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7.22
['목어' 02 - 안개를 뿜다]

도시를 뒤덮은 안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밤새 발생한 안개가 날마다 켜켜이 쌓이고 또 쌓여서 도시의 안개는 더욱 농밀해져 갔다.
도시가 내뿜은 안개가 점점 시화바다 쪽으로 밀려 내려가자 바다는 더 진한 안개를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도시와 시화바다가 서로 경쟁하듯이 안개를 만들어 냈다.

어떤 사람이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을 자다가 안개 때문에 죽었다는 뉴스가 모든 공중파 방송의 화면을 도배했다.
잠든 사람의 눈으로 안개가 들어가 휘젓는 바람에 눈알이 빠져서 신경 가닥 뭉치에 매달린 채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사람의 눈은 겉으로 보기엔 눈구멍이 엄지손톱 넓이도 안되지만 밖으로 빠져나온 눈알의 부피는 어른 주먹만큼이나 했다.
또한 입을 벌리고 잤던 탓인지 안개가 입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오르다가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이웃집 사람이 뉴스 화면의 인터뷰에서  간밤에 잠을 자다가 그 폭발음을 들었다고 변조된 기계음으로 말했다.
주인 남자의 뱃구리가 폭발하면서 내장이 침실 여기저기로 튀었다.
작은창자 한 가닥은 천정 실링팬의 바람날개에 걸린 채 여전히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검붉은 빛깔의 간덩어리는 경대 거울로 튀었다가 흘러 내려 화장품위에 구겨져 있었고
큰창자는 날아가서 도어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두 쪽으로 찟겨진 위는 공교롭게 벽의 액자 못에 걸려
너덜너덜한 주름보따리에서 시금치 스프 같은 초록색 진득한 액체가 그림위로 흘러내렸다.
이 광경이 방영되던 뉴스를 보고 눈썰미가 예리한 미술관계자가 그 액자의 그림은 어떤 작고작가의 몇 안되는
국보급에 해당하는 작품이 확실하다는 증언을 했다. 호당 가격으로 따지자면 수십억이 넘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한 관심보다는 찢어진 시신 조각으로 오염되어버린 문화재나 다름없는 그림이
과연 제대로 복원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서 그 귀한 작품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방치되었는지 안타깝다며
우리가 진정한 문화선진국으로 거듭나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그 그림은 복원전문가에게 전달되었고 몇 일 후에 그것은 진품과 다름없는 위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도시는 뒤늦게 안개경보를 발령했다. 안개는 거침없었다.
사람들의 귀와 코와 입과 눈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타구니까지 더듬었다.
어떤 사람은 눈이 멀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귀 고막이 녹아버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혀가 50센티 쯤 빠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뉴스도 있었다.
사람들의 사타구니를 은근하게 습격하는 안개로부터 중요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어른용 귀저기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곧 바로 서양 중세기에 유행했던 정조대 모양의 사타구니 보호대가 유행했다. 그 중에서 프라스틱 제품이 가장 저렴했고
가장 비싼 것은 티타늄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아무튼 모든 병원은 안개 때문에 다친 사람들로 넘쳐났다.

도시는 급기야 모든 사람들이 방독면을 써야 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대신에 방독면은 사람들의 개성에 따라 각자 마음에 드는 상표를 골라 사용하게 했으나 사실 그 모든 방독면은
똑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똑 같은 제품이었는데 상표만 다르게 붙였다.
방독면 제조회사는 도시의 최고 권력자의 처형 소유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개된 비밀이었다.
방독면을 쓰지 않고 거리에 나서는 것도 중요한 국가적 범죄행위로 간주되었다.
방독면으로 얼굴을 온통 가리는 대신에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자신만의 멋을 낼 묘안을 만들어 냈다.
어떤 사람은 방독면을 약간 왼쪽으로 삐뚜름하게 써서 자신만의 매력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방독면의 턱 끈을 치렁치렁 길게 늘어뜨려서 자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렸다.
어떤 여자들은 방독면 어두운 창 안에 작은 엘시디 램프를 장착하여 자신의 큰 눈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둘레가 약 5미터에 길이가 약 13미터의 괴물이 시화바다에 가끔 출현하여 머리를 물위에 내놓고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물속으로 곤두박질하듯 급히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고기처럼 생긴 괴물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깊은 밤을 틈타 농밀한 안개를 헤치며 도시로 올라와
공원을 한 바퀴 빙 돌다가 다시 태연하게 넓은 길을 지나 골목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야밤에 거리에서 괴물과 마주칠뻔 했다는 사람은 뉴스에 나와 그 괴물도 역시 대가리에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노라 말했다.

나도 역시 매일 방독면을 쓰고 물류창고에 출근했다. 나는 자그마한 물류창고를 책임지는 창고지기다.
오전에 물품이 들고 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하루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서류상의 숫자보다 창고안의 물품이 많으면 그것을 어떻게든 야매로 팔아넘기거나 시화바다에 몰래 버려야 했다.
그리고 창고속의 물품이 서류상의 숫자보다 적으면 그와 똑 같은 박스를 구해서
주변의 쓰레기 같은 것을 긁어 담아 박스 숫자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 뒤에 혹시 발생하는 물품의 하자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숫자가 이야기 했다. 숫자만 맞으면 아무런 탈이 없었다.

오전에 물품을 실은 차들이 도착하여 박스를 내려놓고 나면  곧바로 다른 차량들이 와서 그 물품을 싣고 어디론가 갔다.
그 박스엔 어떤 물건이 들었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물품을 실은 차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필요가 없었다.
좌우지간 숫자만 정확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오전에 물품 점고가 끝나고 점심으로 얼음요리 도시락을 먹는다.
물론 창고 구석에 숨어서 몰래 컵라면을 먹은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때마다 라면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환풍팬을 돌려야 하고 방향제를 여기저기에 뿌려야 했다.
'얼음요리섭취법안'이 통과된 이후로 나는 남몰래 라면을 여덟번 끊여먹었으니까 반국가 범죄를 여덟번이나 저지른 셈이다.
점심 후에 창고주위를 한 바퀴 돌고나서 라디오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오후 4시에 창고 내부와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창고 문을 닫아걸고 다섯 종류의 열쇠를 차례로 채우면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났다.
퇴근길에는 하릴없이 시화바다와 도시 사이의 완충지대를 걸었다.
오늘도 나는 도시의 안개와 시화바다의 안개가 과연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만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나의 근무실적이나 월급과 상관없는, 그러니까 순전히 요즘 생겨난 내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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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48 / '목어' 02 - 안개를 뿜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1-13 10:53
조회수: 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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