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1. 07

['木魚' 101 - 꿈을 꾸다]

우리가 외지섬을 지나 쌀섬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오늘의 마지막 햇빛이
쌀섬 바다 밑 흰 바위들 위에 내리고 있었다.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엔 마지막 남은 빛을 한꺼번에 토해내서
가끔 대낮보다 더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 황홀한 빛은 이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억지로 기다리는 눈엔 보이지 않는다.
바위들이 그 빛을 받아 모두 하얗게 빛을 내는 순간이 지나가면
곧 바로 준비된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목어가 먼저 자리를 잡아 몸을 풀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곳이 상해 있었다.
등지느러미와 몸체 사이에도 큰 금이 나 있었고 가슴에서 배를 지나 꼬리부근 까지
내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금이 벌어져 있었다.
턱밑 왼쪽 지느러미도 생각보다 훨씬 손상이 심했다.
나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곳 바닥을 뒤져서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거나 보수할 만한 것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둥이가 꽃지에게 슬쩍 다가가 앉으며 하얀 날개를 덮어주었다.
꽃지는 붉은 뿌리의 신경줄을 자르다가 금이 간 오른쪽 집게발에
입에서 낸 하얀 거품을 바르고 있었다.  
그녀는 집게발에 금이 간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겼다.
청둥이가 덮어주는 날개 밑은 따뜻했다.
청둥이가 어둠이 밀려오는 건너편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저 지옥 같은 물속도시에 들어갔었지?
그래... 이제 생각해 보니 별똥별을 보러갔었는데...
모두 죽도록 고생만 하고, 하얀사람을 빼앗기고....
별똥별을 제대로 구경도 못해보고 쫓겨났어!
저 어림없는 인간이 아까 별똥별을 보고 죽을둥 살둥 모르고 뛰어내렸는데...
별똥별을 제대로 보기나 했을까?’

말을 마친 청둥이가 목을 길게 빼서 목어와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엎드려서 오늘 물속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고 있던 터라 청둥이의 혼잣말이 반가웠다.

‘별똥별 속에 무엇인가가 있었어. 그런데 불꽃에 가려있어서 확실하게 보질 못했지...
그것을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다가 붉은 뿌리에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지’

그리고 나는 목어를 바라보면서 눈빛으로 물었다.
목어가 한참동안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난...붉은 뿌리에게 휘감겨 끌려가는 도중에 얼핏 본 것 같아’

청둥이가 잠시도 참지 못하고 꼬리깃을 좌우로 털면서 물었다.

‘나는 멀리서 퍼런 빛깔 돌에 일렁이는 불꽃만 보이더만.
그런데 별똥별엔 도대체 뭐가 있었어?’

물속에 그득하게 밀려온 밤은 오늘 보았던 물속도시의 광경들을
더욱 구체적인 사실로 우리들의 기억에 새겨 넣었다.
검은 강을 따라 흐르던 욕망의 쓰레기들도 그리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속이 텅 비어있는 빌딩들의 모습도 괴기스럽게 아름다웠다.
뱀처럼 구불대면서 우리를 쫓아왔던 붉은 뿌리들의 징그런 모습을 빼고는
모두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목어는 별똥별이 왜 거대한 눈의 속살 한가운데에 떨어져 앉아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청둥이가 이젠 엉덩이를 자꾸만 들썩이면서 다시 물었다.

‘그까짓 불붙은 돌멩이에 뭐가 있었겠어? 괙괙
혹시 뭐가 있었더라도 모두 불꽃에 구워져 버렸겠지.
목어 아저씨가 붉은 뿌리에 휘감겨 숨이 막혀서 잠시 헛것을 봤던게지.
그런데... 아저씨! 뭘 보기는 한거야?‘

목어는 다시 기억을 더듬어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의 큰 눈 속에 별똥별과 붉은 뿌리와 거대한 눈이 번갈아 떠올랐다.
그리고 금빛 삼지창을 맨 하얀사람이 그의 눈 속으로 달려왔다.
그가 꿈꾸듯이 말했다.

‘별똥별 속에 누군가가 누워있었어’

‘괙괙 누구야! 어떤 미친놈이 그곳에 누워있었어?’

목어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청둥이의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괙괙괙 말도 안돼! 왠 놈이 불꽃이 날름거리는 별똥별 속에 누워있겠어?
혹시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나 레아공주가 이곳 지구로 귀환을 했으면 몰라도...
글쎄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불꽃 속에 누워있었을까?’

이제 청둥이는 안달이 났는지 노란부리로 목어의 턱을 두드리면서
빨리 목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어가 잠시 눈만 끔적거리다가 말을 더듬거리며 흐렸다.

‘나도... 확실하게 보진 못했지만... 여자 같기도 하고...아니야...’

‘여자? 뭐라구 꽥꽥 무슨 여자가 별똥별 속에 누워 있었다구?
틀림없이 레아공주가 확실해! 그 공주도 재수 드럽게 없구먼.
별똥별을 타고 왔다면 운전을 제대로 해서 시청광장에나 떨어져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몰려와 거대한 귀환축하 행사라도 해 줄 텐데...
왜 하필 지옥 같은 그곳으로 별똥별을 몰고 가서 누워 있냐구?  
레아공주 비행솜씨가 형편없었던가봐.
에잉! 좌우지간 씨원하다. 영화 속에서 잘난 체 하더니 잘코사니!‘

청둥이의 날개 밑에 엎드려있던 꽃지가 집게발을 밖으로 내밀어
청둥이의 코 앞에 흔들어 보였다.

‘그렇지 맞아! 레아공주가 아니고 우주의 악당 쟈바헛트가 루크에게 쫓겨
이곳으로 피신했을 수도 있지.
그 악당이 거대한 눈의 속살 위에 떨어졌다니 하이구! 잘 되었지.
곧 조만간에 그 놈은 붉은 뿌리에 작살이 나서 검은 아가리로 빨려 들어가
저 물속도시 어느 주방의 수도꼭지나 화장실의 양변기 노릇이나 할 거구먼. 괙괙
하이구! 그 놈이 욕심 땜에 여러 사람을 괴롭히더니 아주 쫄딱 망했구먼!
그런데, 아저씨! 별똥별 속에 누워있었던 사람을 정말 보기는 한거야?‘

그러나 목어는 코를 가늘게 골면서 잠든 척 했다.
그렇다. 나도 불꽃이 일렁이는 푸르스름한 별똥별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기도, 또는 살아있는 다른 무엇이 별똥별 속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목어는 그것을 확실하게 보았던 것일까.
그래, 목어는 알고 있는 듯 했다.

밤이 훨씬 깊어서야 나는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내 기억에서 바깥세상은 아예 지워져 버렸는지 이제 나의 꿈은 항상 물속을 헤매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휙 빨간 금을 그으며 떨어지더니 뒤이어 별똥별이 비오듯 쏟아졌다.
별이 내린 곳, 저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는 바로 우리들 옆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녀가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가락 끝이 내 옆구리에 닿았다.
나는 물속에 잠겨 숨이 막혀가고 있었다.
코 속으로 귀 속으로 입 속으로 물이 마구 밀려 들어왔다.
물속에서 벗어나려고 손과 발을 움직이려 했지만 말뚝에 묶여있는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위에 눌린 나는 발악을 하듯이 어렵게 눈을 떠서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무섭도록 창백했다. 붉은 입술은 꽉 다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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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78 / '木魚' 101 - 꿈을 꾸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1-09 12:05
조회수: 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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