칼과 함께 몸을 던졌던 음섬 바다속에서
가끔 소울음이 크게 들릴 때 마다 그것은 김무장의 절통한 원혼이 울부짓는 소리라고 하여 음섬을 우음도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날 밤 실명한 김치호의 왼쪽 눈을 들어 이 전설의 증거로 삼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 싸움이 벌어졌던 유포리 해안가 가무잡잡한 모래를 동네 어귀에 뿌려두거나 문밖에 뿌려두면
왜구나 수적은 물론 역병조차 감히 범접을 못한다하여 그곳을 지나는 누구나 모래를 한 줌씩 담아 갔다.
세월이 거듭 할수록 유포리 해안가 모래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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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9 / '木魚' 53 - 칼속에 들다_ 목어내력 11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9-01 10:07
조회수: 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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