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이 글은 '21세기 광주발전협의회'에서
광주비엔날레에 관한 글을 청탁해 와서 쓴 글입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문화적 '재앙'인가
                
  홍성담

1. 하면, 된다.

우리는 광주비엔날레를 추진 할 당시에 얽힌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다.
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앞두고 그 추진을 하던 중요 지도부격인 사람들이 '비엔날레'라는 뜻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모르고 일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일을 진행하면서
"아! 그게 2년에 한번씩 세계 유수 미술인들을 데려다가 미술전람회를 하는 것이 비엔날레라고 하는구나. 그렇지! 광주가 과연 어떤 곳인가. 이곳이 세계적 의향이고 예향이 아니던가, 그런 것을 해볼 만 한 곳이지."
그리고 그들은 시장골목 좌판의 나물장수가 하듯이 주먹구구식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이렇게 계획대로 판을 벌려 놓으면 우선 입장객이 0000명이니
곱하기 얼마하면 얼마얼마가 들어오고,
하다하다 않되면 초등학생부터 중 고등학생들 단체관람을 시키면 광주전남도내에 학생머릿수가 얼마이니 곱하기 얼마해서 얼마얼마가 되니 조~ㅎ~타!, 본전 뽑고도 대략 얼마가 남으니 이건 분명히 남는 장사에다가, 고급스러운 예술을 갖고 세계적 행사로 놀아 본다는 것이 더해져서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일이 아니던가. 졸부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꼭 그렇다.
이러한 계산아래 광주시민에 대한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개발독재 아래서 봄직한 미술의 '새마을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으로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출범을 했다. 6개월이라는 그 짧은 준비기간으로 광주시민과 비엔날레 관계자들, 광주시공무원들의 '헝그리 정신'이 제1회 전시회의 오프닝을 그럴싸하게 치루어 냈던 것이다. 역시 광주는 위대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크고 작은 행사들이 모두 그렇듯이
비엔날레라고 다르랴.
여기에도 파시즘의 망령이 정확하게 투사되고 있었다.
질적인 것보다는 '량'적인 것에 모두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행사가 모름지기 세계적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세계 유명작가들이 참여하느냐, 또는 몇 개국에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출품하는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 오는가 가 관건이었다.
파시즘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언제나 세계에서 '최초' '최고'라고 선전해야 한다. 그들은 숫자로 측량되는 것에만 관심을 표명한다.
이 행사의 정체성의 문제라든가, 내용을 말하는 '질'적인 문제는 모두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그리고 이 '숫자의 마술'이 실제 행사의 주인인 시민들을 바보로 만든다.
제기럴! 그렇게 광주비엔날레의 재앙은 시작되었다.
당시 김영삼씨가 샴페인을 따면서 외쳤던 세계화와 국제화라는 구호에 '학~실하게' 화답해준 국내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이 비엔날레였다.
그리고 이러한 파시즘적 행사가 끝난 다음에 항상 그렇듯이
그들, '비엔날레'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 일을 추진했던 군인정신에 충만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각종 훈장과 포상이 수여되었다.


2. 옷을 벗고 거울앞에 서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진행되는 동안 망월동 518묘역에서는
'안티 비엔날레'가 열렸다. 이 '안티'라는 단어는 단지 '반대'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일의 과정으로나 목적으로나 이것은 분명히 본 사안에 대한 변증법적인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하는 철학적인 뜻이 있다. 그러나 본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수없이 문을 두드렸으나 결국에 소외되자 분통이 터진 나머지 이 '안티'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 위에 짊어진 것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 왜냐면 애초에 광주비엔날레 추진을 시작했던 당사자 중의 한사람이며, 진행중인 광주비엔날레의 최고위직 임원을 맡고 있는 그가 이 '안티'의 고달픈 역할을 스스로 떠 맡았다는 것이다.
'안티'를 하면서도 광주비엔날레의 그 '고위직'에서 퇴출 되거나 혹은 스스로 사퇴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모순을 지적하기를 애써서 피하고 있었다.
대단한 처세술에 중용의 도가 함께 넘치는 멋있는 파이팅 이었다.
'안티'라는 변증법의 과학이 이곳 우리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놀라운 사실을 모두 목격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안티'라고! 이 비슷한 말만 나오면 그것이 모두 옳은 것으로 판단하는 민중미술진영의 단세포적인 뇌가 일시에 작동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들이 518묘역 이곳저곳에 마치 빨랫줄에 걸린 철지난 헌옷처럼 나부꼈다. 어떤 면에서 그 순수한 열정들이 어느 한사람의 천박한 권력욕망이 가득한 시커먼 가마솥을 끓이기 위해 불쏘시개가 되었다.
망월동 518묘역에 잠들어 있는 시신들 곁에서 아우성치는 연출에 의해 그 욕망의 얼굴은 잠시 '운동성'으로 분장이 될 수 있었다.  
미술에서도 권력의 욕망은 여지없이 돋아나 빛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어찌 그것뿐인가.
1회 비엔날레가 끝나고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안티'의 당사자가 2회 비엔날레의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보니 '변증법'의 진행순서가 묘하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이것은 우리 한국사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널 뛰듯 하는 역동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를테면 3당합당을 통해 최고의 권력을 거머쥔다거나,
전혀 이질적인 당과 합하여 공동정권을 만든다거나 하는, 아무튼 이러한 한국사회의 천박한 정치성을 그대로 여과 없이 우리 미술인들이 본 받은 일로 기록될 만 할 것이다.
'테제'에서 '안티'로, 그리고 '진테제'로....
우리는 제2회 광주비엔날레가 '진테제'의 역할과 내용이 되어주기를 기원하면서 이 욕망의 잔치를 지켜 볼 도리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2회 비엔날레의 전시기획책임자는 이 미술 축제판에 끼어든 '촌스런 권력의 욕망'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에
일정하게 성공(?)하면서 2회 전시회를 비교적 깔끔하게 조직했다.
그러한 대가로 그는 전시회가 끝난 즉시 불경죄(?)를 물어 결과보고도 생략 당한 채 스스로 사표를 내는 형식으로 쫓겨나야 했다.
2회 전시회의 외관적인 성공(?)은 지난 전시회의 경험이 일정하게 작용한 탓도 있었겠지만,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소위 세계미술무대를 실제로 체험한  2세대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를 통해서 이 2세대들의 힘찬 출발이 약속 되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복'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화'가 따르는 법!
이 2세대들의 전면적인 대두는 겉으로 보기에 한국미술문화의 발전을 만개 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미술은 오히려 더욱 헐벗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창작'과 '비평'이 아니라 전시기획자로써 모두 소매를 둥둥 걷어 부치고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치단체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베풀어 대는 지역축제 안에 각종전시회의 봇물이 터지고, 또한 대통령까지 나서서 새로운 세기는 문화의 세기니  뭐니 떠들어대며 스스로 문화대통령이라 일컫기도 하면서, 이 미친 바람이 창작을 하거나 비평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전시기획자, 즉 '전시회 거간꾼'으로 발벗고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미술은 '기획의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창작이나 비평문화의 조건과 환경은 열악해 질 수밖에 없었다.

동양사상의 기본적인 밑천을 전시주제로 내건 2회 비엔날레는 기본적으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컨셉을 갖고 있었다.
'동도'를 서양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깔끔한 형식에 담아서 세계화 속에 보편적 장을 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문화는 '형상'을 바탕으로 내용의 감동을 잡아가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컨셉 이었다. 즉 다시 말하자면 '내용'에는 '형상'의 문제를 때에 따라 생략한 채 넘어 갈 수도 있지만 '형상'에는 이미 '내용'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화'가 갖고 있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간과해버린 것이다.
西器를 주장할 때 곧바로 문화적 종속의 문제가 제기된다는 사실이 2회 전시회 이후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는 것에서 증명되고 있다.
'동도서기'는 이미 동서의 교통로가 활발해지기 직전 무렵에나
필요한 전략이었다. 이를테면 제국들에게 우리의 아쉬운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서들인 공자, 노자나 장자, 불교서적들, 하물며 샤마니즘에 대한 연구서적들도 모두 서양에서 리메이크한 것들이 우리들 서고에 판치고 있지 않은가. 엊그제 티브이에서 '공자'를 논하던 김용옥이 중도하차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실책도 '동도서기'라는 코드에 있다. 이제 '동도서기'는 문화적 엔터테이먼트의 역할쯤에 있거나 한량없는 에피소드의 나열이 될 뿐, 이것이 진정한 감동을 갖는 '문화'의 범주 안에 들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다.
즉 동도서기는 우리의 내용을 서양사람들이 만든 형식에 담는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형식 다시 말해서 그릇을 빌린다는 의미이다. 서양이 구축한 문화적 양식을 빌린다는 말이다.
아직도 문화적 야만의 시대를 못 벗어난 우리들도 우리의 이야기를 당신들 입맛에 맞추어 당신들의 그릇으로 포장할 줄 아니까 보시고 감동하시어 우리를 인정해 달라는 가증스러운 태도다.
이제 우리도 제발 이러한 주접기를 버릴 때도 되었다.
서양에서 해오는 짓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종종 성공여부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흉내'는 주인의 것으로 역할을 할 수 없다. '흉내'는 '손님'의 자리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2회 전시회는 깔끔한 서양옷의 패션으로만 갈아입은 채  자신이 종국에 찾아야 할 정체성에는 넋을 놓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전시회는 비교적 성공했으면서도 그 성과가 우리의 미술문화에는 아무런 축적도 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러한 점들 때문이었다.
역시 가장 크고 직접적인 이유는 항상 '사람'의 일로 전화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희망이 되기도 하겠거니와 더불어 종국에 문제는 꼭 사람 탓으로 되돌려 받는 다는 것이다.
우리시대 한국현대사의 한 복판에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기라는 거대한 변혁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때 우리는 한반도가 갖고 있는 모순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민족이나 분단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함의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으며, 이 체험은 예술가들에게 단지 이론이 아니라 추상화된 형상으로 육화되고 있었을 터이다.
그 '2세대'들이 자의든 타의든 저 변혁의 시기를 피하여 대부분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미술을 엔터테인먼트化하는 그들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이후 '정체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 되었으나, 이 문제만큼은 아무도 대신해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담론으로써 승격시키는 일에 광주 스스로는 절대 역부족이었다. 광주현지에 현대미술이 이식된 이후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고민해 온 창작자나 비평가도 없을 뿐만 아니라,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절대절명의 단순한 공식만으로 모든 것에 적용시켜 일을 풀어나갔던 것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습관화된 광주의 지역정서는 정교하고 복잡한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정체성'의 화두는 차기전시회 책임자나 기획자에게 떠넘겨 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 몸속에 든 질병을 당신이 대신 앓고 나서 나아 주시오!"라는 이 비극적인 권유를 할 수밖에 없는 광주의 부족한 현실역량은 이제 광주비엔날레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재앙으로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광주는 허장성세를 버리고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한다. 예술과 문화는 자신의 모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겸허하게, 시속말로 빤스 까지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메마르고 헐거워진 저 못난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무슨 예향이라고? 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리고 속은 곪을 대로 곪아터진 우리의 불쌍한 육신을 떳떳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를 갖아야 한다.
광주에 제대로 된 컬렉션 역할을 자임하는 단 한 개의 기업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미학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컬렉터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이름을 이곳에서 자랑해 보자!!
그 동안 예향이랍시고 이곳 대학의 각종 예술관련학과의 교육을 위해서 범시민적이든지 뻘정부적이든지 적당한 지원이 단 한 건이라도 있었다면 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광주가 예향이라는 자존심이 있다면  사설미술관은 언감생심이고 시립미술관에 다른 어느 지자체 보다도 예산편성을 많이 배정했다는 그 비슷한 어떤 통계라도 이곳에 제시한다면 나는 큰절 만배로 그 사실을 보답하겠다.
광주현지의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작업하고 있는 지역작가들에게 실제적인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광주지자체가 노력한 일이 단 한 건이라도 있다면 여기서 자랑스럽게 밝혀다오.
그 따위를 어떻게 예향이라고 우리가 이름 할 수 있는가.
예향? 얼어죽을 이름이여!
그 이름을 속절없이 부르다가 광주는 비엔날레라는 재앙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 이름값을 위하여 광주는 비엔날레라는 행사를 매번 치룰 때마다 여러 유형무형의 비용을 100억원씩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젠장할!!
그러나 이제사 돈이 부족하다거나 아깝다고 하여 비엔날레를 쓰레기 통 속에 던져 버릴 수도 없다. 이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문화적 재앙 앞에서 양식있는 책임자라면 답답한 가슴과 복잡한 머리가 서로 꼬아져서 살아남기 힘들어야 정상이다.
상황이 복잡해져서 가닥이 잡히지 않고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어 갈 때는 언제나 '초심'으로 되돌아가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초심, 初心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비엔날레가 광주에 등장 할 때 어느 등에 업혀서 나타날 수 있었는가.
바로 '광주'라는 이름값이다. 오월학살의 죽음과 좌절을 이겨내고 역사적 승리를 한 그 영광의 핏값으로 미술축제판이 주어졌다.
이 오월광주의 이름값으로 조직되어야 할 전시회는
대체 어떠한 목표가 제시되어야 하고, 무슨 목적이 세워져야 하며,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우리들 모두 빤스 조차 벗어제치고 이 헐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마주서서 자세히 바라보자. '헝그리 정신'으로 다시 되돌아 보자면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미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마당에
무엇이 부끄러울 것이 있는가.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3. 전시회의 주인은 화가다.

광주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를 결국 3회 비엔날레 전시기획팀에게 떠맡겼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병을 대신 앓아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민간으로 모든 권한을 이양하라는 3회 전시기획팀의 열정은 '광주의 역부족'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아직도 광주비엔날레는 관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있는 자생적 힘이 부족하기만 하였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한 새로운 기획팀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커녕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 할 자격조차 미달된 면면들이었지만 그것보다도 자신들의 기획을 관철할 절대시간 마저 부족한 상태였다.
2회 전시회가 차기에 풀어야 할 과제로써 제출된 정체성의 문제는 허약하고 책임없는 형식적 말잔치인 심포지움이나 세미나 같은 말대접 한번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본전시 한국 대표작가들로부터 제출되었다.
허무맹랑하게도 이 작가들이 출품을 위한 최소한의 작품제작비를 지원해 주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차기 한국대표작가들에게 출품작품제작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장하고, 심지어 본전시든 특별전시든 간에 선정된 작가 중 광주지역 작가에 관한한  어떤식으로든 제작비 지원을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소위 작가라고 하는 놈들이 감히 공공연하게 돈 이야기를 하다니!!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너무나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선정해준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여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이 가여운 작가들이, 뭣이! 돈을 내놓으라고?
물에 빠진놈을 건져 내 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그러나 한국대표작가들이 요구하는 이 지원비의 문제는 단순히 제작지원비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의 이름께나 있는 작가들에 대한 비엔날레 당국의 지나친 환대의 여러 가지 비용 지출을 지켜보는 자국작가들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리고 비엔날레와 같은 거대 전시회 프로젝트 이전에 응당 사회적 문화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창작자에 대한 실제적인
지원에 관한 문제제기라는 것을 어느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기획팀을 비롯한 비엔날레 당국은 그들을 "돈에 미친 철없는 화가들"이라고 매도하였다.
아무튼 이 문제는 한국작가들의 사퇴파동으로 까지 이어지다가 비엔날레 당국이 "제도적 장치는 앞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라는 답을 내놓아 일단 무마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을 곰곰이 뒤집어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비엔날레가 애시당초 출범하기 전부터 열악하기만 한 한국의 작가들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지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열악한 토대에서 비엔날레의 출범은 당연히 빛 좋은 개살구였다.
비엔날레 출범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지만 작가들에게는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고, 유수 기업체의 미술과 관련한 각종 펀드는 비엔날레기금으로 집중되었지만 실제 작가들은 아무런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작가들의 초청을 위한 엄청난 경비의 지출 등으로 오히려 대다수 국내작가들이 누려야 할 몫을 외국작가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공분의 자괴감이 제작지원비의 문제로 불거진 것이었다. '동도서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급급한 마인드가 당연히 취해야 하는 자국작가들에 대한 대우라고 생각한다면 이해는 훨씬 쉬울 수 있다.
이러한 사태 이후 광주비엔날레가 작가들에 대해 과연 일정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문제는 광주현지의 대다수 지역작가들에 대한 광주지자체의 문화정책이 비엔날레를 하는 도시다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시속말에 개뿔도 없는 주제에 뭣뭐를 한다고, 자신의 집안 기둥뿌리는 썩어 이미 무너져 내리는 줄도 모르고 남의 집 대문의 헐거운 문고리를 걱정하는 격이다.
광주의 대다수의 작가들은 그 관심이 비엔날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현지의 작가들이 애써서 무시하는 비엔날레가 제대로 되어 갈 것인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다.
어쩌다가 이 무정한 세월이 엔터테인먼트한 전시기획자들이 권력을 잡고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러나 전시회의 주인은 어쨌든 간에 화가라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화가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비엔날레의 성공여부 이전에 광주라는 도시가 그들이 시민으로 있는 이 지역 미술문화환경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습관으로 길들여진 도시만이 외국의 작가들을 초청하여 전시하는 잔치도 베풀 자격이 있는 것이다.
광주에 거주한 어떤 화가의 이 한마디를 귀담아 듣자.
" 젠장, 비엔날레 행사 한번 할 돈으로 광주인근외곽 시유지에 창고형 스튜디오들을 짓는다면 작업실조차 마련하지 못한 모든 작가들의 취약한 환경이 단 한번에 해결될 수 있을 터인데......"


4. 다른 문제는 그밖의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광주비엔날레가 관광산업과 관련된 인프라를 이야기한다. 또 광주비엔날레와 문화산업이 어쩌구 저쩌구 떠벌리면서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펼친다. 거기다 말 못해서 죽은 조상이 있나,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문화산업은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주절거린다.  
물론 그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한 정신 빠진 말들에 대해 굳이 대답하자면,
'문화산업은 투자 없이 그저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호박덩어리 인가'

우리 광주가 그 동안 문화를 산업화 운운 할 수 있게
투자를 했던 일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그 얼어죽을 '예향'이라는 이름값도 광주라는 도시가 일정한 투자로 해서 얻어진 이름이던가.
그 동안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화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림 그리는 일이 죽는 일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했던 짓이 축적되고 모아져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배고프고 추웠던 익명의 예술가들이 등골 휘도록 노력했던 뼈아픈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들을 위해서 광주지자체가 과연 무슨 도움을 준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문화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이런 뻔뻔스러움이란 도무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의 등불에 게 잡자는 격이다.

또 속없는 사람들의 한마디,
'광주비엔날레는 문화산업에 대한 거대한 투자다'
이 멍청이 같은 말에 속지 말자!
광주에는 어느 도시보다도 외부 브랜드 백화점이 많다.
백화점이 많다고 해서 광주의 각종 산업이 발전하던가.
이 대형 유통업체들에 의해서 소비심리만 잔뜩 고양되고 있을 뿐 기왕에 있었던 이곳의 공장과 지방의 유통업체들 마저 문을 닫고 있지 않은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실제적으로 창작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 기획에 대한 투자란 외양의 허장성세한 성과를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차기 선거에 동원하기 위한 파시즘의 허망한 망상일 뿐이다. 이것은 저급한 속임수다. 그러나 이러한 저급하고 전통적인 속임수가 광주에서 통하고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첨단의 예술을 보여 주므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천만에 말씀!, 비엔날레에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보이는 상상력정도는 공중파 티브이만 켜면 수없이 작동하는 CF들 속에 모두 들어있거니와 인터넷 공간을 서핑 하다보면 만나는 것이 첨단의 상상력이요, 보이는 것이 영상에 의한 시지각의 체험뿐이다. 이미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의 체계는 카오스의 혼돈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광활한 우주적 혼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우주의 무한한 상상력을 체험하고 있다. 나는 이만한 상상력을 자극해 주고 있는 작품을 여태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난 적이 없다.

'세계의 미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야...'
웃기는 말씀, 언제는 우리들이 정보가 부족해서 예술을 못했나.
물론 흉내내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서구에서 하는 짓이라면 마치 그것이 지고의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인터넷은 하루 24시간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그 현지로 직접 당신을 데려다 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매일 인천공항에서 당신이 말하는 세계를 향해 이륙하고 있다.  

'그래도 비엔날레와 같은 고급한 세계화된 문화는 이곳에서 생산되어 수출되는 상품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서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이 불황에 재수있는 말씀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광주의 기아자동차가 외국에 자동차 파는 일에 광주비엔날레를 운운해서 더 많이 팔렸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팔리지 않을 물건이 비엔날레 덕분에 팔려 나갔다는 소식도 들어 본적이 없다.
더 나아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봉투에 광주비엔날레 상표를 벌겋게 새긴다 한들 그것이 외국에 수출될 리 만무하고,
담양의 죽세품에 비엔날레 상표를 솥뚜껑만큼이나 크게 새긴다 해서 더 많이 수출될 일이 없다.
이를테면 베니스 비엔날레 때문에 베니스의 산업이 대외신용을 더 높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시드니 비엔날레 때문에 시드니 관광을 계획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상파울로가 자신들의 비엔날레 덕분에 산업이 발전했다거나 외국에 물건을 훨씬 잘 팔아먹었다는 소식을 접해 본 적이 없다. 쿠바가 하바나 비엔날레 덕택에 관광객들이 더 몰려들었다거나, 혹은 미국이 '아이쿠, 피델 카스트로님께서 그러한 고급한 문화행사를 하시는 교양 있는 나라구나!' 라고 칭찬해주며 몇 십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규제를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정보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를 해오고 있는 도시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문화와 관광산업 및 각종산업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그 거대한 인프라의 토대 위에 볼거리의 문화로써 혹은 자신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덧대기 위해서 심어놓은 것이 비엔날레인 셈이다.
그들에게 비엔날레는 도시 전체가 무슨 생일맞이 행사를 하듯 그 도시의 승운을 거는 그러한 무지막지한 문화프로젝트가 아니다.
문화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어가다가 세월의 더깨에 따라 전통이 되는 것이지 뒷골목의 조직폭력배들 처럼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장을 쟁탈하려는 의식구조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베니스에서의 에피소드다.
광주의 부시장이 이곳 비엔날레 직원들을 데리고 베니스비엔날레의 시찰을 위해 방문하였다. 베니스시청에 들려 그곳의 관료를 면담했다. 그곳 관료는 '왜 만나자고 했느냐'며 시큰둥하게 물어 보았다. 광주 부시장 왈 '서로 비엔날레를 하는 도시이므로 우리 광주와 베니스가 자매결연을 맺자'
그러자 베니스시청의 담당자는 별놈 다 보겠네 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투로 '비엔날레와 우리 베니스시 당국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비엔날레의 일이라면 직접 비엔날레를 찾아가서 그 담당자와 이야기해라'라는 말만 퉁명스럽게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 버리더라는 것이다. 야속하게도.
다시 강조하자면 문화행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또는 무슨 엑스포와 같은 성격의 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당시 1회 광주비엔날레를 선전하는 각종포스터와 싸인판 그리고 거리의 곳곳을 뒤덮은 프랑카드들에 새겨진 헤드카피에서 비엔날레의 주체들이 이 행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한 단면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올림픽 광주비엔날레, 미술엑스포 광주비엔날레"

거듭 말하거니와 관객들 머릿수를 셈하는 그러한 계산은 이제 종료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술전람회인 비엔날레가 근본적으로 영화제와 그 성격이 다르고, 대중스타들의 라이브쇼와 다른 이유가 바로 그러한 점에 있다는 것이다


5. 뱀도 때에 따라서 발을 필요로 한다.

이미 4회 비엔날레는 그 순항을 위하여 닻을 올렸다.
주제도 서구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있는 것으로 보여서, 지난번 2회 비엔날레가 분명한 한계로 인식되었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컨셉을 다시 충실히 반복할 것 같은 태세다.
2회 비엔날레가 남겼던 '정체성'이라는 숙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어물쩡 넘어갔던 허물을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소리를 해야 하는 나의 입장은
원님 지나간 뒤에 나팔 부는 것 같아서 콩이야 팥이야 하며 이야기하는 내 입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새롭게 진용을 갖추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기획을 두고 이제 뭐라고 이야기 해보았자 별 필요가 없겠고,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전시회만큼은 뭔가 성공적인 무엇을 보여주겠지 싶어서 다시 희망을 키워본다.
누군가가 인류의 역사를 이따위로 이야기 한 것을 설핏 읽어본 적이 있다.
'희망의 좌절들이 모아지면 인류의 역사가 된다.'
저 말을 그저 믿기에는 우리 광주가 비엔날레라는 전시회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매번 내는 '수업료'가 너무나 비싸다는 점이다.
땅위를 기어다녀야 할 뱀에게 걸어다닐 수 있는 발이 있다면 야  그것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족을 붙이듯 굳이 이야기를 해보자면 다음 세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아시아 비엔날레로 선언을 하고 거듭나자는 대안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부류들에게는 지금 새로운 세기에 아시아가 갖는 위상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구의 문화적 관심사가 아시아에 더욱 쏠리고 있다는 것도 누차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
이 대안이 축소지향을 의미하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적극적인 확대의 또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서구의 입맛에 맞추어 우리의 간 쓸개를 모두 내 보이는 어설픈 흉내내기는 끝내 우리의 정체성을 확보 할 수 있는 그릇, 즉 형상적 대안을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시아 비엔날레로 축소지향을 했을 경우에 '그릇'을 만들어 내는 전시기획자의 태도가 정체성에 관한한 훨씬 능동적으로 되고 그 입지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작자들 역시 요즈음 미술권력을 쥐고 있어 하늘 높은지 조차 모르고 분기탱천한 '기획자'들의 훨씬 여유로워진 상상력의 도움으로 창작과정에 있어서 아시아의 변별력 있는 역사를 생각하고 그 문화를 다시 되돌아보는 새로운 상상력이 비로소 마음껏 발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도'는 당연히 '동기'에 담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서도'까지도 우리가 만든 그릇에 담아 낼 수 있는 넉넉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서구와 미주를 향해 우리는 목에 힘을 주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존심이 생긴다.
'아시아 미술의 모든 것을 보려거든 광주 비엔날레를 통과하라.'
이 경우, 세계화의 보편적 문화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저 세계적 국제적인 무엇에 미친 사람들을 위해 충분한 배려를 당연히 약속해야 한다.
이점은 특별전에 취급을 하면 된다.
작금의 국제미술동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특별전에 그들이 그토록 우상처럼 여기는 국제적인 유수 작가들을 선정하여 꾸리면 된다. 잘 만들어진 특별전 하나가 열 개의 본전시 부럽지 않다고 다독거리면 그들은 금방 벙싯 거리며 좋아 할 것이다.

둘째, 광주라는 이름 위에 앉혀 놓아야 한다.

광주라는 이름값으로 비엔날레가 추진되었다고 위에서 말했다. 이 이름값에 얹어진 오월광주의 정신적 의미항을 비엔날레에 적극적으로 총력적으로 전투하듯이 반영해야 한다.
그 동안 광주가 역사적 승리의 월계관을 쟁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세계의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죽음과 좌절의 그 뼈를 깎는 듯한 고통으로 광주가 그 깜깜한 역사의 밤을 지새우는 동안 그들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은 우리의 희망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되어 환대를 받았던 미술인들 가운데 이러한 역사를 가진 광주와 무슨 연관이 있었던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엉뚱한 손님들 모셔다가 허랑방탕한 잔치를 되풀이하는  이 정신나간 굿판을 걷어치우자. 과감하게 발로 차서 뒤엎어 버리자.
비엔날레를 광주정신에 충실히 답하는 미술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광주가 역사적 승리를 하는 것에 도와주었던 세계각지의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전람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파시즘에 의한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모두 그곳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그리고 지원하기 위해서 비엔날레라는 굿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도처에서 인간의 생명은 위협을 받고 있다. 환경 공해 독재 전쟁 기아 질병 소외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가고 있는 와중에 광주라는 이름의 핏값으로  치루어 지는 비엔날레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인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이 너무도 자명하고 단순한 물음 앞에서 더 이상 주저하거나, 엄살을 피우거나, 이상하게 되어먹지 않은 논리로 변명을 일삼는 주접기를 그만 그치자.
광주 비엔날레는 인권과 자유와 평등과 환경과 평화를 위한 본격적인 전람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는 그러한 일을 묵묵히 해가고 있는 국내의 엔지오단체와 여러 개인들과 연대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 국제적인 단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비엔날레가 되어야 한다.
미술지상주의에 폭~ 빠진 뭇 사람들은 이렇게 넋 나간 질문을 할 것이다.
'미술과 정치성은 분리되어야 지요?'
인류가 모름지기 지금까지 쏟아놓은 표현언어 중 정치성을 갖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병을 앓는 환자가 신음하는 것도 일정한 정치적 자기표현이며, 기분이 좋아 유쾌하게 웃는 웃음에도 이미 정치적 자기 표현이 담겨 있다. 순수니 뭐니 해가면서 기어코 자신의 예술행위가 순수라고 우기는 그 행위에 바로 더욱 은밀한 정치적 함의가 들어있다.
또 그들은 이렇게도 질문을 던질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가 그러한 목적성을 가지게 되면 예술의 가치를 폄하 하게 되어......어쩌구 저쩌구....'
그만, 웃기지 마라.
우리 광주는 그렇게 20년을 살아 왔고,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한반도 땅에 진정한 통일과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앞으로도 꼭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이것이 광주가 역사 속에서 맡아야 할 의무이며 또한 80년 오월에 원통하게 쓰러져간 전사들과 살아남은 우리들이  피로 맺어진 약속이다.

셋째, 비엔날레를 공중 분해하여 폐기처분해 버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비엔날레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광주현지나 한국미술의 상황이 광주비엔날레가 있기 전과
지금과 비교해 보자면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앞으로도 달라 질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대다수 광주 현지의 시민들이나 국내의 시민들은
광주 비엔날레가 망쪼 들어서 폐기처분 했다하여 애통터져 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없어졌다고 해서 삶의 질이 하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쉬워 할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전시회을 기획하는 것으로 이러저러한 전시회에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전시엔터테인먼트들, 즉 '전시거간꾼'들이나 잠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겠지만, 다시 그들은 곧 이 도시 저 도시들의 지자체 관료들을 찾아다니며 국제전시기획 세일 촉판에 들어 갈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를 폐기처분 한다는 것!
이카루스의 추락과 같다.
그의 추락과 민중 대다수의 삶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일이다.

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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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주 비엔날레는 문화적 '재앙'인가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4:08
조회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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