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바리/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7

[바   리]

그가 ‘바리’를 처음 만났을 때
책에서 읽었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기위해
피안의 강을 건널 때 그들 가엾은 영혼들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실 자체를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사실은 사실일 뿐, 믿고 안 믿고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녀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을 이미 훤하게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누구나 빤하게 알고 있는 일이
간혹 사실이다 아니다 혹은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이런 사소한 문제로
비화되어 정작 본질을 망가뜨리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가’

‘나라의 절반을 갖는 것 보다는 훨씬 멋진 일이다
무엇의 절반이란 항상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뿐이다
모든 것을 갖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바리’는 죽은 부모를 살린 대가로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는 애비의 제안을
거절하고 피안의 강을 지키는 무조(巫祖)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무욕의 결정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사실은 애비의 제안을 그녀는 아주 섭섭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그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 강을 건너야 할 것이다’

‘너는 이미 네 번을 건넜다’

그가 의아해 하자 그녀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분명히 저 강에서 많은 영혼들과 함께 떠내려가는
너의 모습을 나는 네 번이나 보았다
내가 볼 때 마다 너는 악을 버럭버럭 질러대며
고통스러워하더구나
인간 세상의 온갖 육두문자를 동원해서
미국말 중국말 일본말 독일말 조선말로
여기저기에 욕을 퍼부어대는 너의 꼴이
좀 우습기도 하고
그 욕을 그냥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한가’

‘그렇다 네가 죽어서까지도 버리지 못한 이승에 대한 온갖 원한과 미련을
내가 정갈하게 씻겨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네 번씩이나 죽을 수도 있는 것인가’

‘백 번도 더 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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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01 [바 리]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1-18 17:26
조회수: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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