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몸 - 3/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8

[ 몸 - 3 ]

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약간 겁이 나기도 해서
일단 그에게 먼저 하라며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도 역시 거침없이 자신의 몸을 해체했다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쩍 벌려서 창자를 긁어내면서도
그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갈고리에 걸어놓은 그의 심장이
마치 태엽을 감아놓은 것처럼 툭툭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이제 내 차례다
바리와 그가 했던 것을 자세히 봐두었으니
해체할 부위의 순서를 일단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먼저 내 손에 든 도끼로 힘껏 내 왼쪽 어깨를 찍을 때도
소리만 크게 들렸지 사실 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혹시 아픔을 느꼈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떨어져 나간 팔 한쪽이 바닥에 떨어져 부들부들 떨고
끝에 달린 손가락이 꼬물거렸다

‘바리’와 그의 몸을 해체하느라 칼날이 좀 무디어진 것 같았지만
칼은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사타구니 안쪽의 핏줄을 거두다가 작은 돌칼이 삐치는 바람에
정맥 한 곳이 손상된 것 말고는 내 몸이 완벽하게 해체되었다
한 쌍이 있어야 할 콩팥이 한 개 밖에 없어서 남은 한 개를 찾느라고
조금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해결했다

사실은 콩 팥 한 개가 오래전에 퇴화되어 버린 채
까만 알사탕처럼 굳어져 큰창자와 작은창자 사이의 기름덩어리 속에 숨어있었다
내 몸 속에 콩팥 한 개가 퇴화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손상된 혈관에서 피가 한 대야쯤 쏟아졌다

해체된 몸이 부위별로 갈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즉시 모타 돌아가는 소리에 체인이 움직이면서
자대살을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목록보기  
제목: 바리 - 42 [ 몸 - 3 ]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8 15:30
조회수: 1835


DSC_120828_1.jpg (141.1 KB)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