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22
['木魚' 54 - 칼을 거두다_ 목어내력 12]

김치호는 수하들이 눈과 머리에 감아준 수건을 누르며 이를 갈았다.
수건에 벌써 검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너희들 네명은 남아서 빨리 이곳을 수습하라! 특히 김무석의 시신이 관군의 눈에 띄면 낭패다.
시신에 돌을 달아 반월 수로 깊은 곳에 던지고 즉시 횃불로 수군들에게 신호를 보내라.
그리고 지체없이 반송리에서 해망사 절간까지 뒤져서 놈의 달아난 식솔을 찾아내어 숨통을 끊어라.
본진은 나와 함께 즉시 남양으로 달려가 오늘밤 안으로 용두리 장개 객주를 물고 내야한다‘

화살이 박혀 밤송이가 된 시신에 돌을 묶었다.
그의 채 못 감은 눈에 파란 별빛이 담겨 있었다.
그의 곧은 이마를 바라보다가 반쯤 뜬 눈을 쓸어 감겨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김 무장님! 죄송하우. 나도 이제 이 개 같은 사병노릇 그만두고 아버님이 하던 대장간 일이나 할까 하우.
부디 좋은 세상으로 가우‘

돌을 채우려고 그의 오른손을 곧게 펴자 피에 흥건하게 젖은 자수 복대가 김 무장의 손에 꽉 쥐어진 채 허리에서 풀어졌다.
그는 멈칫 거리다가 얼른 복대를 돌돌 말아서 자신의 소매 속 깊숙이 넣어 간수했다.

‘야! 니들이 김무장 시신을 저기 반월수로에 곱게 모셔라. 그동안 나는 이곳 모래밭을 수습 하겠다’

그들이 시신을 반월 수로 쪽으로 떠메고 가는 것을 보고
목책에 박혀 있던 김무석의 칼을 빼서 자신의 바지에 쓱쓱 닦았다.
그리고 저 만큼에 버려져 있는 칼집을 찾아서 칼날을 조심히 거두었다.
그는 그 칼의 내력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이 그 칼을 만들면서 몇 번이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생에서 마지막으로 만드는 칼이다.
네 녀석도 무뢰배들과 어울려 헛짓 그만 하고 이 만듬새나 잘 봐둬라!‘

아버님은 칼자루며 칼집까지 모두 완성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시렁위에 올려놓고
생각날 때 마다 가끔 내려서 칼날을 무명수건으로 닦아내면서 말씀하셨다.

‘음, 칼이 칼 밖에 되지 못하면 칼이 아니다. 사람에게 제마다 사주팔자와 관상이 있듯이
칼에도 그런 게 있어‘

그리고 자신이 김 무장에게 다녀가라는 아버님의 통기를 직접 전했던 것이다.
그 날 어스름한 저녁에 김 무장이 대장간 뒤뜰에서 이 칼을 천천히 빼어 들자
칼날이 칼집에서 스르릉 빠지며 김 무장이 칼을 쥐고 있던 내내 칼날이 떨면서 낮은 소리로 길게 우~웅 울었다.
먼저 하얀 칼날이 김 무장을 바라보았다.
김 무장은 칼의 하얀 시선을 편안한 표정으로 받았다.
칼과 사람사이에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자 잠시 허무한 무엇이 감돌 듯 하더니 이내 평온한 기운이 뒤뜰에 가득 들어찼다.

김 무장이 잠깐 고개를 들어 칼날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이 칼끝에 걸려 칼날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김 무장의 뒤쪽에서 바라보던 아버님의 무뚝뚝한 얼굴에도 오랜만에 흡족한 미소 같은 것이 스쳐지나 갔다.

자신의 머리 수건을 풀어 칼에 둘둘 말아 목책 밑의 모래를 손으로 급하게 파서 묻어두고 그 위에 큰 돌멩이와 자갈을 몇 개 올려놓았다.
뒤로 물러나 칼을 묻어둔 위치를 눈짐작으로 대중하면서 수 일 내 이곳에 몰래 와서
이 칼을 꼭 자신이 보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래밭 위의 수습이 대강 끝난 것을 확인하고
그가 기름 솜이 달린 막대기에 부싯돌로 불을 붙여 밤바다에 떠서 출렁이고 있는 군선 쪽을 향해 흔들었다.
곧 바로 군선에서 횃불로 크게 원을 돌려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며 뱃머리를 이 쪽 모래밭으로 돌리고 있었다.

수습을 마친 일행은 해망산으로 지름길을 잡아 급하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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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50 / '木魚' 54 - 칼을 거두다_ 목어내력 12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9-02 11:00
조회수: 2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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