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10
['木魚' 83 - 정오의 햇빛]

우리는 외지섬을 지나서 마고의 길을 지키는 네개의 섬 중에서 첫 번째 섬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섬이어서 사람들은 모두 쥐섬이라고 불렀다.
목어가 쥐섬 바다 밑의 바위들을 이곳저곳 둘러보더니 밥그릇처럼 생긴 큰 바위 앞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이것이 사발 바위가 분명하다. 해가 머리위에 올 때 까지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저 물속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곳 도시에 흡수되어 한 개의 못이나 벽돌로 변해서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각자 한번 더 생각하여 그것이 두렵고 무서운 자는 굳이 도시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마라‘

맨 뒤에 따라오던 하얀사람이 사발바위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말로만 들었던 물속도시의 입구라는 사발바위가 이곳에 있었군. 저기 시커먼 물속도시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듯이
도시의 밑에 숨겨진 뿌리의 빨아들이는 힘이 엄청 강하지. 무쇠덩어리라도 저 뿌리에 감기면 으스러진 다음에
오뉴월 햇볕에 얼음이 녹듯이 질질 녹아 흘러서 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도시 속 어딘가로 흡수되어 버린다.
청둥이 너도 저눔 뿌리에 감기게 되면 너의 짧은 꼬리털 한 개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저눔 도시의 뿌리는 살아있는 것이든 죽어있는 것이든 혼백만 남은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너의 주둥이부터 꼬랑지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이지.
너의 머리는 도시 어느 건물 기둥과 서까래를 연결하는 못으로 박혀있을 수도 있고
너의 몸둥이는 어느 건물 벽을 쌓는 벽돌 한 개로 변해 있을 수도 있다 흐흐흐’

목어와 하얀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청둥이가 큰 눈을 꿈쩍거리며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바위 뒤에 꼬리를 바짝 붙여서 슬그머니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꽃지가 목어의 등에서 내려가 청둥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너는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엄마에게 날아가야 하는데
저 물속 도시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되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괜찮아?‘

‘글쎄.... 난 저 시커먼 도시가 그렇게 강한 줄 몰랐는데...’

바위 옆에서 앉아 쉬던 하얀사람이 청둥이에게 말했다.

‘흐흐흐 두려움도 마음이 만들어 낸다.
죽음도 마음이 만들어 낸다.
마음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두려움 없이 죽을 수도 있고
마음을 단단히 뭉쳐두면 죽어서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쳇! 하얀사람 넌 이미 죽은 사람인데 또 죽는다 한들 무슨 두려움이 있겠느냐?’

‘죽음은 열 번을 죽고도 열한번 째 죽으려면 또 두렵기 마련이다’

‘이 하얀사람은 인간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서 괙괙
지금 이 시국이 두렵다는 것인지 두렵지 않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 대략난감이야’

바위 옆에 주저앉아서 저 멀리 도시의 검은 장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의 어깨를
청둥이가 주둥이로 톡톡 치면서 물었다.

‘넌 뭍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저 시커먼 도시에 갇혀도 좋으냐?’

‘바깥 뭍으로 돌아가 봐야 나는 어차피 도시에 갇혀야 한다.
뭍의 도시나 이곳 물속 도시나 어차피 똑같은 도시다‘

‘물 밖에선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도시를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도 두렵지만 도시를 벗어나는 것도 두렵다.
이미 도시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는 철저하게 도시에 의존해서 살아가도록 진화되어 있다.
노예근성이란 사리분별을 퇴화시켜 버리지. 사리분별이 없는 나에게 자유란 그저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인간들의 고민은 복잡해서 알아먹기 힘들군. 목어 아저씨는?’

목어는 그냥 웃기만 했다.

‘꽃지야 너는?’

‘난 더 살고 싶어. 엄마에게 우리 게들의 잔치날에 관해 이야길 들었어.
봄과 여름 사이 단오날이 되면 우리 게들은 보름달이 훤한 밤에 모두 마른 갯펄로 올라와 잔치를 벌이지.
저 끝이 보이지 않는 갯펄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우리 게들의 등깍지로 가득 덮힌다.
서해바다의 모든 게들이 그네를 타러 마른 갯펄로 올라온다.
우리 게들은 몰려가서 갯가에 빨갛게 돋은 함초나 퉁퉁마디 갈대 잎에 매달려 그네를 탄다.
그 날 밤의 풍경은 장관이다. 우리 게들의 천국이야. 그런 날을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그러나 이곳 시화바다에선 모두 미망이 되었어. 그렇지만 언젠가 이곳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야.
혹시 그 해답을 저 물속도시가 갖고 있을지도 몰라’

꽃지의 까만 눈 속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그 때 뒤의 사발바위가 미세하게 떨리면서 무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우리들 머리위에서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정오의 햇빛이 사발바위에 닿자 바위는 은은하게 종소리를 내며 붉은 빛을 냈다.

목어가 초조한 눈빛으로 붉게 변한 사발바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바위의 붉은 빛이 사라지기 전에 물속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
자!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할 준비를 하자’

항상 먼저 일어나 앞장을 서던 청둥이가 뭉기적 거리며 가장 늦게 일어났다.
청둥이의 엉덩이에 갑자가 무거운 추가 달린 듯 자꾸만 뒤로 빠지고 있었다.

  -목록보기  
제목: [Day by Day]-128 / '木魚' 83 - 정오의 햇빛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11 14:36
조회수: 2610


day_081011_1.jpg (156.6 KB)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