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후 - 1/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9

[ 후 - 1 ]

모든 인연이란 헤어지고나면 참으로 허무하다

우리 셋은 자대살의 좁은 구멍을 빠져나와서
서로 단 한 줌의 미련도 없이
각자 자신들의 길을 따라 뿔뿔이 헤어졌다

겨우 세끼 밥 먹고 살아가는 세상사가 워낙 바쁜 탓인지
나는 그들과 함께 했던 지난 여행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물론 그와 ‘바리’를 닮은 사람들을 가끔 여기저기서 마주치기도 했지만
서로 모른 채 비껴 지나갔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데 있어서 ‘바리’나 그의 존재가
별로 필요치 않다는 점도 있었고
역시 그들도 나의 존재가 별로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필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엔 정말 ‘필요’한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나는 잘 모르겠다
이렇듯 세상의 인연이란 적막하다

아무튼 ‘바리’는 이승에서 저승을 건너는 가엾은 영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책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다가
한번은, 나를 급하게 부르는 ‘바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야 내가 알을 찾았다’

나는 ‘바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불티나게 달려갔다
강을 가로막아 일곱 개의 큰 알을 올리고 버티어 선 이포보 앞에서
내 달음박질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큰 알처럼 생긴 거대한 조형물 위에 올라가
위태롭게 서있는 ‘바리’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 미친 년, ‘바리’는 한갓 조형물을 알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곱 아이를 찾아 나선 모성이 저 커다란 일곱 개의 '알' 모양의 조형물을 보았던 것일까
강물은 녹조 때문에 온통 녹색천지였다
나는 갑자기 숨이 컥컥 막혔다
죽은 물고기들이 하얀 배를 뒤집어 녹색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바리’가 저 물고기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리! 이제 그만 해라
우리는 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녀는 양 손바닥을 둥그렇게 입에 모아 외쳤다

‘천만에, 나는 지금 알을 보고 있다’

내가 문득 눈을 들어 녹색 강물을 바라보니
누군가가 내버린 아이가 대나무 상자에 담겨 떠내려가고 있었다
‘바리’는 가짜 알 위에 위태롭게 서서
진짜 자신의 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리’는 ‘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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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43 [ 후 - 1 ]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9 10:47
조회수: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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