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1.18
['목어' 05 - 손가락을 빨다]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안개는 더욱 진해졌다.
앞도 뒤도 옆도 위아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조금 답답했지만
정다운 이의 품속에 내 한 몸을 모두 맡겨버린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내 주위를 꽉 틀어막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듯이 어느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내 몸을 숨길 수 있으니
무엇보다도 포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얀 조가비 안에 숨어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오로지 탯줄 하나로 목숨을 부지하면서
어머니 자궁 안에 들어 있을 때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릎을 두 손으로 꽉 부둥켜안아 몸을 둥글게 오그려서 마치 태속의 아이 같은 형상을 취해보았다.
어머니의 자궁과 나의 배꼽이 탯줄로 연결되어 모든 영양과 정보와 숨쉬기가 되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오로지 내 귀를 스치는 물소리만 들렸다.
물소리와 나의 맥박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또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내 맥박은 타악기처럼 박자를 맞추어 나가고 귀를 스치는 물소리는 관악기의 맑은 음으로 선율을 타고 있었다.

잔뜩 오그린 내 몸이 어머니의 자궁에 들었다.
어둡다.
나는 우주 한 구석에 떠 있는 작은 별이다.
하얀 안개 대신에 태허의 어둠이 잔뜩 오그리고 있는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저 어두운 우주에서 떠돌이 별 하나가 빨갛게 자기 몸을 태우면서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주 작은 별이다.
어둠 저편 멀리서 크고 작은 별들이 서로 원심력으로 혼돈을 만들고 구심력으로 자기 질서를 조정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세밀한 소리를 내면서 나의 맥박이 만들어내는 박자 속으로 끼어 들어왔다.
이제 음악도 탯줄을 통해서 내 배꼽으로 듣고 있다.
갑자기 심한 공복감을 느꼈다.

내 입이 뭔가를 빨고 싶어 했다. 나의 입술이 허공을 애타게 더듬고 있다.
엄지손가락을 입속에 넣었다. 나의 입은 지체 없이 엄지손가락을 강하게 빨았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강하게 빨았지만 그러나 배고픔은 가시지 않았다.
가슴 가득히 허무감이 찾아왔다.

허무 그 텅 빈 공간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슴의 반쪽은 안심이 되었고 나머지 반쪽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나의 배꼽이 뜨거워졌다.
어머니! 그 여인은 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가 떨구는 눈물이 탯줄을 타고 나의 배꼽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 배꼽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아들아 어찌하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나에게 묻고 있는 목소리였지만 어머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소리죽여서 우는 당신의 목소리에 내 심장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더욱 강하게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아가! 어쩌다 네가 이렇게 변했느냐. 어머니가 울음으로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꼭 대답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이미 어머니가 알고 계시는 대답일 것이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거칠게 흔들며 어머니의 질문에 반항을 했다. 그리고 더욱 강하게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물소리가 만들어내는 가락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노래 부르듯이 흐느끼고 있었다.
아가! 이 험하고 고단한 세상에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의 그 가냘픈 몸으로 이 험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자꾸만 어디로 가느냐.
나는 어머니에게 악을 쓰고 싶었다.
제발 날 관 둬요!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예요.
그리고 저의 길을 묻지 마세요. 그러나 나는 악을 쓰는 대신에 더욱 강하게 나의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내 몸은 이 상태로 어디까지 내려가야 할까. 태허의 어둠 속에서는 위도 아래도 구분할 수 없다.
위 아래 옆 앞이 없다. 그저 내 몸이 오그리고 있는 그대로 내가 이 어둠과 혼돈의 중심이다.
물론 방향감각도 모두 잊어버렸다.

다시 눈을 떠서 몸을 펴고 균형을 잡아야겠지만 나는 둥글게 오그리고 있는 내 몸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고 감고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물속 바닥까지 내려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균형을 잡아야 할 것도 비틀거릴 것도 없었다.

어둠속에 엎드려서 흐느끼던 어머니가 내 어깨를 잡으려고 갑자기 손을 뻗었다.
아가야. 가지 마라. 그곳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흠칫 놀라며 허리를 급하게 틀어서 어머니의 손길을 피했다.
몸에 기분 좋은 진동을 느끼면서 바닥에 엉덩이가 닿았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뜨고 허리를 세웠다.
나의 몸이 물속 바닥에 닿은 것이다.
물속 바닥은 안개가 말끔하게 걷히고 시야가 트였다.
내가 잠시 눈을 감고 어머니와 다투었던가 보다. 아니 눈물 탓인가.
눈꺼풀을 질끈 감고 있었던 탓에 시야가 모두 두세 개로 겹쳐서 보였다.
잠시 후에 두 겹의 사물이 천천히 합해지더니 이젠 선명하게 보였다.

세수 대야 만큼이나 커다란 검은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게 뭔가 싶어서 그 까만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물속 안개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이 바닥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이 물건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바닥까지 함께 내려왔던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그가 당황했던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왜 우는 공?’

‘....’

‘다 큰 사람이 손가락은 왜 빨고 있는 공?’

나는 대답대신에 깜짝 놀라 바닥에 손을 짚고 엉거주춤하면서 뒤로 물러앉았다.
물고기를 닮은 괴물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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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51 / '목어' 05 - 손가락을 빨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1-18 15:02
조회수: 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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