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1. 05
['木魚' 100 - 다시 눈을 뜨다]

나는 꽃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내 엉덩이에 얼굴을 부비고 있던 청둥이도 놀라서 날개를 후다닥 거리며 눈을 떴다.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시화바다 물속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조금도 달라진 것도 없이 똑 같았다.
우리는 물속도시로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인 사발바위 앞에 도착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일상으로 귀환 했다. 눈에 초점이 잡히면서 주위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앞의 사발바위는 아직도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목어가 배를 바닥에 대고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꽃지는 이미 청둥이의 등에서 내려와 목어 옆에 앉아서 청둥이와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둥이가 목어에게 우르르 달려가더니 뺨에 얼굴을 부비면서 울었다.

‘괙괙괙 목어 아저씨! 엉엉 아저씨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팔방으로 조각조각 흩어져 검은 물속에 둥둥 떠다녔어!
엉엉엉  하얀사람이.... 그 불쌍한 귀신의 남루한 몸둥이가 거대한 눈의 컴컴한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나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이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괙괙
거대한 눈이 하얀사람의 발바닥까지 몽땅 빨아들이는 것을 나는 이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구!
글구 꽃지도 벼락처럼 내리치는 붉은 뿌리에 바삭바삭 깨져버렸어!
나는 나쁜 놈이야. 꽃지의 깨진 등깍지 조각을 밟으며 걸음을 걸었어!
나 홀로 살아남기 위해 엉엉엉 찢어 발겨진 꽃지의 살조각을 밟고 걸었어.
엉엉엉 그런데 모두 이렇게 살아있다니.
아저씨! 꽃지야! 모두 살아줘서 고마워 엉엉 괙 괘액’

목어는 애써서 눈물을 참으며 태연한 척 청둥이의 머리에 큰 입을 부비면서 말했다.

‘이별도 없고 귀향도 없는 세월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가슴 아픈 이별도 있고 돌아갈 곳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울지 마라.
무의미한 언어가 가득찬 세월에 네가 겪은 슬픔은 보석처럼 귀하다. 청둥아 울지 마라’

목어에게 안겨서 울고 있는 청둥이의 날개깃을 꽃지가 집게발로 쓰다듬었다.
물속의 해가 벌써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후의 짧은 햇살이 우리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목어의 뒤쪽에 있는 사발바위에서 붉은빛이 점점 사라지고 은은하게 울리던 종소리도 멈추었다.
목어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발바위의 붉은 빛이 사라지기 전에 물속도시에서 빠져 나왔으니 다행이다.
만약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는 저 물속도시에 영원히 갇혀질 뻔 했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쌀섬으로 가자‘

우리는 떠나기 전에 멀리 보이는 물속도시의 검은 장벽을 바라보았다. 장벽은 훨씬 더 높아졌다.
그리고 여전히 가끔 폭발음을 내면서 자꾸만 커가고 있었다.
하얀사람은 두 번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 물속도시 안에서 거대한 눈과 하얀사람은 서로 쫓고 쫓기면서 가슴에 가득한 원한을 함께 녹여가고 있을 것이다.
내일 정오에도 어김없이 인간들이 흘려보낸 욕망의 쓰레기들이 저 도시 속으로 흘러들어가 빌딩들은 자꾸만 더 높아질 것이다.

꽃지가 맨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청둥이가 헤어가고 목어가 몸을 돌려서 그 뒤에 섰다.
턱밑 지느러미를 천천히 움직이며 헤어가는 목어의 몸에서 자꾸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왼쪽으로 기울었다.
붉은 뿌리에 휘감긴 탓에 왼편 턱밑 지느러미가 너덜거렸다. 나도 목어의 뒤를 따랐다.

물속도시 쪽에서 다시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물속도시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물속도시를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물속도시의 외곽에 둘러선 시커먼 장벽이 아득했다.
도시의 하릴없는 건물들도 점점 어두움에 잠겨가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거대한 눈의 자취가 얼핏 스쳐지나갔다.
장벽너머 빌딩의 어느 창문에 방금 불이 켜진 듯 했다. 사람의 그림자가 비꼈다.
그 그림자의 어깨에 금빛 삼지창이 보였다. 그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 어둠속에 서린 거대한 눈이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같은 눈은 분노 대신에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의 눈꼬리에 한방울 눈물이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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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5 / '木魚' 100 - 다시 눈을 뜨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1-06 11:50
조회수: 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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