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1.17
['목어' 01 - 얼음을 먹다]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다.
사람들은 시원한 것만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너도나도 옷을 한 겹씩 벗고 다음날 또 한 겹씩 벗었다.
얼음으로 만든 옷도 등장했다. 얼음모자, 얼음팬티, 얼음브래지어, 얼음안경이 유행했다.
밥도 쌀에 얼음조각을 넣어 지었다. 반찬도 얼음조각에 소금이나 갖은 양념을 뿌려서 만들었다.

얼음이야 말로 현대인의 건강을 유지시켜 줄 마지막 음식이며 신이 인간에게 내린 사랑의 선물이라고
텔레비전 모니터의 화려한 화면이 사람들에게 날마다 가르쳤다.
과학자들은 얼음이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들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연일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했다.
저명한 인문학자들은 얼음의 역사를 들먹이고  철학적 측면에서 얼음이 갖는 정체성과 사상성을 이야기 했다.

유명한 요리가들이 앞다투어 요사스런 얼굴표정을 지으며 얼음을 이용한 각종 요리들을 선보였고  
그 옆에서 설명하는 리포터는 요리가가 한 숟갈 듬뿍 떠 먹여주는 얼음요리를 입속에 가득 넣어
입안에서 느끼는 맛을 얼굴표정에 나타내느라고 카메라 앞에서 별스런 요란을 다 떨었다.
대부분 리포터들의 빨간 립스틱 입술이 내뱉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와우! 이렇게 얼음요리를 입안에 그득하게 머금어 혀로 두어 바퀴 돌립니다.
이때는 표정을 요~렇게 하면 더욱 행복이 배어나지요?  먼저 입안을 차갑게 한 다음에 얼음에 뿌려놓았던 소스들이
차가워진 혀끝에 느껴지는 묘미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그리고 얼음조각을 어금니에 올리고 자! 이때 눈을 꼭 감고 맛과 소리를 음미하면서 아드득 깨물어봐요!
얼음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면서 시원한 맛이 입안에 가득 느껴져요.
얼음 깨지는 으드득 소리가 턱뼈와 뇌를 자극하여 여러분의 뇌를 운동시키고 모든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려요.
정말 환상입니다. 보세요! 이 하얀 접시에 데코레이션된 이 얼음요리를!
지금까지 보았던 온갖 느끼한 색깔들을 싹 제거하고 너무 미니멀하게 보이는 이 쿨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깔!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돌지요! 아! 깔끔하고 시원한 맛!
저것 보세요! 투명한 얼음위에 뿌려진 소스의 빛깔! 너무너무 황홀해요!’

그 해 여름의 모든 키워드나 트랜드는 얼음이 당연 첫 번째를 차지했다.
어떤 과학자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얼음나무 종자를 만들었고 모판에서 이 종자들이 하얀 얼음싹을 틔웠다며
온갖 방송이 난리를 떨었으나 그것은 금방 거짓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만간에 영리한 과학자들이
얼음나무 얼음꽃 얼음열매를 기어코 만들어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모든 사람들은 집에 대형냉동고를 들여 놓았다. 냉동고의 크기가 부의 크기를 상징했다.
집집마다 얼음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량의 전기가 필요했다.
그동안 우리들이 즐겨 먹었던 과일과 채소들 곡물들은 모두 발효되어 에탄올로 만들어 전기를 생산해 내는 연료로 사용되었다.
모든 논과 밭은 즉시 갈아엎어서 연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채와 옥수수를 심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몰래 다른 음식을 해 먹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어 동네에서 왕따를 면치 못했고 중요한 국가적 범죄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서로 이웃집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사태도 빈번해 졌다.
이웃끼리 만나면 악수를 하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대신에 서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코를 킁킁거리는 것이
반가움을 표현하는 최상의 인사법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으면 이 지독한 더위가 해결될 것이라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빨리 죽기를 염원했다. 아무튼 누군가가 죽으면 이 더위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가끔 엉뚱하게도 죽지도 않은 누구누구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죽은 누구누구가 바로 악마였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숨어있던 악마들 때문에 올 여름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믿었다.
뒤에 그런 소문이 엉터리라며 본인이 직접 나서서 열심히 해명을 했지만
그들은 이미 소문으로 들쒸어진 악마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면 혹시 그 죽음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들 속에서 서로 알 수없는 불안에 떨었다.
누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의 살아있는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엄연히 이렇게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노라고
즉각 인터넷에 띄웠다. 인터넷에는 자신이 엄연히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폭주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사진이나 동영상이 가짜니 진짜니 하면서 서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이런저런 논쟁들은 지독한 더위 때문에 더욱 가열되었다.
이 도시의 하루 자살자 숫자가 평균 약 12.7명이었는데 이런 논쟁이 일어나면서부터 자살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병이나 노환으로 죽은 사람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도시의 최고 권력자는 우리 도시의 환경과 행복지수가 높아져서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났다고 자랑했다.

이런 논쟁을 틈타고 텔레비전 화면은 얼음요리 얼음과자 얼음피자 얼음샌드위치 얼음스테이크 얼음설렁탕등을 더욱 선전했다.
이것들을 즐겨 먹으면 이 여름에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내용으로
여러 기발한 선전문구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광고회사들은 사활을 걸었다.

저녁뉴스가 끝나고 어느 다큐멘터리 심층추적 특집기획의 제목은 ‘죽은 후 이틀 만에 얼음요리를 먹고 다시 살아난 사람을 만나다’ 였다.
그 프로그램은 시청률 81퍼센트로 대한민국 방송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뒤로 여러 방송사에서 앞 다투어 그와 유사한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할 때 마다 시청률은 모두 70퍼센트를 상회했다.

날이 갈수록 모든 것은 얼음으로 통했다.
모든 상품은 얼음과 관련한 브랜드를 달았다.
발 빠른 재벌은 자신의 건설회사 이름을 ’베스트아이시하우징‘ 이라 바꾸고
새로 분양할 아파트를 ‘플리즈업그랜드빌팰리스’라고 이름 붙였다.
다음날 아파트를 청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도 부족해서
서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바람에 스물한명이나 깔려 죽었다.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다.
시화바다는 더욱 시커멓게 변했다.
어느 날은 녹조현상 때문에 붉게 물들었고 또 어떤 날은 부유물질이 일제히 떠올라서 온통 보라색으로 변했고
다시 어떤 날은  바닥의 검은 오니들이 솟아올라 퍼런색으로 보였다.
오늘은 태양의 열기 때문에 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 누런색 거품이 바다 전체를 덮었다.

4월이 되기 전부터 급하게 찾아온 더위는 5월 6월 7월 8월을 지나서 9월이 되어도 식을 줄 몰랐다.
9월 말 부터는 낮 기온과 밤 기온이 심한 일교차를 보였다.
낮엔 약 섭씨 40도 내외 그리고 밤엔 약 섭씨 14도 내외로 연일 약 섭씨 25도의 일교차를 보였다.
하루내내 안개가 도시를 덮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진한 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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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7 / '목어' 01 - 얼음을 먹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1-12 10:23
조회수: 2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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