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홍성담 기자회견문-2014.8.24]

화가 홍성담입니다.

저는 1980년 5월 학살 광주에서 문화선전대의 일원으로써
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관통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내내 광주문화운동의 책임자로써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오월 학살자 처벌과 진상규명 투쟁에 저의 젊은 청춘을 바쳤습니다.
1980년대의 이러한 문화운동과 창작과정에서 저와 동지들은
수없이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잦은 수배와 체포, 고문과 징역은 물론 귀중한 작품들을 강제 탈취 당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주변 화가들로부터 ‘저것은 그림도 예술도 아니다’라는
모함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동지들과 함께 창작한 저의 <오월연작판화>는
지금까지도 아시아의 인권운동 여러 현장에서
또는 이곳 광주 오월의 현장 곳곳에서 오월정신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동지들이 만들었던 걸개그림과 노래와 마당극과 연극은
오늘날 문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1980년 오월항쟁 10일간의 현장은 내외부 소통의 모든 통로가 막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지들과 함께 만들었던 <투사회보>와 각종 <프랑카드>를 통해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시민들과 함께 소통했습니다.
광주예술문화의 오월정신은 당시 시민들이 흘린 붉은 피로 썼던 <투사회보>와 <프랑카드>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투사회보>는 후일에 소설과 시로, <프랑카드>는 그림으로 발전했습니다.
오월정신을 현재화하는 미학과 양식적 토대에 있어서도 이러한 ‘역사적 원칙’은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고향 광주에서 마련한 기획전에 출품할 기회를
세 차례 가졌습니다.
이번 걸개그림 <세월오월>과 더불어 지난 두 차례 모두 정권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그림이 전시되지 못했습니다.
2년 전 서울전시에서 소위 출산그림(골든타임-닥터 최인혁이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으로 인하여
수많은 협박과 탄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내용은 불과 2년이 지난 현재의 구차스런 우리 정치현실과 사회를 반영했다는 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반문할 수 없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줄곧 원작 전체가 공개되지 못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부분 이미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대중들이 이런 조악한 부분 이미지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비평가연 하는 사람들이
실제 원작 전시를 보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불성실한 태도입니다.
올바른 비평을 위해서 원작을 공개하라는 보편타당한 주장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
저들의 성실하지 못한 작태는 자신의 전문성을 스스로 져버리는 행위라고 나는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전문성을 결여한 비평행위는 건강한 창작풍토를 위해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미술계의 누적된 문제입니다.

또한 감히 행정관료 따위가 창작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푼돈을 내세워
예술가와 전시 기획자에게 갑질하는 행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올바른 예술이 창작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광주 오월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월의 피 흘리는 시신을 홍어로 비유하고,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못하는 등 이 어두운 현실에서
사실상 광주오월의 상처가 치유는커녕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땅의 지식인들 상당수가 <마취>와 <치유>를 혼돈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의 기획내용도 역시 이러한 우를 부분적으로 범하고 있습니다.
참여작가의 작품을 통해 기획자의 잘못된 기획의도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작가 정신은
‘치열한 창작의 세계’에서 보장 받고 있는 권리입니다.

저는 또한 <민주인권도시>라고 자처하는 광주에서 ‘인권’과 ‘오월정신’을
온갖 현학과 립서비스, 그리고 온당치 못한 은유와 비유 뒤에 숨겨서
자꾸만 밀폐된 쇼케이스에 감금 시키려는 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런 달콤한 마취제나 환각제가 오월의 깊은 내상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자신도 치유 받지 못한 광주시민군들이 부러진 총으로 비유된 목발을 짚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기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우리 현실의 슬픈 드라마가 연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 수많은 아이들을 우리들의 품으로 귀환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정치역사에서 가장 슬픈 여인이며, 이 어둡고 깜깜한 인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시민군들이 절뚝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세월오월>은 조선후기 민화의 화려한 채색 뒤에 이렇게 전체적으로 비극의 아우라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오월> 전시의 가부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결정을 하지 않고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는 현실입니다.
비엔날레 전문가는 비엔날레 이사장인 광주시장에게, 비엔날레 이사장은 비엔날레 전문가에게 서로 떠넘기는 이 지루한 핑퐁게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동안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광주시장은 자신이 비엔날레 이사장인줄 모르는 이 황당한 현실은
‘세월호’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회피와 19일 대토론회 등의 모호한 결정 뒤편에 오히려 행정당국의 더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것은 곧 파탄의 상황을 불러올 것임을 경고 합니다.

순수의 가면을 쓴 또 다른 악마는 항상 사건의 틈새에 기생하며 추악한 욕망을 드러낸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번 <세월오월>사건으로 인하여 수면아래 숨어 있던 미술권력에 대한 욕망의 맨얼굴들이 드러나고 있음을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예술계에 긴급하게 타전되는 ‘예술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의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관심표명도 없이 비엔날레와 시립미술관 점령에만 몰두하는 더러운 욕망의 배출을 잠시 멈추기를 부탁합니다.
지난 선거운동 당시 윤장현 시장후보의 지지성명을 냈던 화가들의 순수한 열정이
이번 사태에서는 윤시장에 의한 관제성 시위로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행동에 진정성이 있다면 지금 광주비엔날레의 개혁을 말하기 보다는 폐지를 주장해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추잡하게 전개되는 상황은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운장현 시장은 직시해야 합니다.
현실정치에서 ‘연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제상황이며 돌이킬 수없는 파국으로 발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점에서 광주시정의 최고 책임자는 발생한 문제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혹은 회피하거나, 잠시라도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매사에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답게 원칙에 의해 판단하고 신속하게 실행해야 하며 그것에 따른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하 공무원과 시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하여,  저는 이번 걸개그림 작업에 함께 참여한 동료 작가들과의
오랜 논의 끝에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전시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습니다.

내 그림은 늘 내 땅에서 유배당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독재권력에게, 지금은 민주화로 얻은 지자체 권력에게 또다시 유형의 길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시민운동가 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 지자체 권력에게 유배의 길을 권유받고 있습니다.

이 유형의 길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지만 예술가인 저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했던 생물학적,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인 내 고향 ‘오월광주’는 이번 사건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인권과 문화의 도시 ‘광주’는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오늘의 이 쓰라린 경험은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빈약한 한 예술가와 이 땅을 함께 처형했습니다.

길고 긴 유형의 길에서 저는 우리 현실의 온갖 모순을 만날 것입니다.
이번 특별전의 주제어인 ‘甘露(달콤한 이슬)’ 의 <감로탱화>에 등장하는 지옥의 세계, 모든 아수라의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와 자유선거로 위장한 부당한 권력과 끊임없이 마주칠 것이며
분단이라는 상처에 빨대를 박고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검은 세력과도 조우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해치는 이런 모든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형의 길 끝자락에서 저는 결국 늙고 병든 몸으로 이곳 고향에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때 까지 저는 이미 ‘죽어버린’ 광주에서
저의 작품을 일체 전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걸개그림 <세월오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저를 응원해주신 광주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결연히 맞서라고 힘을 북돋아주신 <오월재단>과
오월단체 여러분들, 수많은 문화관련 단체 여러분들,
그리고 광주의 올바른 미래를 위하는 관점에서 취재의 열정을 보여주신
기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이용우 비엔날레 상임대표이사와 윤장현 비엔날레 이사장은 저와 약속한 ‘윤범모 책임큐레이터의 복귀’外 두 가지 사항을
저의 기자회견 즉시 실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복귀한 책임큐레이터는 이 사건이 남긴 후유증을 모두 수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사건진행 과정에서 그림을 철수한 동료화가들과 더불어 11명의 탄원서 서명 화가들, 다수 외국의 화가들을 설득하여
이후 전시회가 무사하게 진행되는 것도 책임큐레이터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누를 끼친 것에 대해 윤범모 큐레이터에게 절절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세월오월>의 전시를 반대했던 분들, 광주비엔날레와 시립미술관 관계자 여러분,
특히 물리적으로 교묘하게 반대를 일삼았던 광주비엔날레 행정주무 공무원들과 윤장현 광주시장께도
그 노력과 수고에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다만 그들이 최고 권력의 사주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광주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자기 소신이었기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체 만찬자리에 끌려나와 <세월오월> 전시를 허겁지겁 말렸던
자칭타칭 광주의 원로 20 여분들께도 넙죽 엎드려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본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혹시 저의 이런저런 발언에 의해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저의 불손한 언어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4년 8월 24일 화가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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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악한 짓을 그만 멈추어라] - 기자회견문/홍성담/2014.8.24
이름: damibox


등록일: 2014-10-18 11:53
조회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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