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은일 아우가  어머님이 계시는 해남 본가 뒷산에서 서너뿌리 캐 왔다며
그 중 한뿌리를 소박한 오지 화분에 담아 왔다.
은일 아우 왈,
"성님, 하루종일 작업장에서 혼자 지내기 적적하실 텐데 어릴적 생각하면서 잘 데리고 있으쇼 잉!
꽃이 지고나면 작업장 문앞 손바닥만한 정원의 소나무 아래 곱게 심어 놓으면 될꺼요!"

꽃 두송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또 포기 안쪽에서 새로운 꽃대 하나가 곱게 올라오고 있다.
내 어렸을 적에 이 '난'을 우리들은 '꼼밥'이라고 불렀다.
'꿩밥'의 사투리 표현일 것이다.
햇빛 좋은 곳의  키작은 소나무 그늘 아래 군락을 이루며
아마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 동백과 더불어 이 '꼼밥'이다.
겨울을 막 넘긴 산허리에 달라 붙어 나무를 하다가 이 군락지를 만난다.
방금 올라오는 꽃대를 한주먹씩 뽑아서 한개씩 입속에 넣으면
약간 달큼한 향기에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좋았다.

이 때 쯤이면 겨우내 삶아먹던 고구마도 모두 떨어져
악동들은 기계독이 가득한 까까머리를 득득 긁으며 심심한 입을 채워 보려고
주둥이를 여기저기 킁킁 대다가
이 '꼼밥' 군락지를 발견하면 마치 석달열흘 굶던 넘이 쌀밥 한 그릇 만난 것 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어린시절을 훨씬 지나 대학시절쯤에
나는 이 '꼼밥'나무가 어설픈 졸부나 책상물림들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는 '란'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선배집을 놀러 갔을 때 그가 물을 적신 하얀 손수건으로 '꼼밥나무' 이파리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닦으면서
이 蘭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亂說을 까길래
나는 별 의미 없이 대뜸  "이거 꼼밥 나문디.... 옛날 어렸을 때 나무하다가 이거  꽃대를 한주먹씩 뽑아서 먹었는디잉!" 하고
혼자 말 처럼 했다.
그가 눈을 화등처럼 치켜 올리며 물었다.
"이 꽃대를 뽑아서 먹었단 말이여?"
"그람이라우! 쏘옥 올라온 꽃대를 입에 넣고 씹으면 달키하면서 서근서근하니 먹을 만 합니다"
"엥! 이 꽃을 한 주먹씩이나 뽑아서?"
"옙! 꽃이 피어 새어 불기 전에 묵어야져!"
"무어라? 꽃을 씹어 묵어 분다공?"
그의 눈은 나를 무슨 짐승이나 되는 것 처럼 쏘아 보았다.
그날 나는 고향 뒷산의 '꼼밥나무'가 그들이 말하는 蘭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 꼼밥나무' '해남댁'이 은일 아우에 의해 고운 오지화분에 담겨 내 작업장을 지키며
아침마다 나와 조우를 한다.
난설을 까는 사람들은 이 꼼밥나무를 폄하하여 '똥란'이라고도 한다는데
나는 지들이 좋아하는 돌연변이종 이런저런 값나가는 것들 보다는
이 소박한 '꼼밥'이 훨씬 더 좋다.

솔직히 내가 어렸을 적에 이 꽃대를 딱 서너주먹 밖에는 먹지 않았다.
진짜 한가마니 정도 먹은 이는 전정호 아우일 것이다.
고향 하의도 뒷산 지천에 깔린 이 꼼밥이 전정호 아우의 입을 피해서
해남까지 건너간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실실 웃는다.

그런데 이 꼼밥뿌리에서 새 꽃대가 한개 올라오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어릴적 입맛이 생각나서 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저걸 뽑아서 입속에 넣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벌써 일주일이 후딱 지났는데
오늘은 기어코 맛을 보아야 겠다라는 생각으로 다시 들여다 보니 이미 꽃잎이 막 벌어지고 있다.

정호 아우의 입이 무서워 해남으로 피난간 이 꼼밥나무가 (물론 꼼밥나무는 목포 인근 섬이나 해남에도 지천에 깔려 있다)
은일아우에게 발견되어 이곳 안산까지 따라와서 초지동 작업장을 지키고 있다.
인연이란 이렇게 드라마틱해야 예술아닌 야술이 된다.

이 귀한 손님 '해남댁'이 꽃망울을 3개째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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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남에서 온 귀한 손님
이름: damibox


등록일: 2007-02-28 17:49
조회수: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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