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소리 - 2/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1

[소리 - 2]

그들은 밤낮 없이 내 앞에 줄을 섰다
줄은 땅 끝을 지나 하늘 끝까지 이어졌다

바나나 잎과 갈대 줄기로 엮어진 움막 안에
‘바리’가 홀로 누워있다

그녀가 억장이 메이는지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보이느냐
땅에서 하늘까지 줄을 선 저 사내들을
내 작은 몸으로 모두 받아냈느니,

저들이 세상에 토해내지 못한 소리를
내 몸 안에 박아 두었나니,

어떤 이는 내 배위에 올라와 열병식을 흉내내며
퍼렇게 멍든 눈을 들어 덴노 헤이까 반다이를 외쳤나니,

또 어떤 이는 내 몸 위에서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며
앉아 쏴  엎드려 쏴를 거푸 했나니,

또 어떤 이는 벌거숭이 몸에 비행모만 쓰고 내 몸에 올라와
‘너는 아까톰보, 95식 연습기’라며 처음엔 장주비행을 하고
다음엔 쥬가에리와 급강하와 급선회를, 또 다음엔 기리모미를 거듭 하였나니,

다른 이는 황소보다 더 큰 개를 끌고 와서 내 배위에 올려놓고
그 개가 하는 짓을 구경만 했나니,

또 다른 이는 내 자궁에 거수경례를 하고
지어미를 그리는 노랠 부르며 목놓아 울었나니,

자신들이 못 다한 모든 소리를
내 몸에 심어두었나니

밤을 지나 새벽 동이 훤하게 틀 때 까지도
움막 앞에 선 줄은 끝이 없었다

‘바리’의 비명 소리가 낭자했다
비명을 지를 때 마다 새벽하늘의 별이 하나씩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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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36 [소리 - 2]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2 10:54
조회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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