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소리 - 5/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5

[소리 - 5]

‘바리’가 아이 일곱을 낳아준 댓가로
우리는 소리의 벽이 만든 흑대살을 편안하게 지날 수 있었다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나약한 존재가 너무나 슬펐다

흑대살을 지나가는 그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사방천지가 온통 새하얀 슬픔뿐이었다
특히 그 애달픈 소리나 앙칼진 소리가 없어지는 순간은
온 세상이 갑자기 정적에 휩싸여 하얀빛 그것만 남았다

우리는 서로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슬픈 여행의 마지막 문이
한갓 허무한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품속에 깊이 간직했던 봉황비녀를 꺼내어
‘바리’의 머리에 소중하게 꽂아 주었다
나는 그 비녀를 어떻게 그가 갖게 되었는지
내 일처럼 잘 알고 있었다

천 년 전 닝안성 전투에서
그의 칼에 목이 잘린 발해여인으로부터 얻은 황금비녀였다
그날 밤 우리는 승리에 대취했다
내가 잠시 모닥불을 떠나
적들의 시체가 나뒹구는 언덕을 바라보며
다시 내일의 큰 싸움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산발한 여인의 머리 하나가
내 발밑까지 데굴데굴 굴러와 피 묻은 입술로 말했다

‘기쁜가? 천 년 후에 그의 손에서 내 비녀를 되돌려 받을 것이다’

오늘, 발해여인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바리’의 머리에 꽂혀있는 봉황비녀가
북쪽 하늘을 향해 황금빛 날개를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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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39 [소리 - 5]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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