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06
['木魚' 81 - 하얀 꽃밭]

화렴쟁이 소금장수 막내딸은 두 눈만 허옇게 뜨고 휘파람 소리가 나는 숨을 내쉬며 혼절한 채 누워 있다가
가끔 벌떡 일어나 불똥이 튀듯 눈을 희번득 거리며 다시 쓰러져 온 몸을 바르르 떨기를 반복했다.
삼일밤 삼일낮이 그렇게 지나고 난 후 그녀가 반듯이 누워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안돼! 내가 산중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러기엔 내 원한이 너무 크구나. 내 치떨리는 원한에  산천이 흔들리면 난이 될 것이니 죄없는 백성들이 죽게 된다!
나는 바닷가로 가야 한다!
내 몸에서 쏟아낸 피가 강이 되어 흐르듯이 한강수야 흘러 넘쳐서 이 뱃머리를 돌려라!

남이장군의 조각난 시신은 새남터 하얀 모래밭에 널부러진 채 삼일밤 삼일낮을 조리돌림 당한 후에
일가들이 야밤을 틈타 그의 머리만 몰래 수습하여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북한강으로 들어가 강원도 가평 물안개 섬에 그의 머리를 감추려 했다.
가평의 진산인 화악산이 남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먼저 듣고 촛대봉, 매봉, 국망봉, 강씨봉, 명지산, 수덕산, 계관산에 말하여
모든 산들이 머금고 있었던 물을 쥐어짰다.  
배가 아차산을 휘돌아 갈 즈음에 갑자기 한강수가 불어나면서 거슬러 올라오던 배를 밀어내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뱃머리를 돌려 김포 강화 제물포 앞바다를 지나서 남쪽으로 향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었으나 남이의 머리를 실은 배가 지나가는 바다는 그의 원한을 말해주듯
두어 길 높이의 건파도가 솟아 출렁거렸다. 바다는 온통 하얀 파도꽃이 피었다. 하얀 꽃밭이었다.
하얀 파도는 흰 종이로 만든 상여꽃으로 변했다. 상여는 하얀 꽃밭 위에서 뜀뛰듯이 몹시도 출렁거렸다.
하얀꽃이 가득 피어 있는 벌판을 가르며 그의 머리를 실은 상여가 지나가고 있었다.

안방에 혼절해 누워있던 막내딸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요위에 누워있던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떠오르다가 곤두박질치듯 가라앉다가 또 좌우로 어슷하게 들렸다가
다시 위아래로 요란하게 굉음을 내며 가라앉았다. 집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들러붙어서 팔다리를 잡아 멈추려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출렁거리는 몸을 막지 못했다. 그녀 역시 속이 매슥거리며 멀미가 나는지 자꾸만 헛구역질을 했다.

배가 시화바다를 지날 때 어디선가 새벽닭이 울었다. 그들은 날이 밝기 전에 남이의 머리를 숨길 곳을 찾아야 했다.
시화바다 안쪽에서 새벽 여명이 짙푸른 빛을 내며 바닷물이 잔잔해 졌다.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해망산을 바라고 미끄러져 가듯이 내달렸다.

그녀의 몸도 잠잠해 졌다. 잠시 축 늘어졌던 그녀가 몸을 일으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서 방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어멈이 재빨리 방문을 활짝 열자 어둠 속에서 푸른 구슬 같은 불빛 하나가 그녀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퍼렇게 빛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시는구나. 큰 님이 오시는구나. 강을 따라 바다를 건너 하얀 꽃밭을 지나 내 님께서 오시는구나.
어이 할꼬. 내 님의 저 억울한 원한을 어떻게 씻겨내야 할거나.
팔도 다리도 몸둥이도 모두 던져버리고 머리만 오시는 큰 님의 저 억울한 원한을 어이 할꼬.
오시는구나. 큰 님이 오시는구나. 님의 목에서 흘리신 피가 강물이 되고 님의 눈에서 흘리신 눈물이 바다를 이루니
온 천지에 가득한 이 원한을 어이 할꼬.

배는 해망산 바닷가에 닿았다. 남이의 머리를 담은 고리석작 뚜겅이 갑자기 바람에 날리듯이 훨훨 날아가
해망산 남쪽자락 함박골 언덕에 앉았다. 그들은 그곳에 남이의 머리를 급하게 묻었다.
이때 해망산이 잠깐 부르르 떨리며 핏빛을 뿜어냈으나 동쪽에서 새벽하늘이 열리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망산이 양 팔을 벌려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품어 안았다.
그들이 다시 배로 돌아가 바다 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니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바로 요위에 반듯이 누워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들었다.
어멈이 활짝 열었던 방문을 조용히 닫고 밖으로 나와 마루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목록보기  
제목: [Day by Day]-126 / '木魚' 81 - 하얀 꽃밭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09 16:59
조회수: 2494


day_081009_1.jpg (203.6 KB)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