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 내 안의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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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홍성담의 「집에 관한 명상」4편의 글 가운데
              이번 호에는 그 네 번째 명상의 종결판으로
              명상소설「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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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삼십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바닷가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삽작을 나와 왼쪽으로 논과 개울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담배 한 대 피는 시간만큼 걸어가면 저너미 마을로 가는 고샅길이 있다. 그 고샅을 중심으로 이쪽은 이너미 마을이고 고샅너머는 저너미 마을이다.
저너미 마을에서는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이 서로 바뀌어져 버린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곳이 이너미 마을이 되고 이 곳 내가 서 있는 마을이 저너미 마을이 된다.
내가 이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된 지는 나 자신도 확실하게 세월을 셈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세월의 최소 단위인 「하루」의 계산법이 너무 분명하게 있다. 그들은 내 몸 안에서 깨어나 문을 나서 일터로 나갔다가 다시 나를 찾아와 내 몸 안에 편안히 누워 잠들 때까지를 「하루」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참으로 수 없이 많은 세월을 그들이 새벽 동틀녘에 깨어나는 것, 겨울 저녁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찬 몇 가지에 밥을 나누어 먹는 것, 그리고 내 몸 안에서 평안하게 누워 잠을 이루는 것, 한 인간이 묵은 공기를 가르며 목젖이 한껏 보이도록 울음을 터뜨리며 긴 탯줄을 끊고 핏덩이로 태어나는 것, 또 세월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엊그제 태어난 것 같더니만 벌써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 이제 나의 몸 안에 반듯이 누운 채 지나간 세월을 가물가물 추억하는구나. 자손들의 슬픈 곡소리 뒤로 하고 단지 화평한 마음으로 저승길을 떠나던 날, 그가 삽작문을 나서다 말고 다시 뒤돌아 서서 나를 돌아보며 빙긋 웃는다.
대개 사람들은 「죽음」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토록 인간들에게는 「죽음」과 「삶」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의 「태어남」과 「죽음」을 지켜보았다.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때를 애초부터 모두 기억해 내는 것은 어차피 부질없는 짓이다.
이젠 나의 몸도 쇠하였는지 의식도 가물가물할 뿐만 아니라 한겨울 얼었다가 봄이 되어 풀리면 몸 구석구석 흙들이 바스라져 떨어지고 이 곳이 바닷가 마을인지라 유독 큰 폭풍우가 치는 여름밤에는 이 얇은 슬레이트지붕의 무게조차 힘에 부쳐 반듯이 서 있기가 피곤하다.
사람들의 세월이 다 하므로 내 세월도 더불어 흘러가는 것일까.
세월은 바람과 같아 사람들은 세월을 돌이켜 보고 늙어 가는 것을 알지만 나는 오늘 내 이마를 스치는 바람결로 세상의 운행이 어제의 그것과 똑 같이 돌아가고 있으며 내일도 똑 같으리라 짐작한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그 바람은 벌써 내 머리결을 훑고 앞의 좁은 벌판을 지나 바닷가로 내닫고 있었다.
그날도 바닷가의 새벽 안개가 밀려 와 온 마을을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밑둥이 없이 거대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도 무성한 나무줄기만이 안개 위에 둥 떠 있었고 돌담들의 윗 부분이 땅으로부터 솟아난 길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고 마을의 초가지붕들이 정박해 놓은 작은 배처럼 떠 있었다.
그 안개 사이로 손에 곡괭이를 든 장정들 몇이 숨을 죽이고 낮게 깔린 새벽안개 위를 미끄러지듯이 돌담을 따라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 백태가 끼어 모든 것이 희미하게 형체만 겨우 보이는 손주니할멈이 손을 더듬어 솥뚜겅을 열고 겨우 몇 숟가락 남아 있는 죽에 물을 붓어 막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려던 참이었다. 장정들이 밀어닥치며 신을 신은 채로 마루 위에 올라서서 방문을 열어 제쳤다. 잠을 덜 깬 할멈의 손주인 상연이가 얼떨떨한 채로 벽쪽으로 비껴 서고 장정들은 토막이불을 걷어 둘둘 말아 마당으로 내 던지며 즉시 곡괭이로 방 구들을 찍는 소리가 마을의 새벽을 난타했다.
할멈이 부엌에서 뛰쳐 나왔으나 장정들의 험한 기세에 눌려 그냥 마당 한 가운데 주저앉아 외쳐대기만 할 뿐이었다.
“믄 일이여,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믄 일이여”
“그랑께 놈의 보리쌀 꿔 먹었으믄 갚어야제. 벌써 이년째 아니여. 약속대로 어제가 보름인디 이번에는 그냥 못지나 가것구망. 이 집이라도 내 놓고 애 끌고 나가랑께”
막무가내로 방구들을 뒤집어 엎어 놓은 그들 중 하나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초가를 괭이로 풀어 헤쳐 밑으로 끄집어 내렸다. 그리고 장정 몇몇은 부엌살림이며 안방의 헌 농짝이나 옷가지들을 마당으로 내 던졌다.
원래 약간 모자란 듯한 상연이가 부엌문쪽으로 피하여 솥뚜겅을 열고 맨손으로 죽을 입에 퍼 넣고 있었다.
마을 사람 몇몇이 두런거리며 담 너머로 구경만 하였지 아무도 말리지 못하였다.

  그 할멈은 마당에 나뒹구는 세간 중에 우선 쓸만한 것들만 챙겨 손자가 이끄는 대로 백태  낀 눈을 꼭 감고 마을 안쪽으로 길을 더듬어 떠났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마을 안쪽 우물 가는 길 옆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손자와 움막을 쳤다.
마을의 어느 누구도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할 뿐이지 거들어 줄 생각은 못하였다.
나는 장정들에 의해 지붕이 파 헤쳐져 마당으로 내려지고 이미 삭아 비틀어진 문짝이며 군데군데 구멍 난 마루짝도 모두 떼어져 내 던져졌다.
해가 돋고 물안개가 걷힐 무렵 벽들도 하나 둘 해체되었다. 허물어 낸 벽의 흙이 한 쪽으로 치워지고 지붕의 서까래가 하나 둘 토막내어져 마당으로 내 던져졌다. 워낙 작은 토담집이라서 기둥은 별로 보잘 것이 없었다. 작은 기둥들은 벽을 털어 낼 때 함께 허물어져 내렸다.
해가 마을 입구 느티나무 가지 뒤로 숨어 들어갈 쯤에는 나의 몸도 이제 거의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루 한 가운데 지붕을 지탱하며 그 곳 위쪽에 등을 걸거나 또는 보리 삶은 바구니를 걸어 두거나 하던 그 중 가장 두꺼운 기둥이었다. 마지막 그 기둥이 위에 얹혀 있던 처마 밑 보와 함께 땅으로 나뒹굴어 넘어질 때 누군가가 마당에 쌓여 있는 지붕의 짚무더기와 헌 나무토막들에 불을 붙였다.
남아있던 내 몸의 모든 것들이 맹렬한 기세로 타 올라 불꽃이 날름거리며 하늘로 치솟자 사람들의 눈은 더욱 이상하리만치 무엇엔가 흥분되어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불길 너머로 점점 거뭇해지는 바닷가의 석양이 눈에 들어오고 이곳으로부터 아득하게 먼 육지에서는 만세소리와 일본 순사들의 호르라기 소리가 뒤엉켜져 그 날 나의 해체된 몸을 태운 불길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밤이 되자 다시 새들은 각자 자기네들의 둥우리를 찾아 날개를 접었다.

이 마을에서는 호령 깨나 하면서 사는 칠표영감네 둘째 아들이 작년 겨울에 결혼하여 분가 할 마땅한 집을 찾고 있던 터에 내가 서 있던 바로 이 자리를 탐했던 것이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칠표영감이 건너편 산 중턱 모랑지밭에 올라가 이 쪽을 살펴보기를 시작하더니 간혹 오고 가는 길에 삽작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무엇을 셈하는지 유심히 눈으로 재보거나 뒤안을 돌아가 바로 집 뒤에 바싹 붙어 있는 본시 내 몸짓보다 더 큰 우람한 바위를 보고 혀를 끌끌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위를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내쳐 저 쪽으로 빙 돌아 집 옆구리의 작은 텃밭을 어림짐작 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루 앞에 잠시 서서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앞산의 흐름을 따라 고개를 끄덕거려 보기도 하고 마루에서 담까지 마당의 넓이를 재는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숫자를 세며 볓 번이고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다가 밭에 나갔다 집으로 들어서는 손주니 할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킁킁 머시기, 상연이 애비는 아직도 소식없는감? 거 머시기, 묵을 것 힘들믄 언제등 말 하쇼 잉. 지난 저실에 꿔 간 보리 서말은 찬찬이 갚아도 된께. 염리 말구라 잉”
그러면서 다시 킁킁대며 삽작을 빠져 나가 몇걸음 걷다가는 다시 되돌아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엥이, 다 좋은디 뒤안에 그놈의 바위가 지랄이여”

칠표영감 둘째 아들 꼭두말이 장정들과 함께 이 곳에 집터를 새로 닦을 요량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칠표영감네 것이다. 바로 이 마을의 안쪽에 든든하게 버티어 동네 앞산과 뒷산자락을 흘려 놓은 가장 높은 산이 칠표영감네 것이다. 그 산의 동네 안쪽에 해당하는 남면은 영감이 어찌나 단속을 엄하게 하였는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루었다. 이 곳은 섬이라서 산이 귀하고 워낙 땅이 박한 탓도 있지만 다른 산들의 나무는 온 마을 사람들이 땔감으로 긁어 대니 숲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나마 칠표영감네 산 한 쪽만은 그래도 그 중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몰래 나무하러 들어 갈라치면 어떻게 그리 눈에 잽싸게 띄었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악을 써 대는 것이다.
“안골 산에 누구냐! 모가지 칵 돌려 빼버리기 전에 안나올래. 어뜬눔으 새끼가 산에 드러가았냐”
그 산의 소나무들이 벌목되기 시작했다. 동네 어른 중 누군가가 말렸다고도 했다.
“에이, 대처에 나가면 쎄고 쎈 것이 제재소의 나문디. 집 크기와 칸 수만 맞추어 주면 기계로 척척 썰어다가 배에 실어 날라 오믄 쉽게 할 것인디. 값도 시상 싸고 일도 쉽고 헐턴디. 저 나무들은 재목감도 못될턴디, 좋은 숲 베릴라고 저 숲 베리면 동네도 베린당께라우 잉”
“씰데 없는 소리, 내 집은 내 산에 내 나무로 지어야제 잉. 앙이 내 산에 내 나무 놔두고 믓헐라고 늠의 나무를 사와서 내 집을 진다냐. 그것이 제대로 집이 되것써 잉?”

  이 마을 목수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물 건너 다른 마을 목수까지 동원이 되었다. 아예 목수들에게 방 한칸을 내어 주고 일이 시작되었다. 산에서 베어 넘어진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잔가지가 쳐지고 장정들에 의해 나무가 집터로 운반되어 서까래, 마루짝, 기둥, 대들보, 가구, 문짝, 문틀 순으로 골라진 나무들이 차곡차곡 쟁여졌다. 목수들은 장정들과 함께 나무의 꺼칠한 거죽을 낫대패질로 하나하나 벗겨내었다. 나무들을 다듬어 쳐 낸 잔 가지만 눌러 쌓으니 집채만한 나무벼늘이 열 몇 개도 넘었다.
들어가면 하늘도 안보였다던 무성한 숲이 훤하게 드러나 마을 뒤가 썰렁하였다. 휑한 산이 문득 눈에 들어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 뒤통수를 쓰어내려 보았다. 그렇게 자신의 뒤통수 머리카락이 모두 잘려져 나간 것처럼 갑자기 허전해 졌던 것이다.

터 닦는 날에는 정성스레 술․과일․포․소금․향․초로 상을 차려 텃고사를 지냈다. 칠표영감이 직접 상에 올려진 술을 내가 세워질 자리에 휘휘 뿌리고 나서 상량할 머릿대 앞에도 크게 절을 하였다. 둘째아들 꼭두말이 괭이로 땅을 두 번 찍으면서 절을 두 번 하며,
“인자 이 땅에 집을 짓겄습니다 잉, 그저 아무 탈 없이 요 집만 잘 짓어지게 팍 도와줘야 쓰것구만이라 잉, 시상에 있는 복은 다 주서야 것구만이라우 잉.”
눈을 칭칭 감은 채 큰 소리로 외웠다. 그러자 음복하던 동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까르르 웃으며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앗따, 이사람아. 이렇게 걸게 상을 내서 고사를 한디 구신인들 안도와 주것는감. 아믄 아믄”
이 때 바로 집터 뒤안 대숲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온냐 온냐. 보리쌀 댓말에 내 집 뺏고 칠표야, 그 새끼 꼭두말아 이늠아 느그들이 온전한가 보자. 눈먼 늙은 놈 모질한 손지새끼를 내쫓아내고, 늠의 집 허물고 새 집 짓는다고 온냐 느그들이 잘 사는가 보자. 이 날강도같은 늠들아”
가슴이 풀어 헤쳐져 제정신이 아닌 손주니할멈이 백태가 허옇게 낀 눈을 뒤집어까고 있었다. 풀어 헤쳐진 옷고름 사이로 축 늘어진 젖가슴이 퍼런 심줄이 돋는 목까지 달라 붙도록 손주니할멈이 악을 써 댔지만 그러나 곧이어 장정들의 달구질 소리에 묻혀버리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허연 거품이 가득한 마른 입술만 노엽게 움직일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다시 세워졌다.

나는 이 마을에서는 꽤 큰 집이 되었다.
내가 세워진 뒤로 나의 신체 일부분이 되었던 나무들이 서 있던 숲, 그 숲자리 아래 이 마을에서는 제일 좋다던 칠표영감네 긴 밭에 토사가 자꾸만 밀려 내려왔다. 그 긴 밭 옆의 옹달샘, 공 들이는 효험이 좋다 하여 다른 동네 아낙들도 해가 돋기 전에 한동이씩 길러다가 새벽 정한수로 썼던 작은 샘이었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얼음물 같던 옹달샘의 바닥도 점점 말라 붙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전의 손주니할멈의 토담집에 비할 수 없이 멋드러진 집으로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지붕은 달걀처럼 둥그스름하게 초가로 얹혀지고 서까래든, 문짝이든, 마루든, 대청이든, 기둥이든 상큼한 송진냄새를 풍기며 윤기를 발했다.

집들이하던 날은 마침 꼭두말의 첫째 아들의 돐 날까지 겹쳐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잔치가 되었다. 칠표영감은 새 집으로 분가하는 꼭두말과 자신의 손주 돐을 위해 백근이 넘는 돼지를 잡았고 두가마니의 떡쌀을 담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불러 술을 내고 고기를 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포식을 하였다.
그날 밤은 손이 닿을 듯이 달이 휘영청 밝았다.
앞산 중밭에 수수모가지가 엷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까지도 훤히 내다 보이는 그런 밝은 밤이었다.
잔치가 끝난 다음은 유난히도 고요하고 새 창호지 문으로 뿌옇게 들어오는 달빛에 꼭두말과 새댁은 분가하여 새 집을 차지하였다는 것 때문인지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그 동안 결혼한 지 일년도 넘었건만 아버지 그늘에서 형들의 대소 식구들과 함께 사느라 혼수감으로 가져온 긴 이불을 첫날 밤 이후로 한번도 넓게 펴고 누워 보지 못한 터였다.
달빛에 반사되는 새댁의 어깨는 더욱 희고 약간 술기운이 남아 있는 꼭두말의 숨결로 새댁의 반듯한 머리결을 쓸어 넘겼다.
항상 다급하고 거친 꼭두말의 손이 오늘밤은 달빛만큼이나 세밀하게 움직이고 오히려 새댁의 몸짓이 급하였다.
시간이 그들로부터 까마득하게 멀어지면 마을 건너 길게 누워 있는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그들 거친 숨소리에 맞추어 오르내리다가 점점 거세어져 가는 파도 출렁대는 바닷속으로 결국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깊숙이 자맥질을 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을 위해 내 몸 안에 모든 것을 차단하고 달빛만을 허락하였을 뿐이지만 그들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소리를 온 몸을 열어 서로 엿듣고 있었다.
달빛을 따라 한 새로운 생명이 그들 몸에 스며드는 것을 나는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때 뒤안의 대숲에서 올빼미가 먹이를 찾아 겨냥하고 땅으로 곤두박질 하였다.
또 인간들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이러한 아름다운 순간을 위하여 인생 전반에 깔려 있는 슬픔과 절망을 고통스럽게 참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길고 긴 아름다운 밤이 주는 열락으로부터 세상 만물이 다시 새롭게 생성되는 것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연관으로, 그리고 상관적 동시성으로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마을이 불리워지는 이름처럼 작은 고샅길을 중심으로 이쪽과 저쪽이 이너미 마을이 되기도 하고 저너미 마을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서로 바투누워 아름다은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너」와 「나」사이에 구별없이 넘나 드는 그 「어떤 것」이었다.
그 「어떤 것」들이 태초의 공간에 자욱하게 떠돌고 있다.
그것들 중 무겁고 하강하는 것은 음(陰)으로, 가볍고 상승하는 것은 양(陽)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볍게 너울대는 불(火)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칙칙한 물(水)은 땅이 되었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 나서 그 안에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우며(木) 땅 속에 쇠(金)가 굳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음양의 교호작용이 세상 속에 오행(五行)을 만드는 동안 하늘에는 별이 형성되었다.
아름다운 순간도 잠시 그 열락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양(陽)인 불(火)이 형성한 하늘과 음(陰)인 물(水)이 이룬 땅의 끝없는 불균형으로 천지는 장엄하게 돌기 시작했다.
그 불균형의 양 축이 다름 아닌 생(生)과 극(克)의 대립원리이며 「스스로 생성하고 조직해 나갈(自然)」뿐 시작이 없으므로 끝도 없다.
나무가 타면 불이 되고(木生火), 불은 재를 남기고(火生土), 흙은 쇠를 굳게 하고(土生金), 쇠는 이슬이 맺히고(金生水), 물은 나무를 키운다(水生木).
나무자루 농기구로 흙을 파 헤치면(木克土), 흙 언덕은 물길을 잡고(土克水), 물을 뿌려 불을 끄고(水克火), 불은 쇠를 녹이고(火克金), 쇠는 나무를 깎는다(金克木).
사람도 그 속에서 태어나고 집인 나도 그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 인간들의 세월이 바람처럼 흘러갔다.

꼭두말의 머리에도 허연 서리가 내려앉고 그리도 곱던 색시도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들이 돐쟁이를 보듬고 새로 세워진 내 몸 안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이후에도 거푸 아들만 셋을 더 낳았다. 아들을 낳을 때마다 사람들은 집터가 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세월동안, 칠표영감도 저 앞산에 혼백으로 앉아 그 시신이 꽃상여에 실려 뒷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 보았다.
어느날 저녁 손주니할멈은 있는 양식을 모두 탈탈 털어 큰 솥 가득 밥을 지어 놓고 안 우물 가는 길 산비탈 움막에 자신의 시신과 모자란 손주를 남겨 놓은 채 마을을 떠 돌다가 들을 가로 질러 허위허위 바닷가로 달음질쳤다.
손주니할멈이 죽은지 사흘이 지나도록 모지리손주 상연이는 시신 옆에서 할머니의 죽음도 모른 채 식은 밥을 먹고 있었다.
그 후 모자란 상연이는 불두덩이에 털이 거뭇거뭇 돋을 때까지도 바지에 오줌을 사며 마을 이 집 저 집 돌아 허드렛 일로 빌어 먹다가 어느날 홀연히 바다를 건너 육지로 떠나갔다.
제 애비를 찾아 강원도 어디로 갔다던가, 서울에서 길거리 좌판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거나, 길거리에 굶어 죽어서 화장이 되었다고도 했다.
모두 바람처럼 소문으로 들려 올 뿐이었다.

꼭두말의 첫째 아들은 마을 서당이 배움의 모든 것이었지만 여간 똑똑한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재빠르고 워낙 조리에 맞게 말도 잘했다. 저너미와 이너미를 통털어 사람들은 신동이라고 극찬했다. 변호사가 꼭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스무살이 넘던 해에 일본으로 돈 벌러 간다고 나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징용에 끌려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봄에서 다시 새로운 봄까지 그렇게 몇 번이 바뀌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스름한 밤에, 마당 한켠에 누군가 그 가랑비를 내내 맞으며 유령처럼 서 있었다.
  작은 미동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인생의 끝은 어디만큼인가”
내가 대답했으나 아직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방안에서 둘째가 바깥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방문을 열었다.
그가 허물어지듯 가을비 질척거리는 마당에 주저 앉았다. 식구들이 그를 떼 메어 안방에 뉘어 놓았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바를 正자가 씌어 있을 정도로 반듯했던 얼굴이 움푹 패어 있었고 그 튼튼했던 몸은 바늘꼬챙이처럼 말라 있었다. 몇 년 전 일본으로 떠났던 첫째가 그렇게 돌아 온 것이다.
몇 년 동안 탄광에서 일하다가 돈 대신 병만을 보듬고 겨우 집을 찾아 온 것이다. 식구들이 모두 달려 들어 병구완을 해 보았지만 그 스스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청명한 가을 낮이었다. 섬마을 앞 작은 들판에도 벼이삭이 출렁이고 사람들은 가을걷이에 부산했다.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에 방 아랫목에 누워있던 그의 눈이 점점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이렇게 쉽사리 죽는 것도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대답하자, 그가 알아 들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의 영혼이 방안을 한바퀴 돌며 이것 저것 유심히 바라보다가 자그마한 책상앞에 멈추어섰다. 칠도 하지 않았지만 나뭇결 그대로 사람의 손때가 묻어 반짝거리는 앉은뱅이 책상이었다. 첫째가 이곳 서당을 졸업하던 해, 종가집에서 판자 몇장을 얻어다가 높이나 넓이를 그리고 가로 세로를 수십번이나 손가락으로 재어 보며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작은 책상이었다. 그가 일본으로 떠나던 날 넷째에게 물려주었던 것이었다.
그 책상과 한참이나 무슨 말을 주고 받더니 푸른 구슬같은 동그람한 빛으로 변해 방문을 빠져 나가 가을 햇볕이 작열하는 들을 지나 앞산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미끄러져 올라갔다.
그 뒷날부터 갑자기 이 마을 하늘 위로 비행기 소리가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일본비행기가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미국비행기가 날기도 했다.
비행기 몇대가 요란하게 날아다니더니 멀리서 폭음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마을 뒷산 너머 바다에 엄청나게 큰 쌀을 실은 일본배가 폭격으로 가라앉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썰물에 물이 빠지면 가라앉은 일본배의 깃봉이 바다 한가운데에 보인다고 했다.
그 며칠 후 물에 퉁퉁 부은 일본군인 시체 두구가 뒷모래장에 떠밀려 왔다고 했다. 그리고 한 철이 지난 후 해방이 되었다는 소문이 이곳 섬마을까지 들려왔다.

엊그제 갓 결혼한 셋째의 행동이 눈에 띄게 신중해졌고 밤 늦게까지도 집에 안들어 오기가 일쑤였다. 밤마실을 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도 어느 시간에나 밖을 나갈 수 있도록 출입옷을 그대로 입은 채 이불속으로 들어와 새댁을 껴 안았다.
그물일이나 논밭일 그리고 가사 일까지도 가장 부지런하던 그가 어느때부터인지 도무지 일에는 심드렁해지고 다른 세상에만 관심이 있는 듯 문득문득 생각속에만 골몰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은 한 밤이 되어 영축없이 뒷산 오듬치나무 있는 곳으로부터 부엉이 울음을 흉내낸 소리신호가 들리면 그림자처럼 새댁의 품을 빠져 나와 뒤안 큰 바위를 타고 뒷산으로 스며들었다.
어느날 밤 긴 총을 든 사내들이 막무가내로 들이닥쳐 일직선으로 빛을 쏘아대는 후라쉬를 이 방 저 방 휙휙 비추며 대청마루 밑에 숨어있던 셋째를 찾아 내어 끌고 갔다. 그 중에는 꼭두말영감이 알만한 멀게 조카뻘 되는 사내도 있었다.
“앙이, 이 사람아 말로 해야제, 우리 순둥이 셋째가 믄 사람죽인 죄를 진 것도 아닌디 인사가 믄 그런 인사가 있능가. 앙이, 이 사람아 선은 이렇고 후는 저렇다고 좋은 말로 해야 쓰제 이것이 믄 일이당가”
“오춘 비키시오. 오춘은 백날 설명해 디려도 몰라라우 안비키믄 오춘도 탈나요. 다 안면안면잉께 다른 식구들 안끌고 간 것도 다행으로 생각하시랑께라우”
“앙이, 이사람아 믄 말이 그런 인사가 다 있능가. 아따 이 사람아 어찌게 안 되것능강”
이 때 윗사람인 듯한 사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질렀다.
“저 영감탱이는 머시여, 저 영감탱이가 진득진득한 것 본께 저것도 가재편인 것 같은디 칵 모가지 땡겨서 같이 끗고 가버릿끄나”
그들이 셋째를 끌고 동구밖을 벗어나면서 술냄새 풍기는 한 사내가 총을 땅에 내려 놓고 길섶에 오줌을 깔기며 한마디 했다.
“앗따, 인자 한나만 더 잡으면 상부에서 할당된 몫을 자우당간 다 채우네. 이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니네 잉. 어이, 언동이 성님, 인자 누구를 잡어야 쓰것소 잉. 아이고 드럽게 춥네”
오줌줄기를 그치고 바지춤을 올리면서 진저리를 쳤다.
몇일 후 셋째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집으로 왔다.
온 몸이 싯푸른 멍으로 먹구렁이가 감고 있는 듯 했다.
꼭두말영감이 뒤안에서 대를 베어 마디발로 토막을 내어 똥통에 찔러 넣었다. 댓속 빈 공간에 맑은 똥물이 스며들어 그것을 사발에 받아서 셋째에게 억지로 먹였다.
“매로 골병든 디는 이것이 최고여, 이것 하루에 한 사발씩 세 사발만 묵으믄 다 나서불텐께 염리말어”
셋째는 한달만에 그 똥물 덕으로 일어나 지팡이에 지탱하여 겨우 대소변길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옆구리 한 쪽이 부어 올랐고 이어 그곳에 물이 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기를 석달 째, 앞도 뒤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했다.
눈에 띠게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새댁의 당목수건이 피로 흥건히 젖을 때까지 그의 입을 닦아 주어도 피는 좀체 그치지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새댁의 무릎에 기대고 반쯤 앉아 애써 눈의 공동이 풀리지 않도록 인상을 찡그렸다. 등잔불에 식구들의 어수선한 그림자가 자꾸만 흔들거렸다.
“아이구 내새끼야, 이것이 믄 일이끄나 믄 일이여. 이눔아 정신차려라, 죽으란 벱이 없다. 혹시 사자가 와서 가자고 하믄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절대 따라가지 마라 이늠아, 내 새끼야 눈에 촉기를 칵 세우고 이 고비만 넘기믄 너는 산다, 살어”
셋째는 그 어수선한 그림자들이 싫었다. 아버지의 웅얼거리는 울음소리도 싫었다.
힘겹게 눈을 돌려 천정 모서리들을 둘러 보았다. 아주 어린 날에 손 때깔이 좋은 첫째 형이 방패연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저 뒤안으로 나가는 문 위쪽 상보에 못을 하나 박아 그 곳에 연을 묶어 두었다. 그리고 보름날 동무들과 그 연을 떼어 내어 바닷가로 나가 날려 보냈는데 연을 걸어 두었던 그 못에 한 뼘 크기의 실 매듭이 아직도 매달려 있었다.
언제든 저 못을 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볼 때마다 저것이 마음에 거슬렸는데, 오늘도 그의 눈이 그 곳에 머물렀다. 평상에도 그것이 생각날 때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왜 오늘은 십수년도 넘게 거기 저렇게 매달려 있는 저 못의 실매듭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그가 가까스로 눈을 들어 나에게 물었다.
“잉 아름답고, 좋고, 귀중한 것이랑은 무엇이다요잉”
내가 대답하자 그가 맞장구치듯 눈거풀을 한번 더 치켜 뜨더니 새댁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고개가 꺾인 채 잠이 들고 그의 혼은 홀연히 방을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캄캄한 밤하늘로 걸어 올라갔다.
셋째와 나의 마지막 대화를 새댁은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아까 그가 눈거풀을 크게 치켜 들 때 새댁의 뱃속에서는 태아가 발을 굴려 힘껏 한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에게는 살아생전에 제일 힘든 일이 「태어남」과 「죽음」이다.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는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당연히 이 두 지점들이 연결되어야 세상은 아무 탈이 없고 우주는 태허(太虛)의 빈 여백을 남겨 놓는다.
  생(生)과 사(死)를 잇는 연결부가 끊어져 버릴 때 세상의 기운(氣)이 끊어져 크게 흔들린다. 이것을 사람들은 「난리」라고 한다.
  죽음(死) 다음 순환을 거쳐 생명(生)으로 연결되지 못하거나 생명이 죽음으로 그 일차적인 결말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남(生) 다음의 죽음(死)을 생각하기 싫어하고 죽음(死) 다음의 태어남(生)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한다.

셋째의 죽음 이후로 꼭두말영감의 뒤꼭지는 한층 풀이 죽어 있었다. 좋은 일에든 나쁜 일이든 먼저 욕을 내 질러대던 그 욕쟁이 꼭두말영감, 바깥 일은 물론 밭일 논일 그리고 며느리들의 부엌일까지도 일일이 간섭하던 그가 말수가 줄어들고 집 밖에 나가 마실 도는 시간보다는 집안에 꼿꼿이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둘째는 술에 취하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갔다.
둘째가 깊은 밤에 술에 취해 간혹 불에 덴 짐승처럼 어둠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어도 꼭두말영감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지상위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듯한 바람이었다. 때맞추어 들물이었던지 산만큼이나 큰 파도더미에 바닷가에 길게 누워 있는 둑이 터져 바닷물은 해일처럼 마을 앞 작은 들판까지 밀려 왔다. 산의 큰 나무들도 뿌리가 허옇게 까 뒤집혀 자빠지고 마을의 초가지붕들은 마치 까치집처럼 엉성하게 곤두섰다.
저너미마을 초입의 병산네 집은 더 이상 그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아예 주저 앉아 버렸다. 바람이 노도처럼 밀려 올 때마다 나도 기둥째 흔들렸다. 나의 초가지붕에 얽어놓은 낡은 새끼줄들이 바람에 일어서는 짚나람들을 버티어 주지 못해 끊어져 버리고 짚무더기들이 긴 광목 베처럼 풀려 날아가 버렸다.
그 날 둘째는 무서운 복장을 하고 도리깨를 든 놈들이 대문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꾸만 부른다며 사랑방 한 쪽 모서리에 머리를 처박고 덜덜 떨고 있었다.
“추워 추워, 저놈들이 또 왔구만 잉. 저놈들이 나를 못잡어 먹어서 환장들이구만 잉. 술좀 줘, 나는 술 안먹으면 죽것써 추워 죽것써”
둘째의 댁네가 독한 소주를 내 주었다.
“딱 한잔만 하쇼잉. 대문 밖에 아무것도 없어라우, 큰 바람소리제 누가 인우애비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당 말이요. 아무도 읎어라우, 아무도 읎당께라우.”
둘째가 소주병을 사발에 둘둘 딸면서 댁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라제, 내가 정신을 놓으면 절대 안되제. 성님하고 셋째도 이렇게 빨리 가부럿는디, 내가 정신 채려야제 응 알았네 알았어 나 절대 빨리 안죽을 것잉께 응”
독한 소주를 단숨에 한사발을 비운 다음 다시 한참이나 무릎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갑지가 불쑥 일어섰다. 그 눈에 광채가 언뜻 지나갔다.
“안되것네 내가 저놈들을 모두 쥑여버려야제. 저놈들을 쫓아버려야제, 저놈들이 저기 저 저놈들이 우리 집을 막 뿌술라고 쇠도리깨 들고 달려드네”
악을 쓰면서 마당으로 튀어나갔다. 댁네와 네째가 그의 손발을 틀어잡고 안정을 시키려 했으나 이미 그의 눈빛은 짐승과 같았고 다른 사람들이 더 달라붙어 그를 주저 앉히려 했으나 아무도 그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헛간에서 곡괭이 하나를 꼬나 들더니 쏜살같이 마당을 벗어나 바다물에 잠긴 들판을 가로 질러 내 달았다.
비가 그친 다음날 새벽 뒤안의 큰 바위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조용히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은 꼭두말영감이었다.
그런 일이 있던 후로 둘째는 훨씬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비바람 부는 날 밤에 어디를 다녀 왔느냐고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보름 후 그물 손질하러 간다고 둘째가 나섰다.
그 후로 둘째는 돌아 오지 않았다.
바닷가에 매어진 작은 그물배 안에 가지런히 개어 놓은 둘째의 겉옷 위에 고무신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소주를 반쯤 남겨 놓은 술잔이 마주하고 있었다.
둘째를 찾지 못하고 돌아 온 마을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그의 옷가지를 부여잡고 울부짓는 식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전에 자신이 가족을 이루었던 방에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반듯이 누워 보기도 하고 앉아 보기도 하더니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왜 이 방바닥이 자꾸만 기울어지는가?”
내가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자꾸만 몇 번이고 쓸어 보이더니 눈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식구들이 온통 울부짓고 있는 마루쪽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마당에 모여 이러저러한 대책을 논하는 마을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와 대문 밖에서 잠시 머무르는 듯 했다. 이내 바닷물 때문에 벌겋게 탄 논 위를 날 듯이 걸어 앞산을 넘었다.

바람과 비와 무지개, 밤 별빛의 반짝임과 풀벌레의 울음소리.
추녀끝에 둥지를 튼 작은 텃새들의 뒤척임, 구름과 안개, 새벽 마루 끝에 달린 이슬방울, 이 모두가 하늘을 형성하고 있는 기(氣)의 무늬들이다.
하늘과 땅이 이러한 작은 무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들 역시 어느 때인가는 해체될 날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나무기둥, 작은 널빤지 조각, 녹슬은 못, 흙벽과 작은 돌맹이들도 언젠가는 해체될 날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를 사람의 생각으로는 예측하지 못할 뿐, 사람들은 자신 외의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해체하는 것에서 만족과 풍요를 찾지만 자신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도 두려워한다.
그들이 사랑을 속삭일 때 서로의 몸으로 전달되는 상대방의 보이지 않은 율동을 즉시 읽어내는 것에는 너무 능숙하다. 새 옷을 갈아 입다가도 문득 거울에 비추이는 자신의 얼굴을 한 참이나 들여다보면서 그 동안 그들의 몸에 나타난 삶의 무늬들을 밀린 숙제를 하듯 한꺼번에 읽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 낸 숱한 세월동안의 무늬들, 역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그들은 애써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인 것들은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 무늬들도 결국은 허물어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탄생과 소멸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사람도 어느 날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하늘로 흩어질 것과 땅 속으로 스며들 것으로 각각 나뉘어지듯이.
나, 집도 결국 못이 삭고, 기둥과 보 사이의 연결부들이 점점 헐거워지고, 흙벽이 바스라져 내려 어느 때인가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나 스스로 해체될 것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뼈로서 나무기둥들, 살로서 흙벽들이 모두 땅으로 다시 스며들어 갈 것이다.

넷째가 객지에서 돌아와 결혼을 하여 이곳에 산 지도 벌써 이태가 흘렀다.
추석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마을 앞 좁은 들판도 살이 찌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도 몸짓이 커졌다. 바닷속의 모든 생물들도 몸짓을 불리고 있었다.
나 역시 풍요로움 속에 살이 찌고 그 가을의 기운에 한껏 윤기를 발하고 있는 때이다.
건넌방에서 저녁참부터 시작된 넷째 댁네의 진통이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의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부엌에서는 큰 솥에 물이 끓고 사람들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에게 탄생은 새로운 기쁨인 것이다.
꼭두말영감의 눈에 확실히 생기가 돌았다.
그 영감에게는 네 번째 아들손주였지만 자신의 아들 중 마지막 살아남은 막둥이의 손주라는 것에 혼자서 감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무엇인가 모든 일들이 잘 풀릴 것이라는 우연한 기대감도 그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이유였다.
어제 저녁 당신은 직접 산모방에 들어갈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건넌방 근처에 얼쩡거리기도 뭣하고 해서 안방에 앉아 태연한 척 건넌방의 사람들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댁네 할머니가 물 한 그릇과 쌀 한 그릇, 촛불을 올린 상을 대청, 안방, 마루, 부엌에 놓고 그 앞을 돌아가며 발원을 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건넌방에서 애기울음이 터져 나왔고 그 울음소리로 즉시 아들 손주임을 알아차렸다.
“하믄 하믄, 내가 폴세부터 아들인지 알았더만. 하믄, 꼭 아들이야사, 아들”
영감은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영감이 괜히 흥분되어 그 옛날 본세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모로 앉은 채로 쪽문을 열고 건넌방과 부엌을 분주하게 드나드는 사람들을 향해,
“머시냐 니미 시발놈들, 멋허까 대문에 금줄 쳐야제. 거 추석뒤로 굴바우에서 폴아 온 미역으로 국을 끓여야제, 머시냐 저 속아지 없는 것들 애기 목간물이 미적지근해야제, 저 짐나는 것 보믄 너무 뜨걸 것 같은디. 니미시발 것들이 목간물도 제대로 못 마치니 끌끌끌, 어야 인우애미야 삼신상에 새로 메 올려야제”
캄캄한 밤이라 건넌방 마루에 놓인 물대야의 김이 보일리도 없건만 영감은 괜히 신바람이 났다. 쪽문을 큰 소리가 나도록 닫고 나서 초조감이 풀린 탓인지 목침에 팔꿈치를 괘고 벽에 기대어 앉아 천장을 바라 보았다.
주름진 메마른 눈가에 오랜만에 뜨거운 것이 비쳤다. 코를 쿠르륵 삼키다가 일렁이는 등잔빛에 안방 벽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뒤안으로 통하는 장짓문이 유독 하얗다. 영감은 이 집으로 분가되어 둘째 아들을 낳던 날 밤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숱한 세월동안 숱한 일들이 생겨났다가 소멸되어 버린 것들을 잠깐 떠 올렸다. 그 숱한 생각들 한켠에 손주니할멈의 느릿한 동작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엥이, 지난 봄에 대청 뒤안 벽들이 좀 바스라지던디 그것도 흙을 버물러 고쳐야 쓰것고 사랑방 고래를 한 번쯤 손봐야 애기와 산모가 올 겨울 뜨뜻허게 지낼턴디. 내친김에 부엌 한쪽에 시렁도 하나 더 올려야 것는디, 그 참 오늘 애기가 나왔응게 앞으로 열 이레 동안은 집안의 흙일을 할 수가 없제, 아믄 그러다가 동티나믄 큰일이제, 킁”
꼭두말영감의 마음은 더욱 바쁘기만 하였다
마음이 바빠지는 것은 사람들 뿐만 아니다. 마치 사람들의 근육이 팽팽하게 이완과 수축을 하듯이 내 몸 안의 기운들이 곳곳에 긴장이 감돌며 새로 태어난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스스로 정화작용을 한다.
집안 어느 구석이나 그러한 기운들이 살아 생동하여 그 기운(氣)과 기운(氣)이 연결됨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에게는 그 기운(氣)이 보이지 않아 그저 손쉽게 신격으로 불리워지게 되고 자기네들의 특별한 날, 이를테면 명절날이나 제삿날, 그리고 오늘처럼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때나 이 기운들을 기억할 뿐이다.
소위 사람들이 가택신이라고 믿고 있는 성주신, 안방에 생명창조의 따스한 기운인 삼신, 부억을 돌고 있는 기운인 조왕, 변소에 거처하는 측신, 마당에도 평평한 기운이 돌아 노적지신이라고 불린다.
혼란하고 무질서한 자연계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의 생활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기운(氣)들이 서로 연결되어 「내」가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땅위에 안온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 삶으로써 그들의 삶이 축복받기를 기원한다.

그 날 꼭두말영감은 거의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기도 훨씬 전에 넷째와 잠이 덜 깨 눈도 제대로 못 뜨는 큰 손주들을 재촉해서 앞산 너머 바닷가 그물장으로 달려갔다.
해가 돋기 전에 마을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때 앞산 머물재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악쓰는 소리가 들리고 윗 옷을 벗어 다섯 번이나 큰 원을 그렸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대꾸를 않자 머물재에서 계속 악을 써 대며 허연 윗도리를 또다시 다섯 번이나 흔들었다.
“멋, 다섯바작이 더 필요하다니 바닷일이 크게 생겨부럿는 모양인디 워메 일 났네 일 났어”
마을 장정들 다섯명이 바작 지게를 메고 들판을 가로 질러 머물재를 넘어갔다.
한 참이 지난 다음 머물재에 지게를 맨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등 뒤의 짐이 무거운 듯이 비척대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바작지게만 여섯, 큰 메꼬리통이 둘. 흥분한 마을 사람들이 짐을 받아 주러 들판을 뛰어 갔다.
잠시후 사람들과 함께 지게가 마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금새 온 마을에 상큼한 생선 비릿내가 가득했다. 넓은 덕석 두 개를 맞대어 마당에 깔고 바작에 가득 채워진 생선들을 그 위에 부렸다. 아직도 살아서 풀쩍풀쩍 뛰는 생선도 있었다. 그것들의 하얗고 싱싱한 비늘이 사방으로 튀었다. 덕석 위에 산더미처럼 생선이 쌓였다. 꼭두말영감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퍼득이는 고기들 옆에 마치 장군처럼 서서 손을 내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앙이 앙이 머시냐 동네사람들 모두 한 집에 중메꼬리 하나씩 가득가득 담아 주고 거 머시냐 글피가 부언이성님네 제사니께 저그 따로 내 놓은 큰 숭어 댓마리 하고 서대너댓마리는 그 쪽으로 보내고, 그참 그참, 앙이 인우네 애미는 머 한다냐 동네사람들 나누어 주기 전에 저 큰 괴기들 골라내서 삼신상에 먼저 바쳐야제”
덕석 위에서 은빛 비늘을 뽐내며 뛰어오르는 고기들과 사람들의 흥분이 한꺼번에 뒤섞여졌다. 누군가 중메꼬리에 고기를 퍼 담으며 소리쳤다.
“거 그랑께 이십년도 더 전이것제. 그때 생골 덕패성님네가 그물장을 헐 때 그 때도 추석질이었는디 그 때 이렇게 산처럼 괴기들이 올라와 섰는디. 그라고 안, 그 새 명년에 대풍이 들었드만”
건넌 방에서 바로 어젯밤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조막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산모는 생선들의 싱싱한 비린 내음과 떠들썩한 마을 사람들 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던지 부끄러워 문은 열지 못하고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조금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마당을 바라보았다.
흥분한 사람들 다리 사이로 마당 한 가운데 생선들이 산처럼 쌓여 퍼득이며 막 동트는 햇빛에 반사되는 형형색색의  비늘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꼭두말영감은 이래저래 벌써 며칠씩이나 거푸 잠을 못 이루었다. 도무지 여러 가지 흥분이 가시지를 않았다.
“흠흠 저 손주놈은 내가 이름을 지어주어사 할 턴디. 여태 이름이 안 조아사 이 지랄이 됐응께 이번 참에는 진짜루 밍이 질긴 이름을 지어사제”
영감은 손주 이름을 위해서 마음을 청정하게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
묵은 벼루를 내어 자꾸 먹을 갈아보기도 하고 손주의 기빠진 날을 헤아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팔자를 수십번 셈도 하였다. 그리고 압다지에서 무슨 책인가를 내어 놓고 뒤적이면서 어쩌다 한참 동안 천정을 올려다 보기도 하였다.
“이름을 내처 지어 놓고 열이레가 지나면 흙일도 해야 할턴디. 그래사 산모랑 손주가 등 따숩게 올 엄동시안을 보낼턴디. 이참에 흙일할 때 돼지막도 한칸 더 달아 내서 명년부터는 새끼도 받아야사제”
때때로 손뒷짐을 하고 마을 뒤 선영들의 선산을 오르다가 나의 뒷모습을 내려다 보기도 했다.
“참 잘생겼는디. 뉘 집이 저렇게 계란같이 이쁜 지붕이 잇스끄나. 사랑방 앞 기둥하고 집 뒤에 뽀짝 붙은 큰 바위만 아니면 흠잡을 데가 읎는 집인디”
그리고 온 종일 먹과 벼루 앞에 앉아 끙끙거리며 손주 이름짓기에 골몰하였다. 영감은 요 몇일 잠을 통 이루지 못하였다. 손주 이름을 생각하며 앉아 있는 사이에 잠깐씩 정신이 놓일 떄가 있었다. 그때마다 언듯언듯 그가 나에게 물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제각각 이름이 있는 것인디 어쩌다가 기왕지사 그런 이름들을 갖게 되었으까라잉”
내가 대답할 때마다 영감에게 다시 정신이 돌아와 알아듣지 못하였다.
저녁밥을 짓기 전에 식구들 중 하나가 벽에 기대어 고요히 앉아 있는 꼭두말영감을 흔들어 깨웠으나 벌써 숨을 놓아 버린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 앞에는 벼루에 갈아 놓은 먹물이 아직도 푸른 기운을 잃지 않았고 한지 위에 더듬더듬 써 놓은 손주의 생일 숫자와 그리고 역(驛)자, 파(破)자가 둘, 잘 알 수 없는 글씨 몇 개가 서투른 그림처럼 씌어져 있었다.
그의 혼백이 빠져 나가 마루를 내려가면서 얼굴을 되돌려 나에게 물었다.
“시상에 이름이 얼매나 중요한 것인디. 그랑께 내 이름은 본시 무엇이었으까잉. 그러고 시상에 이름없는 것이 읎응께로 당신 이름은 머시라고 하요. 또 엊그제 시상에 나온 우리 손주 이름은 머시라고 지어야 쓰께라우”
내가 대답하자 잠깐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그 욕쟁이 영감의 입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떠 올리고 이내 마을 오른쪽 긴 밭 큰 골산을 향해 바람처럼 걸어갔다.
그리고 그해 겨울은 그날 마당에 산처럼 쌓였던 고기들의 반짝이는 비늘같은 하얀 눈이 유난히도 많이 내렸다.
새해의 풍요를 약속하는 눈이었다.

이 마을 얘들이 모두 그렇듯이 엊그제 태어난 아이도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고운 때가 묻혀지면서 키워졌다.
그 얘도 내 방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어린시절을 똑 그대로 닮아갔다.
부지런히 기어다니며 마루짝과 마루짝 사이에 켜켜이 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파 내거나 문살사이의 창호지들을 죄다 찢어놓았다.
마당으로 내려설 수 있을 때 몸을 엎드려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대청 아래를 지나 뒤안으로 빠지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고 벌통이 달린 건넌방 모서리 왼편 기둥 앞을 지날 때는 발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 된다는 것도 스스로 알게 되었다.
부엌 뒤편 시렁에는 언제나 감자라든가 개떡같은 간식거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루의 나뭇결이 그려낸 추상적인 무늬들에서 산과 구름, 소, 자동차, 돗단배, 오리, 닭, 기러기들의 형상도 찾아 낼 수 있었고 사랑방 문 앞 기둥 하나가 다른 기둥들과 달리 나뭇결의 모양과 색깔이 다르고 왼편이 약간 부족한 듯 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방에 누우면 먼저 천장에 양쪽으로 가지런히 뻗은 서까래의 숫자를 하나 둘 세다가, 이제는 둘 넷 여섯으로 셀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점점 대문을 벗어나 길가의 지렁이나 혹은 땅위에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밟아 으깨 죽이는 것을 장하게 여길 무렵 화창한 봄날 부모들과 육지로 떠났다.
그들이 육지로 훌쩍 떠난 이듬해 마을 앞 느티나무와 뒷산 그 중 큰 나무에 확성기가 매달리고 대숲의 바람, 새들의 날개짓 대신에 아침 저녁으로 우렁찬 노래소리가 전기 끓는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그 확성기에서 내 보내는 소리들에 의해 마을은 확실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똑같은 표정을 짓고, 똑같은 옷, 똑같은 웃음, 똑같은 말씨에 능숙해졌다. 윗길이나 아랫길, 고샅길, 모두 똑같이 시멘트로 덮어졌고 산의 나무들조차 똑같이 변했다. 아침과 저녁에 부는 바람, 봄과 가을이 서로 다를 바 없이 똑같은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도 똑같은 것을 똑같이 보고 똑같은 먹거리로 똑같은 상위에서 똑같이 먹었다.
잠자리의 이불도 모두 똑 같았다.
사람들은 똑같은 TV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보았다.
세월의 때가 곱게 묻어 더욱 멋이 들어간 반듯한 서까래나 그들 손때에 닳아서 기둥이나 마루결이 갖는 더욱 도드라지는 아름다운 세월의 무늬, 그리고 빛 바랜 창호지문의 크고 작은 문살들도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관심이 되지 못했다.
비닐장판이 깔린 뒤부터 방바닥은 아예 숨조차 쉬지 못했다.

둘째의 아들 인우가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작년에 수리했다던 저너미마을 만식이네 집을 휘둘러 본 다음 이 집을 개량할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아침 경운기가 시멘트포대들과 자 보다 더 반듯하고 눈부시게 하얀 목재들, 사기그릇 보다 더 미끈한 슬레이트들을 마당 한 켠에 부렸다.
사람들에 의해 방안의 가구들이 차근차근 마당 한 켠으로 쟁여지고 지붕의 짚나람들이 벗겨져 내동이쳐졌다.
내 처마속에 수 십년 동안 둥지를 틀었던 참새나 박새들은 벌써 이런 일을 눈치 챘는지 이번 봄부터 아예 둥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 후였다.
손가락보다 더 두꺼운 철심이 기둥마다 매어지고 보에서 바닥까지 철대롱으로 된 임시기둥이 설치되어 내 기둥을 깔보는 듯이 모로 내려다 보았다. 그 다음날 방이며 대청들이 모두 뜯기고 그들은 난폭하게 기둥만 남긴 채 벽을 허물었다. 나는 보와 서까래 그리고 기둥만 남기고 모두 털렸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요란한 굉음 소리를 내는 기계톱에 의해 기둥의 중간이 모두 잘려지자 나의 몸이 구름 위에 올려진 듯 위태로웠다.
내 몸 사방에 받쳐진 묘한 기계들이 힘을 쓰자 각각 잘려진 기둥들 윗 쪽이 한꺼번에 들려 공중으로 한 자 정도 올라갔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손이 몹시 거친 목수들이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하얀 목재를 그 사이사이에 넣어 이은 다음 굵은 볼트 나사로 각 기둥의 이음매를 죄었다. 그렇게 나의 키가 약 한 자 정도 높아졌다.
그리고 마루 끝에서 처마까지 유리 밀창문이 세워져 매끈한 나의 처마 서까래는 끝둥만 조금 내보일 뿐이지 모두 유리창문 안으로 갇혀 버렸다. 방들도 앞 창문만 남긴 채 뒷문이나 부엌, 대청으로 통하는 문들은 새로운 문으로 교체되었고 방바닥은 파이프를 구불구불 깔더니 시멘트로 덮어졌다. 각각 벽면들도 모두 시멘트로 때워졌다.
부엌은 아궁이도 없이 방 높이만큼 흙이 돋우어져 마찬가지로 시멘트가 칠해졌고 싱크대라는 새로운 설거지통 가구가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붕에는 슬레이트가 씌어졌다. 헌 가구들도 모두 불에 태워졌고 색깔이 번쩍번쩍한 가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각기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마을사람들이 들며 날며 구경와서 저너미 만식이네 집보다 훨씬 멋있게 수리되었다고 칭찬했지만 나는 아직도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도 없었고 우선 황당한 생각에 부끄러울 뿐이었다. 합바지에 코 날람한 구두를 신고 중절모를 걸친 격이 되었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도 나 같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 이듬해 마을 어귀에 「군 지정 우수개량 마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이 놓이게 된 날 높은 양반들이 거드름 피우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자기네들끼리 수근수근 대더니 잠시 후 사람들이 몰려와 「새마을 지정 모범 개량가옥」이라는 글씨가 반듯하게 새겨진 하얀 명패를 기둥에 대고 못을 쳤다.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 댔다.
그 날 느티나무 아래 큰 잔치판이 벌어졌고 나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이 후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것처럼 치루었던 그런 잔치들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하나 둘 이 섬을 떠났다.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 울음소리를 요 몇 년 동안 통 들어보지 못했다. 젊은이들이 먼저 떠나더니 몇 년 후에는 늙은이들도 젊은이들을 찾아 육지로 떠났다.
이너미 마을에만도 30여가구 중 겨우 10여가구만 사람들이 드나들 뿐 나머지는 모두 폐가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새들도 찾아 들지 않는다.
벌써 훌쩍 커버린 인우의 자식들도 모두 떠나고 첫째만 남아 농사일을 거들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듯 밤새 다른 꿍꿍이속을 돌리고 있었다. 읍내 백합다방 미스김의 하얀 허벅지가 그리워 자꾸만 잠을 뒤척이는 것일까. 엎드린 채로 손을 꼼지락거리며 논, 밭, 산을 팔면 얼마나 될까. 대처에 나가 전세돈이라도 될까. 아들의 머리속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나도 스러져갈 차례인가 보다. 이제 모두 떠날 차례인가 보다.  스산한 바람이 내 밋밋한 슬레이트 지붕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이제 하나 둘 정리하며 스러져갈 준비를 마음 단단히 하고 있던 차에 육지, 아득하게 먼 육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한 자락 바람을 타고 나에게 전달되었다.
어두운 밤바다를 지나 그 길게 이어져 있는 바람줄기를 타고 내가 태어나서 가장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육지의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연봉을 지나 한도 끝도 없이 그 바람줄기는 이어져 있고 시멘트로 지어진 사각형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들, 한밤중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하늘을 지나 변두리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과 건물들 사이 어느 골목 반쯤 지하로 파 묻혀진 침침하고 습기 찬 시멘트 네모 반듯한 너른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형광등이 파르스름한 불빛으로 천장에 몇 개 달라 붙어있고 이 벽 저 벽에 울긋불긋한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낡은 의자들과 오래된 토기 몇 개, 기억도 까마득하다, 저 조그마한 책상은 분명히 수십 년 전 나의 사랑방 한 켠에 놓여져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부엌문 건너 장독에 놓여있던 옹기 오가리들 중 낯익은 것들 몇 개가 다정하게 서로 볼을 비비고 있었다. 다른 한쪽 벽에는 그림들이 가지런하게 기대어 있었는데 대부분 무엇을 그린 것인지 잘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실내 한가운데 중년의 한 남자가 촛불, 작은 술병하나, 과일 몇 개, 달디단 쥐포 몇 장으로 초라한 상을 차려 어떤 그림 앞에 놓고 마주앉아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그가 그의 아들과 함께 나의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갔던 것이다. 그 때 그는 마당과 뒤안을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그  동안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찡그리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기둥이나 천장 서까래, 그리고 부엌 뒷문참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금방 얼굴이 온화해졌다. 그렇게 하루 내내 나의 이곳저곳을 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였다.
그가 바로 꼭두말영감이 죽기 며칠 전 저 건넌방에서 태어났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중년이 되는 나이에 그렇게 나를 찾았고, 오늘 그가 사는 곳으로 나를 부른 것이다.
그가 한참이나 상 뒤에 놓여진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까마득히 기억을 놓치고 있었던, 바로 지금의 내가 세워지기 이전의 흙담집으로 앉아있었던 그 조그마한 터에 공손하게 귄 있는 집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또 다른 나를 본 듯했다. 큰 붓의 재빠른 움직임 속에 세월의 숱한 회한이나 그 집의 기운이 맥박으로 전달되었고, 그 맥박의 리듬은 내 심장의 리듬과 꼭 닮아 있었다.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술병을 기울여 잔에 술을 따르고 나에게 권하듯 상에 내려 놓았다.
이렇게 술을 받아 본 지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단숨에 들이켰다. 금방 술이 온 몸에 퍼지면서 이제는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나의 몸, 시멘트로 때워지고 기둥 사이에 이물질이 박힌 것처럼 여기저기 쇠토막 같은 철못으로 겨우 세월의 이음새를 잡아 매 놓은 상처받은 곳곳으로 새롭게 피와 기운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상위에 놓인 술잔을 들어 반쯤 목을 축이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이제, 나는 집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을까.”
내가 대답을 했으나 그는 알아듣지 못했는지 술잔에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술 한잔을 따라 상위에 올려 놓았다.
그 때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와 어린애가 그 술잔 위를 지나 그림속의 집 앞에 잠시 서서 우리를 뒤돌아 보았다. 상 위에 켜진 촛불이 심하게 흔들리다가 다시 가까스로 불꽃을 돋우어 내 그들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아! 손주니할멈과 그 모자란 손주 상연이가 푸른 옥빛 도는 하얀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우리에게 빙긋 미소를 던지며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아진 후 그 그림 주위에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다시 바람 줄기를 따라 이너미 마을로 되돌아왔다.
내 몸에 헐겁게 붙어 남의 살처럼 여겼던 시멘트 쪼가리들이나 기둥 중간마다 새로 끼워져 항상 낯설기만 한 허연 목재 토막 그리고 방바닥 밑을 돌고 있는 파이프들도 다름 아닌 내 몸의 확실한 일부였다.
내 몸이 있기 전에 나무나 흙이 있었고 나무가 있기 전에 한 생명(生)이 있었고 그 생명이 있기 전에 기운(氣)이 있었고 기운이 있기 전에는 태허(太虛)만이 존재했다.

죽음이란 본래의 고향인 태허속으로 되돌아 가는 일이다.
이제 사람들이 떠나고 내 몸의 모든 것이 다하여 허물어지면 다시 태허속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단지 그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질 뿐이다.
사람들의 세월은 그렇게 또 흘러갔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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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집에 관한 명상(4) - '내 안의 사람'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1:19
조회수: 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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