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후 - 2/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30

[ 후 - 2 ]

또 한 번은,
그가 모일 모시에 광장 옆 카페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나는 언제나 약속장소에 15분 일찍 나가는 습관이 있다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커피가 적당하게 식을 즈음에 그가 나타났다
그도 역시 의자에 가방을 내려두고 카운터에서 커피를 한 잔 들고 왔다
그는 내가 이포보에서 ‘바리’를 만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별 의미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지르더니 내 코앞에 들이 밀었다.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이었다
내가 손끝으로 프레이버튼을 누르자 잠깐 버퍼링 시간이 지난다음에
몹시 흔들리는 영상이 나왔다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커다란 알을 머리위에 올리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화살이 그녀의 몸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이 하늘을 시커멓게 덮었다
화살이 몸에 박힐 때 마다 그녀의 몸이 움찔 거렸다
마지막 화살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그녀의 발바닥을 뚫었다
마치 하늘을 배경으로 핀을 찔러 곤충채집을 해 놓은 것처럼
그녀는 하늘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동영상은 여기서 문득 정지화면으로 끝났다
조회수는 벌써 43,227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이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가 ‘바리’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다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서 이 알을 들고 나오려다가
저런 처참한 꼴을 당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씩 유튜브에 올려지는 이런 조악한 영상의
내용 따위는 절대 믿지 못했다
이번에도 나는 별 의미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이후로 바람처럼 한 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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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44 [ 후 - 2 ]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30 11:14
조회수: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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