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2.25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02

['木魚' 103 - 회복하다]

우리는 주워온 못이나 철사에 붙어 있는 붉은 녹을 돌멩이로 두드려서 제거하고
구부러진 것들을 바로 폈다.
청둥이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꽃지는 저쪽 한켠에 뒤돌아 앉아
금이 간 오른쪽 집게발을 붕대 대신에 노르스름한 비닐끈으로 촘촘히 감고 있었다.

먼저 폐그물에서 추려낸 나일론 끈과 작은 못을 이용해서
찢어진 목어의 턱밑 지느러미를 수리했다.
그리고 목어의 몸통에 크게 금이 간 곳을 큰 못으로 박아 고정을 시켰다.
돌멩이로 두들겨서 못을 박을 때 목어의 몸에서 울리는 소리가
적막하던 물속에 가득 찼다.  못을 박을 때 마다 육중한 나무 몸이 움찔거렸지만
목어는 아프다는 표정도 없이 잘 견디어 냈다.

내가 한 뼘 길이의 큰 못을 목어의 몸통에 때려 박을 땐
청둥이가 마치 자신의 몸에 못이 박히는 듯이 진저리를 치면서
도저히 바라볼 수 없다며 고개를 뒤로 돌리고 눈을 꼭 감았다.
못 한 개가 다 박힐 때 마다 청둥이가 목어의 얼굴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견딜만하냐고 물었다. 목어는 괜찮다는 표시로 큰 눈을 껌벅였다.

한 뼘 길이의 큰 못이 목어의 몸에 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돌멩이로 강하게 아홉 번을 때려야 했다.
못을 첫 번째 내리치면 쇠못이 울리면서 낮은 소리가 났다가
두 번째, 세 번째 거듭 할수록 점점 높은 소리로 변했다.
쇠못의 울림이 목어의 나무 몸과 합쳐져 미묘하게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마지막 아홉 번째 내리칠 땐 쇳소리는 없이 돌멩이가 나무 몸을 때려 만드는
부드럽고 낮은 소리가 은은하게 물속 가득 울려 퍼졌다.

몸통에 못을 박는 동안 꽃지는 목어의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수리하느라 홀쳐놓은
나일론 끈의 매듭을 집게발로 매끈하게 다듬었다.
목어의 몸통에 난 큰 금이 겨우 실금처럼 좁혀졌다.
내가 쌀섬 흰바위들 사이에서 하얗게 시든 해초들을 뜯어와
실금사이에 다져서 밀어 넣었다.
하얀 해초를 실금 사이에 철사로 쑤셔서 밀어 넣으려고 하는 나를 청둥이가 말렸다.
그리고 자신의 노란 부리로 조심스럽게 두드려 다져가면서
하얀 해초를 밀어넣어 실금을 거의 완벽하게 때웠다.

수리를 모두 끝내고 나니 우리들이 주워온 것들 중에 두 뼘 길이의 철사 한 개만 남았다.
그것을 저 뒤쪽으로 던져버리려고 하자 목어가 잠깐 기다리라는 눈짓을 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목어는 청둥이의 왼쪽 발목을 가리켰다.
오른쪽 날개가 없는 청둥이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왼쪽 발목에 찼던
사슬고리를 물속도시에서 붉은 뿌리에게 쫓길 때 내가 벗겨 던져버렸던 것이다.
나는 금방 알아차리고 돌멩이로 두드려서 그 철사를 작은 팔찌 모양으로 돌돌 말았다.
꽃지가 그것을 받아서 아까 자신의 집게발에 붕대 대신에 사용하고 남은
노란 비닐끈으로 곱게 감았다.
철사가 청둥이의 발목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
청둥이는 꽃지의 섬세한 손놀림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꽃지가 집게발로 청둥이의 왼쪽 발목을 툭툭 가볍게 두드리자
청둥이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발을 들어올렸다.
꽃지가 청둥이의 발목에 조심스럽게 채워주었다.

‘히힛! 그 노란 발찌 너무 예쁘다.
뭐야? 혼인식에 무슨 예물 교환하는 것 같잖아!’

내 말에 꽃지는 부끄러워서 까만 눈을 등깍지 사이로 쏙 집어넣었고  
청둥이는 눈에 흰창을 깔며 나를 쏘아보았다.

목어는 수리가 모두 끝난 뒤에도 꼼짝하지 않고 바닥에 턱을 괸 채
물속 먼 끝자락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청둥이와 꽃지는 가끔 쌀섬 바다 밑 흰 바위를 돌면서 산책을 했다.
그 다음날은 대부섬 바로 앞에 있는 개섬을 거쳐서 터미섬까지 다녀왔다.

나는 근처를 둘러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목어가 엎드려 있는 곳 옆의 둔덕에 앉아서 외지섬 뒤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물속도시의 검은 장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귀를 기울이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나 망치질 같은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가끔씩 폭발음도 섞여 들렸다.
어떤 때는 그 폭발음에 내가 앉은 바닥까지 가벼운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속도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날마다 성장하는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눈’과 ‘하얀 사람’은 지금 이 시각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눈’이 흘렸던 시퍼런 눈물과
‘하얀 사람’의 어깨에 멘 금빛 삼지창이 서로 엇갈렸다가 겹쳐지기를 반복했다.

목어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 말조차 없었다.
우리들이 수리했던 턱밑 지느러미를 이틀이 지나서야 두어번 저어본 후
다시 그대로 엎드린 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어는 시화바다 너머 서해 큰 바다를 헤어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 꿈이 목어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나는 그의 표정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의 큰 눈망울 속엔 파란 바다가 넘실대고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이 담겼다.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청둥이와 꽃지의 평화스러운 모습이 멀리 보였다.
그 둘은 아침과 저녁에 하루 두 번씩 목어의 육중한 나무 몸을
세심하게 돌아보며, 박아놓은 못과 실금을 메우기 위해 다져 넣은 하얀 해초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지 확인했다.
청둥이는 왼쪽 발목에 찬 노란 발찌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정말 멋진 발찌였다.
이제 오늘 하루의 해가 떨어질 시간이다.

시화바다에 어둠이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목어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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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80 / '木魚' 103 - 회복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1-13 16:15
조회수: 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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