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소리 - 3/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3

[소리 - 3]

‘바리’의 배는 날마다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그와 나는 저녁마다 그녀의 하얀 배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그녀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아홉 개의 산을 넘어 정갈한 물을 길어오고
들판 끝까지 달려가서 그녀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구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하얀 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녀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억장이 메이는 심정을 억누르기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와 그녀, 이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볼수록
나는 더욱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냘픈 손으로 하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뱃속에서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소리가,
작은 새의 날개짓과,
연두빛 새싹이 땅을 뚦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지!
새벽이슬에 흠뻑 젖은 수련 이파리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그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갑자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불을 믿지 마라
결국 그 불이 사람들을 태워 죽일 것이다
나는 보고 있다
신령한 빛이 비추는 곳에서 죽음이 시작되는구나
죽어도 죽은 지 모르고 살아도 살아있는 지 모르는 그 날에
사람들은 들판에 끝없이 줄을 서서 한꺼번에 발을 구르니
지축이 흔들린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개가 사람으로 변하고 사람이 쥐로 변해서
사람과 짐승의 경계가 없어지고 땅과 하늘의 경계도 허물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날도 나는 피안의 강을 건너는 배에 앉아있으니
슬퍼할 겨를조차 없구나‘

저런 염병할!
나의 귀엔 그날 새벽하늘에 낭자했던 그녀의 비명소리만 들렸다

‘바리’의 불룩한 배는 우물가의 만개한 수국 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젖꼭지는 갓 만들어놓은 애기 무덤처럼 보였다

아무튼, 우리는 그녀의 하얀 배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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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37 [소리 - 3]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3 11:11
조회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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