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소리 - 4/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24

[소리 - 4]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된 진통이
‘바리’의 뱃속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움직였다
나에게 미리 준비한 것들과 데운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어금니를 꽉 깨문 그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보기도 두려웠고, 듣기도 싫었다

‘바리’가 허리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여섯 번째 힘을 주었다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생명 하나가 그녀의 자궁을 열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는 핏덩이를 받아서 내 품에 안겨주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 다시 하나의 생명이 그녀의 자궁을 열었다
나는 아이의 배꼽에 달려있는 탯줄을 이빨로 잘랐다
어미와 아이를 잇는 소리의 질긴 인연을
끊는다고 생각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입안에 가득했다

저편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그와 나는 이렇게 일곱 명의 아이를 받았다
일곱 아이의 조그마한 손과 발가락의 꼼지락거리는 모습은
갑자기 내게 심한 구토증을 불러왔다

어릴 적,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나는 어머님과 함께 등불을 켜고
피 냄새가 진동하는 돼지우리에 들어섰다
돼지 다리사이에서
일곱 마리의 하얀 새끼돼지를 받아
짚북데기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지금 일곱 아이의 모습이 그것과 똑 같았다

‘바리’의 자궁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문턱을 넘어 주춧돌을 타고 돌아 돌계단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활짝 핀 목단 밑동을 지나서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가 하얀 무명천으로
그녀의 자궁에서 흐르는 검붉은 피를
부드럽게 닦았다

일곱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푸르스름한 동쪽 하늘을 급하게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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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38 [소리 - 4]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24 12:57
조회수: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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