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16

['木魚' 106 - 풍도 오십리 바닷길]

마산수로에서 빠져나온 썰물은 넓은 서해바다로 어머니의 치맛자락처럼 퍼져 나갔다.
나는 누애섬을 향해 죽을둥 살둥 모르고 헤어갔다. 가끔씩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의 몸을 잡아당겼지만 수구 앞의 물매미에 비하면 그 힘이 한결 눅어 있었다.
누애섬 꼬리 끝 바다밑에 도착하여 내 키 만큼씩이나 자라있는
진지리 해초 줄기를 붙들어 잡고 뒤돌아보았다.
저쪽에 눈을 질끈 감고 물갈퀴 발로 열심히 물을 차며 헤어오는 청둥이가 보였다.
눈을 감은 탓에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청둥이를 내가 불렀다.
마산수로에서 쏟아지는 물살이 거세게 우리의 몸을 몰아부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청둥이가 날개로 나의 팔을 감아 거센 물살 속에서 균형을 잡았다.
한참을 더 기다리자 이쪽을 향해 헤어오고 있는 목어의 모습이 보였다.
몸짓이 커서 그만큼 물살의 저항을 많이 받겠지만 그러나 그의 헤엄은
거센 물살 속에서도 안정된 자세를 유지했다. 목어의 등위에 앉은 꽃지가 우리를 발견하고
집게발을 들어 올려 흔들어 보였다.
목어가 우리를 불렀다.

‘모두 안전하게 빠져 나왔구나.
이 누애섬 뒤쪽에 제부도가 있다. 제부도 서편으로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가면
우리들이 잠시 쉬어 갈만한 바위둔덕이 있어 .
풍도 앞바다를 건너려면 어차피 그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쪽으로 곧장 가자!‘

우리는 누애섬을 돌아서 제부도를 보고 단숨에 헤어갔다.
제부도 바다밑을 왼쪽에 끼고 돌자 하얀 모래사장이 길게 보였다.
이젠 물살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살갗에 느끼는 바닷물의 질감이 분명히 달랐다.
바닷물의 냄새도 달랐다.
나는 입술 밖으로 혀끝을 내밀어 바닷물의 맛을 가늠했다.
짭쪼름한 맛은 여전했지만 짠맛 뒤끝에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바다향기가
혀끝을 타고 내 몸 전체로 퍼졌다.
우리는 제부도 서남쪽 끝에 마치 제비 꼬리처럼 생긴 바위 둔덕에 도착하여
일단 한숨을 쉬었다.

청둥이는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우와! 우리나라를 벗어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이곳도 당연히 우리나라야!’

‘이 인간은 뭘 몰라도 한참 몰라!
시화바다가 우리나라지! 여긴 확실히 다른 나라야‘

내가 다시 댓거리를 하려고 하자 목어가 웃으면서 앞질러 말했다.

‘청둥이 너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는 시화바다지’

나를 보던 꽃지가 갑자기 집게발을 마주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런! 이마에 피가 흘러요!’

청둥이와 내가 서로의 이마를 쳐다보았다.
청둥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앙이! 요 인간이 부상당했어!’

내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 펴보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아까 수구를 빠져 나오다가 바다밑바닥에 곤두박질을 하면서
뭔가에 이마가 강하게 부딪쳤던 것이 이제야 기억이 났다.
청둥이가 목을 길게 빼어 나의 이마를 살펴보았다.

‘혹이 돋았어. 그리고 애그그... 살이 찢어 졌구만.
깃털이 없는 인간의 맨살은 이렇게 쉽게 다친다구!’

꽃지가 바위에 붙은 부드러운 파래 이파리를 뜯어 이마에 어린 피를 닦아내고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어서 상처에 발라주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청둥이가 갑자기 샘이 났던지 혼자서 중얼거렸다.

‘모야? 나도 어디를 쪼금 다쳤어야 했는데....’

‘히힛. 청둥이도 깃털을 죄다 뽑아버리고 나처럼 맨살 민둥한 몸으로
다니면 되지. 그런 청둥이의 몸둥이가 요리조리 뛰어 다니면 볼만 하겠다. 크흐흐‘

‘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꼭 잔인한 소리들만 골라서 풀어 놓는다구’

상처에 거품을 발라주던 꽃지가 까만 눈을 청둥이 쪽으로 쏙 빼어
힐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서해바다를 묵묵히 바라보던 목어가 시선을 돌려 청둥이를 훑어보면서 웃었다.

‘으잉! 나를 보는 목어아저씨의 눈길도 요상해졌어!’

‘이 썰물을 타고 풍도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곳까지 오십리 바닷길이다. 잠깐들 쉬었으면 출발하자!
바닷길은 물때를 맞추어야 하므로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다‘

우리는 풍도를 향해 오십리 바닷길을 힘차게 출발했다.
붉은 아침 해가 화성땅 바닷가에 다소곳하게 앉은 함경산 뒤에서 솟았다.
아침햇살이 바다 속에 넓게 들어오면서 바다의 모든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너울거리는 해초들 사이에서 잠을 자던 작은 고기들이 깜짝 놀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특히 한쪽 날개가 없이 왼쪽 날개만으로 헤엄을 치는 청둥이를
작은 물고기들이 유심히 바라보는 듯 했다.
어떤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청둥이의 뒤를 따라왔다.
한쪽 날개 하나로 헤어가지만 그의 왼쪽 발목에 찬 노란 발찌가 몸의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세상이 청둥이의 눈 앞에 끝없이 펼쳐졌다.
경이로움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며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청둥이는 금방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억지로 태연한 표정을 짓느라
눈에 힘을 주어 양쪽 볼이 씰룩거렸다.
자신을 쳐다보며 경계하는 작은 물고기들에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바다 밑에서 너울대며 환호하는 해초들과 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쫓아오는 작은 물고기 떼들에게
청둥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둥이가 턱을 바짝 치켜 올리면서 물을 잡아당기는 날개짓에 한껏 멋을 부렸다.
물속에 들어온 아침햇살을 받아 청둥이의 녹색 머리와 하얀 날개깃은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였다.

햇살이 바다 속에 수없이 많은 물무늬를 만들었다.
아른거리는 물무늬들이 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물속은 수천 수만개의 조명등을
주렁주렁 매달아 환하게 켜놓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였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며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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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83 / '木魚' 106 - 풍도 오십리 바닷길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1-16 16:59
조회수: 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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