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이윤엽의 ‘밥’과 ‘그릇’]

국민은 국가권력을 항상 감시해야 할 당연한 의무와 권리가 있다.
왜냐면 국가는 국민이 만들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한 국가권력은 거꾸로 국민을 감시한다.
이것은 정치권력이 갖는 추악한 속성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은 인권, 환경, 생명, 평화와 같은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갉아 먹으며 자신만의 성(城)을 구축한다.
국가권력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맹신할 때마다 국가의 본디 주인인 국민에게 국가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국민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자리를 찾으려고 하면 국가폭력은 더욱 극악하게 나타난다.

사람 사는 어느 곳에나 ‘밥’과 그 밥을 담는 ‘그릇’이 있다.
배고픈 사람에겐 당연히 그릇보다도 밥이 더 중요하다. 때때로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내용의 밥이라도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맛’이라는 것이 사람들에 따라서 느끼는 것이 천차만별이라서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 우리는 쉽게 ‘보편적’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차별화된 맛까지
두루뭉수리하게 대충 얼버무려서 자기가 느낀 맛으로 포획해 버린다.
우리들 시각매체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밥과 그릇의 관계’를 좀 더 고상한 미학적 용어로 ‘내용과 형식의 관계’라고
내숭을 떨며 이야기한다.

국가폭력도 시대상황에 따라 그 내용과 형식이 줄곧 다양하게 변화되어 우리들을 끊임없이 주눅 들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고문과 학살은 해방이후 한국을 경찰국가로 만들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친일세력을 껴안으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었고
당시의 국가폭력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반공이데올로기가 태반이었다.
이후 개발독재 박정희도 반공이데올로기에 의지하여 권력을 유지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열었던 광주오월학살의 극악무도한 국가폭력도 역시 반공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에 기대어 이루어졌다.

광주오월민중항쟁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만연한 국가폭력의 내용인 반공이데올로기를 이겨냈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오른쪽 뇌로만 사고하던 한국 민중은 이제 비로소 왼쪽 뇌를 되찾아 완전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더 적극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근대적 정신’은 1980년 광주오월항쟁 이후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한국의 ‘현대성’은 자율적 사고가 가능한 광주오월항쟁 이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과 집권 3년 만에 역사를 20년 뒤로 후퇴시킨 이명박 정권에서 다시 수많은 국가폭력의 망령들이 되살아났다.
이 새로운 유형의 국가폭력은 천박하고 미천하게 성장한 한국의 자본주의에 의해 그 내용과 형식이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온 국민 부자 되기’라는 공약에 속아서 국민 스스로가 선택한 대통령은 단지 한사람의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이 천박한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지난 문민정부 십여년간에 쌓인 글로벌 자본주의의 불온한 쓰레기가
결국 이명박 정권이라는 천박한 시대적 징표를 만들어 놓은 원인이기도 했다.

지금의 국가폭력은 엄밀한 의미로 보자면 ‘배부른 자들의 폭력’이나 다를 바 없다.
새만금 개발에 따라 이득을 보는 극소수의 국민들이 저지르는 폭력이나, ‘용산 재개발사건’에서 보듯이
재개발로 ‘부자 되기’에 혈안이 된 중산층 국민이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아온 힘없는 주민을 내쫓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조장 방관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경찰은 당연히 자본의 충실한 종노릇을 자임했다.
한국의 산천을 갉아 파먹고 있는 전국토를 토목공사현장으로 만든 4대강 개발도 역시 해당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또는 강 주변에 부동산을 소유한 극소수 재벌들에 의해서 국토에 대한 국가폭력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팽택 미군기지 싸움, 일명 대추리 싸움을 통해 한국의 미술가들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내용과 형식이 교묘하게 달라진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유형의 미술소조가 ‘미술파견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국가폭력이든 그것이 자행되는 곳이 어디든 화구 보따리를 챙겨 어깨에 들쳐 메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지역주민들과 고단한 삶을 함께 꾸리면서 그림 작업을 한다.

요즘 한국에선 ‘공공미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는 저 생소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관심도 없다.
아마 서구의 지엽적인 미술현상의 한 부분을 베껴 온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우리는 ‘현장미술’ ‘파견미술’ 혹은 ‘미술운동’등등 이해하기 쉽고도 반듯한 내용을 담은 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들이 말하는 현장의 미술운동이 모두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게 모두 돈 장난이다. 정부나 자자체 또는 문화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그럴듯하게 ‘공공미술’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마치 공공적인 뭔가가 있을 법하지 않은가.

한국에 예부터 전해온 ‘경제론’이 있다.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돈 가는 곳에 마음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선인들의 경험이 만들어낸 돈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지혜로운 이 말의 뜻은 명확하다. 프로젝트 예산을 지원하는 돈줄의 입장에 따라
작업의 내용은 얼마든지 바뀌어져 버린다.
이렇게 돈 몇 푼에 혼을 팔아버린 미술행위들이 문민정부 10년 내내 젊은 화가들에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저들은 프로젝트 예산이 없이는 콧구멍만한 전시회 하나도 스스로 꾸릴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해져 버렸다.
예산과 돈에 작가의 영혼과 몸이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이런 황망한 시절에 ‘미술파견단’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현장미술 조직이 만들어졌다.
파견단에 들고나는 것도 각자 처지와 조건에 따라 자유스럽다. 현장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떤 이는 상점 간판을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밤새워 판화를 찍어 주위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또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나무와 돌을 깎아 의미 있는 노리개나 목걸이를 만들어 길거리와 현장에서 팔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공사판에 가서 땀을 흘리며 일용직 노가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들은 그렇게 모아진 작은 돈과 화구를 어깨에 메고 우리시대의 첨예한 현장을 찾아서 달려간다.

이번 사키마 미술관에서 초청한 판화가 이윤엽도 ‘미술파견단’ 조직의 멤버이며 대추리 싸움과 용산 재개발 싸움,
그리고 4대강 난개발 싸움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화가다.

현재 이윤엽의 ‘밥’은 ‘국가폭력’이다. ‘그릇’은 판화매체다.
국가폭력은 군인이나 경찰을 동원해서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이젠 자본가의 돈다발로 사람의 목숨을 내려치기도 한다.
이윤엽 작업의 내용과 형식은 현장의 싸움을 통해서 일정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둡고 습기찬 작업실 안에서 고독한 인내를 통해 내용과 형식의 변화를 겪는 일반적인 예술가들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
현장으로부터 민중의 삶을 읽고 매체의 형식을 변화해 나가는 것은 우리시대 리얼리스트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처럼 현장의 다양한 삶을 조각하는 이윤엽의 예리한 조각칼이 우리시대 리얼리스트의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추리 현장에서 만들어낸 이윤엽의 그림들에서는 치열한 현장의 긴장감보다는
오히려 현장 주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왕에 만들어진 옛 선배들의 형식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간혹 보인다.
곧 캐테 콜비츠의 반전포스터의 형상이 그의 작업에 중복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마치 끌로 떠 낸듯한 판화가 오윤의 고유한 형식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1990년대 이후로 한국의 민중판화가들 대다수가 지난 민중미술의 정신적 자산을 송두리째 말아먹으며
구차스럽게 걸어야 했던 팬시적 디자인 양식이 보이기도 한다.
‘그릇’에 대한 이윤엽의 욕심이 과했을까. 아니다, 그보다 조금 앞서 걸었던 선배들의 난삽한 걸음걸이가 남긴 발자국이
필시 왜곡된 이정표를 후배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릇’에 대한 이윤엽의 고민이 너무 급했던 탓일까, 아니면 필자를 포함한 선배들의 지난 작업의 성공과 실패를
이윤엽이 작업과정에서 너무 염두에 둔 탓일까.

아무튼 대추리 현장에서 건진 그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왜 아직까지도 미군기지 때문에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자기 땅에서
내쫓김을 당해야 하는 것에 관하여 파편화된 서정은 있으되 서사가 부족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선배들의 그런저런 모든 형식들을 싸잡아서 이윤엽이 자신의 작업에 녹여내어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가는 거대한 실험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예술가의 작업행위는 100개중에 99개는 실패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후 용산재개발 현장에서 거두어낸 그의 작업은 교묘한 국가폭력의 위장막을 확실하게 벗겨내고,
형식에 관한 고민에서도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
나무판을 파는 그의 칼끝이 한결 자유스럽다. 설날을 사나흘 앞두고 자본가와 경찰력에 의해서 불속에 내던져졌던
다섯명 주민들의 지난 삶의 서사가 그의 조각칼에 의해 아로새겨지고 있다.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깡패들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대치 상황의 긴장감이,
용산현장의 불바다는 단순한 공권력의 폭력이 아니라 ‘부자 되기’에 혈안이 된 천박한 자본의 중산층 노예들이
저지른 폭력이라는 서사가 그의 그림에 일목요연하다. 그
러나 간혹 ‘그릇’을 매만지며 다듬는 그의 손길이 오히려 치열한 현장에 감추어진 진실을 놓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엽과 ‘파견미술단’이 보여준 현장의 작업들은
우리시대의 중요한 리얼리즘 미술의 큰 자산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나는 오끼나와의 많은 친구들과 선후배 제현들에게 이윤엽의 그림을 소개하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오끼나와의 젊은 화가들이나 화업 지망생들이 이윤엽의 그림을 보면서 한반도와 오끼나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도처에 발호하는 국가주의와 국가폭력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그들도 오끼나와 도처에 숨어있는 치열한 현장을 자신의 작업장으로 삼아 이윤엽의 그림보다 더 멋있는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이윤엽 역시 이번 오끼나와 전시를 통해서 분명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오끼나와 전시 기간 동안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같은 감성과 정서를 오끼나와의 형제들로부터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동아시아의 문화적 ‘아키타입’이다.
이런 고유한 문화적 원형을 발견하는 경험은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적 상상력이 된다.

또한 ‘이윤엽과 나는’ 형식에서 자유스럽기를 원한다. 너무 형식을 중요시 여기다가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사나흘 굶은 사람에겐 우선 밥이 중요하지 어떤 그릇이라도 상관없다. 심지어 그릇이 없어도 그만이다.
우선 밥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에서 화가 짓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도, 아니 영원히 배고픔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누구나 취미수준의 그림 그리기만 경험했더라도, 형상을 만들어가는 화면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안다.
그리고자 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철저히 통제해도, 그림의 결과는 머리로 이해한 개념과 늘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
화가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다. 또 화가의 관찰과 예상 역시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이른바 비평가들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언어의 유희를 고안하고, 미학자들은 시선과 화면, 현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러나 비평과 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항상 넘어서야 하는 고통스러운 숙명을 예술가는 멍에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리얼리즘의 길을 걷는 화가에겐 다행스럽게도 ‘현장’이라는 작업장이 있다. 현장을 떠나 어두컴컴한 아틀리에 안에서
이루어진 작업은 자폐적인 알레고리만을 거듭해서 만들어낼 뿐이다.
그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은 바로 ‘현장’에 숨겨져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이윤엽과 나는’이라는 문장을 굳이 사용하는 뜻은 다름 아니라 조금 더 앞서 걸었던 선배로써
논리적으로 다 말하지 못하는 어떤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저 속에 비단 핵이 갖는 방사능보다 훨씬 더 잔인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웅크리고 있는 악마의 뒤틀린 모습을 읽고 있다.
저 악마의 차가운 심장은 우리의 얼굴, 너와 나의 끝없는 욕망으로 채워져 있다.
정규직 봉급의 절반도 채 안되는 비정규직 원전 노동자들이 그 일감에서조차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현대판 사무라이 영웅들’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하나 둘 피폭으로 처참하게 쓰러져가는 비극을 목도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자폭의 길을 날아가게 했던 싸이코패스한 국가주의의 전형적인 징후가
나의 뇌리에 떠오른다. 그런 음험한 국가주의가 어디 일본뿐이던가.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중국에서도 국가권력은 저 음험한 국가주의 씨앗을 애지중지 키워내고 있다.
동아시아, 그러니까 한반도의 분단과 일본의 길고 긴 어두운 정체의 늪, 그리고 중국 시장의 무한정한 확대가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낼 가공할 국가폭력의 음습한 핏빛 그늘을 나는 예감한다.
우리들이 아직까지 감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예상조차도 미처 하지 못했던,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드는 극악한 국가폭력의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는 예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윤엽이가 반갑다. 다종다양한 현장에서 굵어진 그의 숱한 경험과 결국엔 ‘밥’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예리한 그의 조각도가 항상 번뜩이고 있어서 나는 자못 안심한 마음으로 그 불안한 예감을 맞이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이 다 하지 못했던 임무를 이윤엽과 ‘미술파견단’ 동지들이 저 거센 국가폭력의 모진 삭풍을 이겨내며
동아시아 도처에서 국가주의의 악마들이 저지르는 야만적인 폭력을 낱낱이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동아시아 리얼리즘 미술의 튼튼한 기둥을 결코 만들어 낼 것이다. -洪成潭 / 화가 / 2011.3.31 -
(이윤엽 사키마 미술관 전시도록 '여기 사람이 있다' / 2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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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윤엽의 ‘밥’과 ‘그릇’ / 홍성담
이름: damibox


등록일: 2011-05-20 15:29
조회수: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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