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동아시아 리얼리즘 미술 - 3개의 섬으로 엮인 고리]

1. 태평양 전쟁의 결과는 미국이라는 ‘손님’이 동아시아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손님’은 자신의 군사적 전략의 거점으로 3개의 섬에 거대한 냉전 시스템을 만들었다.
분단 한반도의 제주도와 타이완, 그리고 오끼나와, 이들 3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섬이다.

2. 타이완과 오끼나와 문제의 해결 없이 한반도의 분단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분단문제 해결 없이 오끼나와와 타이완이 갖고 있는 각각의 문제가 해결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아무도 없다.
동아시아 제반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오끼나와, 타이완, 분단 한반도 이 세 개의 섬이 동시에 해결되는 것에서
비로소  지난 비참한 역사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비루한 국가적 시스템으로 부터 진실한 해방과,
그리고 생명과 인간권리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

3. 자의든 타의든 타이완과 오끼나와 그리고 한반도의 문제는 서로  착종되어 복합적으로 엉키고 설켜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겉으로 보기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게 보이지만 속내를 유심히 살펴보면  
태평양 전쟁이라는 괴물이 낳아놓은 세 명의 쌍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타이완의 복잡한 근현대사를 함축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2.28 학살사건이다.
판화가 황영찬黃榮璨 은 노신 판화학교에서 판화를 배웠다.  
이후 타이페이 대학 앞에서 서점을 하면서 캐테 콜비츠 판화를 타이완에 소개했다.
그리고 수많은 판화전시회와 더불어 후배들에게 역사와 그림을 가르쳤다.
2.28사건 직후에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던 학살 현장 (담배 좌판 노인을 단속반 공무원들이 학살한 광경)을
목판화로 제작하여 즉시 타이완 도시 전역에서 전시를 한다. 그러나 백색테러 당국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학살되었다.
그의 판화는 노신의 혁명판화의 전통을 타이완의 정서에 맞추어 목판의 획과 선이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섬세하다.
이렇게 또 다른 양식으로 변화시킨 그의 목판화는 당시 2.28사건 학살 현장의 긴박한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다.
오늘 우리는 역사적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그의 행적을  
겨우 몇 장 남겨진 그의 유작으로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스케치나 판화작품을 통해서
그는 타이완의 원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짧은 노트를 통해서 타이완 원주민들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들 삶의 풍습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2.28사건 직후에 당국에 체포된다. 그리고 함께 활동했던 그의 연인도 체포되어 타이페이 감방에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수감되었다.
비가 추적이며 내리는 어느 캄캄한 밤중에 간수가 갇혀있는 사람들 가운데 십수명을 호명한다.
곧바로 타이페이 강 마장터에 데려 가서 처형할 사람들 이름이다.  
황영찬이 간수들에게 끌려갔다. 끌려가는 그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른 방에 수감되어 있던 그의 연인이 울부짖었다.
그렇게 황영찬이 처형되었다.
다음날 밤엔 그이의 연인이 끌려나가 총살되었다.

5. 1948년에 일어난 제주도 4.3 학살 사건은 한반도의 강고한 분단체제를 만든 한국전쟁을 예고했다.
제주도 민중봉기는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 체제의 사회문제와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미군정과 군정관리들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도민의 1/4에 해당하는 약 3만명이 학살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2003년 10월 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그렇게 정부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 까지 그들 유족들은 극심한  레드컴프렉스에 시달렸다.
그들은 50 여년 긴세월 동안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몸과 마음에 새겨 넣고 살아왔다.
살아남은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이지메를 피해서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살거나 혹은 일본으로 밀항하여
제일교포의 한축을 형성했다.
이렇게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회복투쟁과 노력이 있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고문을 받아 심지어 간첩죄로 낙인이 찍히거나 구속되어 청춘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화가들의 피땀 어린 노력은
한국민중미술사에 ‘역사 바로보기의 미술’이라는 굳건한 이정표를 세웠다.

6. 오끼나와 전쟁은 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민들 약 12 만명이 비참하게 죽음으로 내몰린 역사적 사건이다.
나찌스의 유태인 학살사건과 더불어 우리 인류의 현대역사에서 가장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기노완市의 사키마 미술관엔 마루키 부부가 그린 ‘오끼나와 전쟁도’가 있다. 마루키 부부는 전통일본화 화가다.
에도시대 속세에 매료된 우키요에 전통과 섬세하고 활달한 일본화 전통을
오끼나와의 거친 바람과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숨겨진 처참한 역사적 실체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양식으로 발전시킨다.
그의 그림엔 오끼나와 섬사람들이 고대부터 간직한 공동체와 꿈과 사랑의 거대한 낙관의식이 바탕에 깔린다.
그 위에 짙은 농묵에 목탄과 콘테의 거칠고 건조한 갈필이  반복되어 오끼나와 전쟁 당시의 참담한 죽음의 공포가 겹치고
수많은 주검들이 뒤덮여서 그려진다. 화면은 짙게 번져나간 농묵 때문에 어둡고 숨이 막힌다.
그러나 그의 화면은 이 엄청난 죽음을 딛고 일어서야만 생존이 가능한 오끼나와 섬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숨겨진
희망의 씨앗을 절대 놓치지 않고 화면 어딘가에 심어 놓는다.
그 작은 희망 하나 때문에 농묵의 넓은 화면이 결코 어둡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간 익명의 사람들의 억울한 영혼을 한사람 한사람 보듬어 안아서
그들의 원한을 씻어주고 달래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7. 우리는 이렇게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3개의 섬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민중미술을 급하게나마 둘러보았다.  
모두 대학살의 비참한 역사를  다루었다는 것과 이 미술들의 주제가 되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모두  태평양 전쟁 직후의 동시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의 리얼리즘 미술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위에 제시한 두 가지 공통점들을
3개의 각각 다른 나라 미술사에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위 그림들을 좀 더 분석해보면 그 그림들의 양식적인 면에서
서구 미술과는 전혀 다른 몇 가지 공통점을 더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희망이다. 아무리 비참한 사실을 그린 화면이지만 결코 고통과 절망만을 담지 않는다.
화면의 어느 끝자락은 그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야하는 희망을 노래한다.

둘째, 학살이라는 인간 범죄를 고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학살 범죄를 고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이 있다.

셋째, 이 그림들은 이런 비참한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우리들에게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다.

넷째, 대부분 이 그림들의 양식이 복합구성의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혼과 육신, 하늘과 땅과 바다, 희망과 절망, 슬픔과 환희,
이런 모든 상대적인 내용까지도 안과 밖이 따로 없이 하나의 화면에서 어우러진다.
이것은 인간과 우주를 바라보는 동아시아의 시각적 태도이기도 하다.

다섯째, 이런 비참한 죽음에 대해 원망과 비탄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 죽음을 위무하고 진혼하는 화가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가 보인다.
즉 관념적인 미학적 단어들을 요란하게 들이대면서 예술을 현실문제에서 소외시키거나
화면에 그려진 형상이 유희적 난해성으로 떨어지는 것을 절제한다.  

여섯째,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죽음은 無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또 다른 적극적인 생명이라고 해석하는 담대한 세계관이 있다.
우리들의 주검이 땅에 썩어 들어가 거름이 되어 씨앗을 싹 틔우고, 줄기와 잎이 나오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벌 나비가 날아오고, 햇빛을 부르고 비를 부르고 바람을 부르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살아남은 우리가 그 열매를 밥으로 먹고, 그래서 저들의 영혼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다시 새롭게 살아간다는,
즉 죽음과 화해하는 윤회적 세계관이다.

8. 동아시아 리얼리즘 미술의 원형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로써 우리는 이렇게 3개의 섬에서
이루어진 미술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위에 제시한 미술들에서 동아시아 리얼리즘 미술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생명’ 과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생명과 희망의 미술’을 우리들이 어떻게 발전시켜서 불온하고 비루한 현재의 역사에 개입하여
새로운 相生과 共生의 대안을 찾아가는 문화로써 살아남을 것인지는
바로 우리 당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과 여러분들의 몫이 될 것이다.-끝-
(오끼나와국제대학 심포지움 '한국 민중미술의 태도와 액티비즘 / 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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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아시아 리얼리즘 미술 - 3개의 섬으로 엮인 고리 / 홍성담
이름: damibox


등록일: 2011-05-20 15:37
조회수: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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