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물속에 든 딸이 아빠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아빠!
여기는 너무 어둡고 추워요.
그리고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잠이 와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요.
내가 물속에 든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선내 방송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빠!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요.
거대한 선실이 마치 세탁기의 수조처럼 천천히 돌면서
천정과 바닥이 벽으로 변하고 어디선가 바닷물이 폭포처럼 밀려 들어왔어요.
밖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서 저와 친구들은 이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곧 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혔어요.
갑자기 태양이 사라져 버렸어요. 바로 아까 아침을 먹고 선실로 돌아오면서
바라보았던 아침 바다에 뜬 태양이, 그 찬란하게 빛나던 남쪽 바다의 태양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요.
아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거예요?
아빠가 계시는 곳도 이곳과 똑같은 상황인가요? 아빠!
온 세상이 이렇게 캄캄하게 변해버렸는가요?

그리고 다시 거대한 선실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어요.
뭐가 뭔지... 너무 어두워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잃었던 정신을 가다듬었을 땐 귀도 먹먹하고 도저히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어요.
방금까지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위로를 했던 친구들을 이 어둠 속에서
다시 찾을 수가 없어요. 큰소리로 몇 번이나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그런데 저 쪽에서 한 친구가 나의 이름을 불렀어요.
나는 너무 반가워서 그 친구를 마구 마구 큰소리로 불렀어요.
그 친구가 나에게 염려하지 말고 그대로 버티고 있으면
자기가 내 쪽으로 오겠다고 말했어요. 물을 헤집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리고
한참 만에 그 친구가 더듬거리며 내 손을 잡았습니다.

이 친구는 우리 반 남자아이인데 평소에 하도 말이 없어서
‘빡스’라는 별명으로 불려요.
새색시처럼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라서
사실 지금까지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한번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나는 ‘빡스’에게 방금까지 우리와 함께 있었던 다른 두 친구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던 ‘빡스’가 한참 후에 울음을 삼키면서 말했어요.
‘아마 다른 방에서 우리처럼 살아있을 거야’

그러나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간 것인지 알아요.
이곳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지만 저 물 속 어디엔가 가라앉아 있거나
또는 내 몸 가까운 곳에 시신으로 떠다니고 있을 거예요.
혹시 저기 희끗하게 보이는 것이 친구의 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슴까지 물에 잠겨있어요.
그리고 발바닥은 겨우 벽의 조그마한 난간을 딛고
선실 바닥의 홈에 손가락을 넣어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요.
너무 추워서 몸이 굳어지고 자꾸만 손은 홈을 놓치면서 몸이 쓰러질라치면
‘빡스’가 나의 어깨를 잡아서 바로 세워놓습니다.
아아! 자꾸만 잠이 와요. 내가 잠들지 못하도록 ‘빡스’가 나의 어깨를 연신 꼬집으면서
여러 가지 웃기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 ‘빡스’는 자기평생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이 물속에서 했을 거예요.
어둠속에서 나는 힘없이 웃으면서 ‘빡스’ 몰래 눈물을 흘렸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빡스’의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열이 나면서 기침을 많이 했어요.
그가 추위에 벌벌 떨었어요.
그러나 나는 졸음이 와서 다시 비칠댔습니다.
‘빡스’가 힘들게 움직이더니 허리띠를 풀어 나의 어깨를 매서
허리띠의 바클을 쥐고 벽 위쪽을 더듬더니 그곳에 걸면서 말했어요.
‘아무래도 내가 더 이상 버티기엔 너무 힘들어.
넌 꼭 살아남아서 구조대를 만나야 해! 분명히 구조대가 우리를 찾아 낼 거야.
그때까지 절대 잠들면 안돼! 너는 꼭 살아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부모님을 만나야 해!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줘’
그리고 어두운 물속으로 사라져버렸어요.
나는 울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아빠!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어둡고 추운 물속에 내가 왜 갇혀있는 가요?
친구들의 시신이 잠겨있는 이 물속에 왜 나 혼자만 살아서
이 두렵고 무서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요.
나보다 빨리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이 차라리 부러워요.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인가요?
아아, 철판과 철판이 서로 엇갈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요.
이 커다란 배가 뒤틀리는지 내 몸이 잠겨있는 물이 부르르 떨어요.
여기저기서 벽과 바닥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요.
시커먼 저승사자가 나를 데리러 커다란 철 대문을 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곧이어 가슴까지 차 오른 물이 점점 나의 목으로 올라와요.
저 악마 같은 물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내 턱을 향해 올라오고 있어요.
윗벽이 내 머리를 누르고 있기 때문에 불어나는 바닷물을 피해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꼿발을 들고 코와 입을 윗벽에 대고
밀려오는 물을 피해보지만 아아! 아빠! 불어나는 물은 내 귀바퀴를 돌아서
점점 뺨을 넘어서고 있어요. 물이 입으로 들어와요. 짭쪼름한 바닷물이... 아빠!
숨이 막혀요. 아빠 아빠! 엄마!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사랑해요! 아빠 엄마.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바닷물이 시멘트처럼 변해서 나의 입술과 코를 단단하게 봉해버리는 것 같아요!
눈을 편안하게 감을 수가 없어요.
어떤 갈퀴 같은 손가락이 내 눈을 강제로 더욱 크게 벌리고 눈알을 파내는 것 같아요.
아아! 아빠! 이렇게 내가 죽어가요.
억지로 들이킨 물이 내 몸속에서 크고 단단한 바위덩어리로 변해요.
내 정신과 몸을 누르는 이 바위덩어리가 점점 백두산보다 더 커졌어요.
우리의 모든 아름다움이, 모든 꿈이, 나의 모든 사랑이, 아빠!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요!
나보다 먼저 간 친구들이, 저기 멀리서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은 친구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네요.
아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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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협잡과 날조질과 부정과 부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대통령!
그 결과, 박근혜 당신은 넋이 없는 정치인과 부패한 기업과 사이비 언론과 함께
서로 입을 맞추어 진도 앞바다에서 잔인한 물고문으로
국민 300 여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 생때같은 죽엄은 물고문임이 자명하다.
무능한 권력이 우리 국민을 물고문으로 죽였다.
무능하고, 비열하고, 저급한 박근혜 당신은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퇴하라!
만약 지금까지 당신이 즐겨하던 습관에 따라 조작질의 정치력으로
그 따위 대통령직을 연명하려고 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기어코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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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속에 든 딸이 아빠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세월호-그래스루티/2014.5
이름: damibox


등록일: 2014-05-24 10:42
조회수: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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