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7.11
['木魚' 37 - 노래 부르다 2]

친구들아, 나보다 먼저 떠난 친구들아

나, 청둥이가 이렇게도 약해빠진 오리라는 걸
내가 이렇게도 겁이 많은 오리인 걸 여태 몰랐어, 몰랐지
모르고 난 살았어, 살았지
난 지금까지 사나이답지 못하게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늠름한 청년 오리가 되었어, 되었지
남 몰래 눈물을 삼키며 붉은 해를 향해 턱을 높이 올리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 있어 있어 있어
나는 진정 사나이이기 때문에 이젠 절대 울지 않아
아아아 내 친구들아  아아아 내 친구들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하늘을 나는 내 친구들아
너희들의 영혼이라도 볼 수 있도록 모두 내 앞으로 날아 와봐
나는 한쪽 날개가 없어도 이렇게 씩씩하게 살고 있잖니
보고 싶어 친구들아  아아아 아아아 친구들아

너의 고향 아무르에서 날아 온 회색머리 아비야
‘가가 갓갓’ 소릴 질러대며 날아 와봐

눈부신 하얀 깃털을 온 몸에 입고 큰 키를 자랑하는 늘씬한 다리 백로야
늘 홀로 고독한척하는 널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고아 고아’ 노랠 부르며 내 앞에서 다시 한발로 서봐

‘삐유리 삐삐유리’ 도요새가 노래부르고
뜸부기는 ‘찍찍’ 울었지
‘휫 휫’ 검둥오리
쇠가마우지가 목을 길게 내밀고 ‘쿠리와 쿠리압’ 소리를 질렀지
날쌔게 휘돌아 나를 돌아보며 ‘쿠치 쿠치 쿳’ 노래 불러준 바다제비야
괭이갈매기는 ‘냐오옹 냐오옹’ 울었지

나를 닮은 쇠오리, 너는 날개 밑에 영롱한 청록색 깃털을 숨겨두고
가냘픈 목소리로 ‘삐리 삐리’ 노래를 부르면 나는 '괙괙괙' 장단을 맞추었지
온종일 배고파서 부리가 숟가락으로 변해버린 저어새는 ‘큐우우 큐리리’
저 세상에선 더 큰 배고픔이 없겠지 지금쯤 숟가락 부리가 젓가락처럼 변했을까
친구들아 날아 와봐 이곳으로 날아 와봐

빨강부리 까만색 몸에 하얀 날개깃으로 깜찍한 검은물떼새는 ‘뽀삐이 요’ 노래 부르고
여름엔 노랑 귀목걸이를 하는 귀뿔논병아리야
너의 예쁜 자태에 나는 한눈에 반했어
너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항상 두근거렸어
‘그 라 야르 그르르’ 구슬 굴리는 소리를 닮은 너의 노래는 더욱 아름다웠지
어린 시절 갈대숲에 숨어서 너의 노래를 듣고 나는 홀딱 반했어
‘그 라 야르 그르르’
너의 어여쁜 모습은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했어

친구들을 부르는 청둥이의 노래 소리가 어두운 물속에 점점 퍼져 나갈 때
어디선가 형형색색 은은한 불빛들이 날아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청둥이 보다 먼저 이 바다를 떠난 친구들의 혼불이 저 세상 끝에서 날아왔다.
혼불은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하나 둘씩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거나
혹은 홀로 둥 떠 있기도 했다.
청둥이는 은은하게 빛을 내는 혼불들의 춤을 지휘하듯 왼쪽 날개를 활짝 펴서
너울너울 저으며 노래를 불렀다.

혼불들이 오르락 내르락하며 춤을 추는 동안에 물속은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木魚가 말했다.
‘해가 물속으로 잠기기 직전이야.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라서 물속에 잠긴 해가 장관을 이룰거야.
그걸 구경하고나면 금방 밤이 된다...물속에선 밤이 빨리 온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가 쉴 잠자리를 봐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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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33 / '木魚' 37 - 노래 부르다 2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07-23 13:01
조회수: 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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