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06
[木魚' 79 - 하얀 분노]

청둥이가 조금 더 속도를 내더니 앞서가던 하얀사람 옆으로 접근하여 그의 모습을 자꾸만 바라보았다.
하얀사람은 우리들처럼 물속을 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을 더듬거리듯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바닥 위를 걸어갔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닿는둥 마는둥 미끄러지듯이 둥둥 떠서 걷는 것이었다.
청둥이는 그의 걸음새가 신기한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의 발걸음을 자세히 보려하지만
좀체로 무릎 아랫 부분이 보이다가 또 보이지 않다가 그렇게 반복되자 청둥이가 눈을 깜짝거리다가 다시 확 크게 뜨고 바라보아도
도무지 그의 걸음걸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노란 금색으로 번쩍이는 삼지창을 어깨에 단단히 붙들어 맨 것도
하얀사람의 주제에 걸맞지 않아서 그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물속 바닥에 고르지 못한 곳이 나타나면 하얀사람의 걸음새가 갑자기 헝클어지면서 앞으로 기우뚱 엎어질듯 하다가
다시 균형을 잡고 둥둥 떠서 걸어가는 것이 조금 우스웠던지 청둥이가 목어의 등위에 앉아있는 꽃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괙괙괙 아주 묘해! 저 걸음새로 어떻게 잘도 걷는 것이 묘해! 글구 저 주제에 왠 금색 삼지창이야?’

꽃지가 쏙 내민 눈을 반짝이며 청둥이에게 머퉁이를 주었다.

‘뭐가 묘해? 모든 것이 다 다르게 생겼듯이 걷는 것이나 헤어가는 것이나 모두 제 몸에 맞게 다 다르지.
나는 하얀사람의 걸음걸이가 너무 멋지게만 보이네!’

‘자! 아무튼 오늘 물속도시로 들어가는 이 원정대의 대장은 나 청둥이다!
그러니까 내가 앞장을 서야하고 하얀사람 당신은 내 뒤를 따라야 해! 그리고 내말을 잘 들어야 한다구.
야! 하얀사람아! 내말을 알아먹었지?’

청둥이가 목을 길게 빼어 하얀사람을 향해 오금을 박듯이 말을 하고 냉큼 앞장을 섰다.
그러나 하얀사람은 들은 채도 않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둥둥 뜬 걸음으로 열심히 나아갔다.
나는 꽃지에게 저 하얀사람과 이야기를 통역해 달라고 눈짓으로 말했다. 꽃지가 내 어깨위로 옮겨 앉을 수 있도록
목어가 가까이 다가와서 등을 나의 어깨에 마주 댔다.
내가 햐얀사람에게 말을 걸어 볼 요량으로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내 어깨 위에 앉은 꽃지가 그의 말을 즉시 통역했다.

‘크윽. 넌 제발 내 얼굴을 바라보지 마라!’

‘저승에 올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서 꼭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인가?’

‘내 죽음은 너무 억울해. 이 원한을 꼭 갚은 뒤에 저승에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할 끼다. 흐흐흐’

‘하하하. 삼천리 강산을 뒤덮고 있는 묘지들 앞에 서서 세상의 모든 죽엄에 물어보아라.
억울하지 않는 죽음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꽃지의 통역은 꼭 그녀의 단단한 몸처럼 말의 마디와 마디가 정확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말이 본디 갖고 있는 색깔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크흐흐. 나는 전쟁때 해주에서 빈몸뚱이로 피난 와서 안산 고잔리 갯가에 움막을 지었어.
죽도록 일을 해서 돈이 모아지면 땅을 샀어. 그리고 이 등꺼죽에 옹이가 박히도록 자갈과 흙을 등짐해서
빈 갯벌을 논으로 개간을 했다. 집칸도 불렸다. 밥숟갈 빼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모은 땅의 소출이 제법 되었지.
그런데 공장과 도시를 짓는다면서 내 땅은 정부에 강제 수용이 되었지. 나는 이대로 절대 내 땅을 뺏길 수 없어서
끝까지 수용령에 반대했어. 개발이다 뭐다 난리통에 온갖 사기꾼들과 깡패들이 설쳐댔지.
경찰까지 동원되어 우리를 강제로 쫓아냈지만 나는 끝까지 내 땅에 남아서 꼼짝도 안했어.
어느 날 깡패들에게 납치당해 간강 당한 내 외동딸은 와동 뒷산에 목을 맸다. 마누라는 내 고집 땜에 딸이 개죽음을 당했다며
그날 밤 몰래 양잿물을 한 사발 마시고 죽었다.
나를 묶어 끌고 간 놈들이 경찰인지 군인인지 깡팬지 암튼 나는 반공법이다 뭐다 누굴 찬양했다 내통했다며 죽도록 두들겨 맞고
바닷가에 버려졌다. 피난 왔던 것도 죄가 되드라구. 이웃 친구와 그들이 와서 무슨 서류를 내밀 길래
황망간에 손도장을 눌러주었지. 나는 글을 몰라. 친구의 말만 믿었지. 모두 사기꾼 도둑놈들이었어.
내 억울한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나서주는 사람이 없었어 흐흐.
내 땅이 멀리 보이는 붉은섬에 주저앉아서 홧김에 됫병 소주를 꽉 막힌 가슴속으로 벌컥벌컥 들이부었다.
허허 저기 이쁜 내 딸이 옥색치마를 바람에 날리며 살푼 걸어오네. 딸 뒤에선 마누라가 그 부지런한 손을 들어 나를 부르네.
그들이 나에게 손짓하면서 시화바다를 건너 붉게 물든 서쪽 하늘로 걸어갔어.
하늘 한번 올려다 볼 참 없이 평생 일만 알고 살았던 내가 첨으로 시화바다 너머로 붉게 타들어가는 석양을 보았어.
참으로 아름답드라구. 으응 나는 가문 논에 물을 대면 꿀떡꿀떡 물을 받아마시던 벼 나락 날렵한 잎새만 아름다운줄 알았는데
글쎄, 저녁노을이 저리도 아름다운것인줄 첨 봤어. 바다 건너 섬들이 동동 떠서 찰랑대는 물결에 헤적거리네.
내 인생이 헤적거리는 섬이더냐? 차라리 내 몸둥이를 바다 속으로 들이 밀겠다. 흐흐흐 온냐 온냐 그래 내 딸과 마누라
그리고 내 집과 땅을 뺏어 간 놈들 그리고 이 미친 일을 모른 척 하며 나를 비웃은 놈들 언젠가 니들의 그 사악한 목숨을
저 저녁놀처럼 이 땅에 붉게 물들여 주마. 그리고 남은 소주 됫병을 다 비운 다음에 나는 벌떡 일어서서
내 앞에서 찰랑대는 바닷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지. 물이 허리께  올라오니 분노가 허리띠를 둘렀어.
물이 가슴에 차니 온 가슴엔 불덩이 같은 증오가 부글부글 주체 할 수 없었지.
물이 목을 지나 콧구멍으로 들어오고 눈을 덮으니 육신은 사라져 버리고 분노와 증오만 담긴 이 혼백만 남은 거여!
으응, 바로 그런거여!
나는 저 사악한 놈들의 목숨으로 이 시화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 까지는 절대로 저승에 올라갈 수 없어! 흐흐흐

하얀사람 그의 가슴속에 미어터지도록 가득한 마른 울음이 걷잡을 수 없는 거센 불길에 활활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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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24 / 木魚' 79 - 하얀 분노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07 14:27
조회수: 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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