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14

['木魚' 104 - 스무하룻날]

시화바다가 어둠에 잠겼다.
헐거워진 왼쪽 아가미 때문에 그동안 가르릉 거리던 목어의 숨소리가
한결 정돈되고 훨씬 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청둥이는 금방 코를 푸르르 푸르르 골았다.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잠꼬대도 하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한밤중이 한참 더 지나서 달이 동쪽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달빛이 물속에 스며들자 그동안 조용하던 부유물질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달빛을 받아서 이곳 물속에 나름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누가 달을 몰래 베어 먹었는지 왼쪽 절반만 남아서 더 외롭게 보였다.

‘화! 너그러운 달빛이 너무 곱다’

꽃지가 숨을 포옥 내쉬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달빛을 닮았다.
물속에 들어온 반달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다시 보면 항상 제자리에 서 있다.
나는 위를 향해 반듯이 누워 눈을 감은 채 혼잣말을 했다.

‘오늘이... 몇 일이나 되었을꼬....’

‘저건 음력 스무하룻날의 달이다’

굵고 낮은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꼼짝도 하지 않고 한마디의 말도 없었던 목어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오늘이 ‘스무하룻날’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꽃지가 깜짝 놀라서 들어 올렸던 집게발을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아저씨! 이제 괜찮으신가 봐!’

‘그래. 이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청둥이가 훌쩍이며 잠꼬대를 했다.

‘이이잉, 꽃지가 달에 간다구.... 안돼! 안된다...이이잉’

그리고 몇 번 뒤척이더니 곧 천연덕스럽게 코를 핑핑 골았다.
음력 팔월 스무하룻날의 하현달이 중천에 떠올랐다.
나는 목어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건너편 두꺼운 벽이 조금씩 얇아지면서 허물어지고 있다.
얇아진 벽이 점점 투명해지고 허물어진 틈새로 바깥 냄새가 밀려왔다.
코끝이 싸하더니 가슴을 꽉 틀어막고 있던 응어리 같은 것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렇게도 두껍고 단단한 벽 한가운데가 녹아 무너지고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구멍 바깥에 거뭇하게 서 있던 누군가가 신선한 공기와 함께
방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 왔다.
그녀가 우리들의 깊은 잠을 내려다보고 있다.
꼭 감은 내 눈 속에서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물속도시의 별똥별을 싸고 있던 불꽃이 그녀의 눈자위에 일렁였다.
활 같은 입술이 붉었다.
내가 일어나려고 턱까지 덮어 올렸던 이불을 급히 걷어 내리려 하자
그녀의 발이 이불 윗자락을 살포시 밟았다.
이불깃을 잡은 손에 조금 더 강하게 힘을 써 보았지만
딸싹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안갖 힘을 쓰면서 이불을 걷어 내쳤다.
나의 빈손은 허공을 크게 휘두르고 말았다.
눈을 떴다.
내 눈엔 그녀의 창백한 얼굴대신에 새벽 여명이 가득 들어왔다.

‘모두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자!’

목어의 큰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지금 물이 가득 들어온 만조의 시간이다.
이제부터 물이 빠져나갈 것이야. 이 썰물 때를 타야한다.
우리는 썰물을 타고 마산수로를 빠져나가 곧장 서해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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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81 / '木魚' 104 - 스무하룻날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1-14 16:42
조회수: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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