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18
['木魚' 88 - 도시에 들다]

세상의 온갖 욕망들이 서로 중얼거리고 부대끼며 떠밀려가는 검은 강을 따라
석벽의 수문을 가까스로 통과를 했다.
거대한 도시였다.
거대한 도시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화바다 보다 수십배 더 넓은 도시였다.
도시는 사나운 짐승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긴 채 물속에 고요하게 잠겨 있었다.
바깥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구축해간 그대로를 흉내 낸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검은 강은 빌딩사이의 도로를 메우면서 도도하게 흘러갔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 하는지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척 하는지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낯선 방문객들이 나타난 까닭인지 도시는 건물마다 문을 굳게 닫고 시커먼 창문은
마치 거대한 사나운 짐승의 대가리에서 눈알만 빼놓은 것처럼 어둡고 칙칙했다.
골목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도시에 압도를 당했다.
모두 등줄기에 소름을 느끼며 길위에 끝없이 흘러가는 검은 강을 따라 숨을 죽인 채 헤어갔다.
청둥이는 목어의 등에 납작 업드려 목만 길게 빼어 순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에 살아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것일수록 괴기스럽게 변한다.
인간들이 그 쓸모가 다해서 스스럼없이 버려버린 욕망들과 인간이 창조해 놓은 살아있는 것이든 죽어있는 것이든
그것들이 토해놓은 똥과 오줌, 피와 정액, 분비물과 고름이 뒤섞여 흘러가는 저 검은 강을 빨아먹고 커나가는
이 물속도시의 괴기스러운 모습도 결국 인간이 만든 짓이다.

내가 버린 것들은 지금 이곳 어디로 흘러들어와 어떤 건물에 무엇으로 박혀있을까.
그 생각이 스치자 여기저기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초등학교 시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몰래 찢어서 천변에 버렸던 형편없는 성적표가 나를 부르고 있다.

‘미, 양, 양, 미, 가, 양, 미, 가, 미....’

청춘시절, 그녀에게 결국 보내지 못하고 불에 살라버린 연애편지가 불현듯 나타나서 나를 부른다.

‘별을 헤는 밤에.... 저 별빛을 닮은 당신의 눈이 어쩌구저쩌구...’

내가 외면했던 함성과 프랑카드와 깃발들의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파트의 평수를 늘리기 위해 팔아먹었던 고향의 휴지조각 같은 논과 밭이 나를 부르고 있다.
매일 비누질을 하며 벗겨낸 물때와 달포 만에 깎아야 했던 머리카락들과 손톱 발톱들까지
그리고 몇 년 전 떼어내 버린 곪아터진 맹장과  날마다 후벼 파는 발가락 사이 무좀 각질과 코딱지와 눈꼽과
담배냄새 쩐 가래침과 매주 한번씩 틀림없이 분리수거 쓰레기장에 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다시 찾고 있다.
물속도시 빌딩들 사이에서 저 어두운 창문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낭자했다.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간이 만든 것들 앞에서 인간이 절망하는 시간과 그리고 매번 그것들을 부수고 버려야 하는 일에 절망하는 절차만 남았다.
우리가 내버린 것들 앞에 무릎을 꿇고 업드려 큰 절을 하며 섬겨야 할 때가 남았다.
저 물신의 욕망들 앞에 우리 인간들은  벌레처럼 기어가 용서를 빌어야 할 때만 남았다.

이제 곧 우리 인간들은 도처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창조했던 껍데기 유령도시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창조는 소비의 일종이다. 이런 창조와 소비가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었던가.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었고, 자신이 설정했던 목표는 끊임없이 배반당했으며, 마침내 인간의 야망은
곧 무기력한 일상일 뿐이라는 증거 하나만 남는 것이다.
그 증거조차도 과학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언젠가는 다시 버려야 할 인간의 창조물로 역순환을 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야망이 물속도시의 빌딩사이를 가득 메워서 떠밀려가는, 피고름끼리 중얼중얼대는 검은 강을
우리는 벌레처럼 기어가듯이 헤어가고 있었다.
꼬물대며 헤어가는 우리의 모습도 저 피고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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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ay by Day]-133 / '木魚' 88 - 도시에 들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8-10-20 11:22
조회수: 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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