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다음의 글은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에 관한 공청회에서 발표 할 발제문입니다.
공청회장소와 일시는 내일 오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입니다.

민주열사묘역과 예술적형상화의 과제

  -저항과 명상이 함께 숨쉬는 땅을 위하여-
    홍성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은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의 여러 가지 일중에 하나 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묘역조성사업이 다른 중요한 기념사업들을 간과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 묘역조성사업은 여타 기념사업의 맨 마지막 과정에 놓여 있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숱하게 많은 민주인사들이 죽음보다도 더 혹독한 고문과 감옥에 들어 있었으며 그들은 그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 의해 지금까지도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가사업으로 되어 진행중인 '국가기념사업 및 추모사업지원분과 위원회'라는 단위가 현재 '보상'과
'명예회복'에 관한 심의에서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것 역시 법과 제도의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
진행되고 있는지부터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한꺼번에 모두 해결되어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말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이 유가족들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약400여일의 피말리는 연좌시위의 고통의 대가, 쟁취의 결과이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숨져간 열사분들과
그 유가족의 숙원사업으로 먼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은 여타기념사업의 진행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시대의 일정한 '해원'의 제의로써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보다 명확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민주화의 도정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 민주화의 진행과 일정 안에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이 위치해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요컨대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은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이 묘역조성사업은 현재 어설프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단위의 기념사업의 방향을 올곧게
만들어 가는 원동력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며, 열사분들의 안장을 빌어 그 분들이 살아생전에 추구했던
미래세상에 대한 대안이 지금도 진행중에 있는 민주화운동의 귀결점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한국민주화운동의 고통스러울 도정은 필설로 다 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우리사회가
감내해야 할 고통은 물론, 지난시기에 민주열사들의 숱한 죽음과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감옥으로 향하는
행진은 우리사회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분단이라는 모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 남과 북이
화해의 길로 가고 있으되 이 길이 순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우리시대의 민주화운동은
민족의 통일까지 계속되어야 하고, 통일 이후에도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이 해소 될 때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묘역조성사업이 이처럼 지속적인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연장선상에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유감스럽게도 과학을 동반하는 '글'과 '운동력'으로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데 역부족이다. 더구나 이해 할
당사자가 그것에 상당하는 지식의 습득이 있어야 또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적 상상력은 그 일을
효과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다. 특히 시각언어는 그 이해가능한 영역을 훨씬 넓혀나갈 수 있고 그 내용을
정서적 접근뿐만 아니라 심화시킬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민주묘역조성사업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각적
형상화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운동' 혹은 정리되어진 '글'의 역할과는 다른 시각적 형상화가
갖는 특별한 강점이다.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 앞에는 무엇보다도
그 예술적 형상화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4. 민주열사묘역은 한국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체험하는 학습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친근한 공원의 역할과 함께, 한국민주화운동의 고난에 찬 역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 구성이 되어야 한다. 즉 다시말해서 역사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교육이라는 것을 '훈장적 교만한 가르침'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이곳에서는 책이나 학문을 통해서 교육의 장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의 소리없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술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성공을 거둔 조형물이라 할 지라도 열사들이 묻혀있는 묘지나 묘비명의 형상을 뛰어넘는 감동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흔히 조경설계자나 조형물을 창작하는 예술가가 역사와 자연 앞에서 겸허한 기본적 태도를 갖지 않고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은 이곳에서는 허위일 뿐이며 모두 쓰레기 보다 못한 시설물이 될 것이다.
모든 조경과 조형물은  '죽은 자와 산 자들이 同感 '하는 것을 돕는 것을 철저하게 보조하는 차원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인위적 시설물이 과도하게 자기설명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과도한 설명은 역사적 해후,  '同感'을 억제시키고 방해 할 뿐이다. '同感' 은 극히 자연스러움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럴 때 만이 열사들이 걸어 온 여정을 살아남은 우리들이 곧 자기자신의 역사로써 감동스럽게 품어 안게 될 것이다.

5. 묘역 안의 모든 조형물과 시설물은 절제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과도한 설명'은 오히려 '同感'을 방해한다고 했다.
이러한 기본 전제 아래 조형물과 시설물이 배치되어야 하며, 그것들은 철저하게 자연환경에 조응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사들이 우리시대의 올곧은 진보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의 구현을 위해, 한목숨을 불살랐다면 그들이 묻힐 땅도 가장 진보적인 개념의 조경과 시설물의 설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 조경이 자연 그대로를 이용한 개념을 갖듯이 오늘날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시설물들의 가장 진보적 형태가 환경에 순응하고 친화하는 생태적 환경을 구축하는 시스템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의 최고, 혹은 동양에서 최초라는 이러한 구호에 익숙해 왔다. 그러한 양적이고 물질적인 최선을 추구하는 이면에 정신적 내용적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허위와 허구야말로 우리 민주화운동이 그동안 맞서 싸웠던 상대가 아니었던가.

조형물의 크기와 높이, 그 웅장함만으로 주는 감동은 절대 오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전제군주나 파쇼체제 아래서 국민의 감정을 동원하는 수단에 다름아니다.
유신독재체제와 신군부체제에서 만들어진 각종 메모리얼시스템의 의 예를 들면
그것들이 얼마나 그 허위성을 드러내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조형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상승하고 있으며, 시설물들 역시 빈약한 내용 대신에 산처럼 웅장한 빈 껍데기뿐이다.
열사들의 죽음이 자신의 신분을 상승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민주열사묘역에 안치되는 그 어떤 조형물도 수직적으로 상승을 하는 형태를 꼭 고집 할 필요는 없다. 이것도 남근신앙의 한 속물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민주열사묘역의 모든 조형물은 전승기념물戰勝記念物이 아니다.
파시즘은 자신의 오만한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 조국을 위해 숨져간 이들의 시신 마져도 권력의 무대위에 조연으로 출연시킨다. 그들에게는 기념비 든 추모비 든, 심지어 죽은 자의 시신 까지도 그들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기 위한 '전리품'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원'들에서 '죽은 자'들이 마치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토산품' 처럼 변해 버린 것을 여러 경우에서 익히 보았다. 이러한 예는 그동안 국내의 민주화와 관련된 메모리얼시스템에도 습관처럼 적용되어 졌다. 오랜기간 동안 파시즘과 싸우던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그 파시즘을 어느덧 닮아 가고 있는 사실을 이러한 것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형상적 표현이 새롭게 조성될 민주열사묘역에 한부분이라도 적용된다면 그것이  결국 거꾸로 우리의 민주화운동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공청회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비극을 막자는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묘역조성사업은 한국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 합의한다면 그 조형물들이 갖는 형상성도 역시 민주화의 도정 속에 존재 할 때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민주열사묘역조성이 '사업'에서 '운동'으로 발상적 전환을 해야 하는 가장 큰이유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공간구성에도 파시즘의 망령은 투사되고 있다.
그간 국내에 만들어진 메모리얼시스템의 공간구성은 천편일률적이다. 이를테면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관상용의 넓은 잔디밭에 그럴싸한 소나무가 한 두그루 외롭게 서있는 형국이다.
공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심의 이동경로는 개선문을 통과 할 것처럼 일직선을 이루어 수직으로 한껏 치솟은 기념조형물이나 추모조형물을 향해 뻗어 있고
중간에 있는 넓은 광장은 '민주적 공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제국주의적 종속을 강요받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자기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명상체계는 이미 불가능하다.
역사는 자기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적 사실은 학문 속에 있는 것이고, 묘역이 주는 시각체험이란 '감성적 추상체계'로 다가 올 때 감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묘역에 배치되는 조형물이 갖아야 할 형상성인 것이다. 이러한 감동을 우리는 '예술적상상력'이라 한다.

파시즘적 기념공간에서 전통의 문화적 계승 문제도, 역시 민족문화의 해석을 배타적 민족주의로 귀결시킨다.
민족주의라는 의식이 가장 못난 형태의 형상화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간의 전체형태와는 상관없이 그곳에 배치되는 시설건축물의 외관이 기어코 기와지붕양식의 한옥생김새를 빼어 닯아야 하고, 휴식공간의 야외 그늘막은 조선시대 정자모양을 그대로 복사하듯 시멘트로 축조한다.
심지어 주차장의 화장실까지도 계통조차 없는 한옥양식의 사랑채로 착각하도록
굳이 애쓰는 짓은 저급한 관광문화적 발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토양이 극우보수주의가 향수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파시즘적 발상은 민족문화의 계승이라는 차원을 복고적 퇴영의 형상화로 떨어 뜨리게 한다. 내용이 빠진 민족문화의 어설픈 계승은 이런식으로 파시즘에 봉사하게 된다.
전통문화의 계승은 가장 전위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적 형상이 드러나야 하며 그 형상속에 오늘을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의 결이 함께 아로 새겨 있어야 할 것이다. 형상적으로 보자면 전통문화의 계승에 관한 현재적 의미는 '결' 즉, 무늬라고 한다면 이 무늬로 그려질 내용은 오늘날 무수한 익명들의 일상적 삶에 대한 자상한 애정으로써 '숨' 이라고 표현 할 수 있겠다. 이 두가지가 합하여 역사의 '숨결'을 이룬다. 이 '숨결'이 비로소 문화로써 드러난다.
그런점에서 민주열사묘역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민주적 문화'의 전형을 올바르게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묘역안의 모든 시설물들은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파시즘적 기념공간에 포치된 시설물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업적을 과대포장하기 위해 설치된것이라서 활용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이미 지적했듯이 포장만 그럴싸한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민주열사묘역의 시설물은 이미 기본계획단계에서부터 활용도에 대한 철저한 시물레이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유기적으로 접목되고 활용되는 방안이 연구되어야 하며,
시민들 스스로가 그곳을 필요로 하여 찾아 오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가져와서 이 시설물들을 이용하여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있도록 시설물의 여러 시스템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전시관,기념관,공연장,각종 회의장등이 실제로 시민들의 생활속에서 적극 활용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이곳 '죽은자'의 공간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채워 나가는 것이 되어야 열사들의 현재적의미가 언제나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사위주의 시설물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수련장 형식의 일상생활의 장도 적극 생각해 볼 만 하다.

7. 민주열사묘역조성사업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제의祭儀 로써 그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열사묘역은 당사자분들이 되시는 열사들에게 바치는 祭儀 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고난에 찬 지난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거슬러 상생의 뜻으로 함께 살아온 모든 익명의 무수한 동시대 민중들에게 바치는 祭儀 의 처소로써 의미가 더욱 크다.
이 묘역사업은 꼭 죽은 자들의 영면을 위해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동시대인들로써 살아남은 우리들이 바로 우리와 함께 행진했던 지난한 민주화운동의 족적을 죽은자의 형편을 빌어서 새기는 것이요, 그리고 우리시대 스스로가 국민들과 함께 위로 받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열사들이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위로 받아 영면하는 장소이기  이전에 오히려 삶에 지치고 절망한 수많은 민중들이 찾아와 열사들로부터 위로 받고 힘을 얻어 다시 세상의 살림살이로 나가게 되는 적극적인 의미로써 祭儀가 이루어지는 땅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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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항과 명상이 함께 숨쉬는 땅을 위하여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4:04
조회수: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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