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호순신의 지리신법 역해본에 대한 발문
                                      홍성담


풍수학風水學이란 좋은 땅을 찾아 그 곳에 집을 지어 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산 사람이 머물면 주택이 세워져 그것을 양택陽宅이라 하고,
죽은 사람이 머물면 무덤이 되어 음택陰宅이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잖은 미물은 물론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까지도 모두
살아生있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풍수학은  시작한다.
그러므로 풍수학은 生命들끼리 서로 화해를 구하고 삶의 터전인 땅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상생할 것인가를 논한다.
이렇듯 우리들 인간이 숨을 쉬듯이 땅도 숨을 쉰다.
땅이 숨을 들이키면 지맥을 만들고, 숨을 내쉬면 물水이 흘러 간다.
이것이 좋은 기운風은 갈무리하고 나쁜 기운은 물水을 통해 흘려 보낸다는
풍수風水의 기본 원리인 셈이다.
동아시아의 풍수학이 이렇게 상생의 지리학이라면,
경도와 위도의 좌표로 만들어진 서양의 지리학은 호기심과 정복과 침략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근대적 개념의 서구 지리학이 한반도에 이식된 이후
풍수학은 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기복적인 술수로 타락해 버렸다.
90년대 들어서 일단의 젊은 풍수학인들의 노력에 의해 풍수학은 술사들의 미혹으로부터
잠시 건져 올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분단으로 한반도가 나뉘어 있듯이 매사에 기본적인 상식마저도 통하지 않는 우리 사회와
아직도 전쟁의 미망이 우리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불안감은 특히 특권층들에 의해 풍수학이 사술로써 복무하기를 강제하고 있다.
그 동안 젊은 풍수학인들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은
풍수를 일종의 사술이나 기복신앙으로 더욱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잖은 술사들의 미혹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
바로 김두규 교수가 역해한 본서 ‘호순신의 지리신법’이라는 풍수서를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잘못 인용하므로써 연유한다.
현재 사술화된 한국 풍수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조선 건국초기 풍수지리학 고시과목으로 청오경, 금낭경, 호순신, 명산론등 4대 과목을 언급하고 있다. 호순신은 단순히 지리학 고시의 필수과목으로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실제 풍수행위에서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게 된다.
조선실록에 풍수에 관한 기록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 전문지관들 사이에 호순신이 필독서였다는 점이 분명하다.

호순신은 송나라 때 상당히 발달한 사주 이론을 풍수지리와 습합시키고 있다. 따라서 직접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며 땅이라는 대상을 보지 않고도 그 땅의 성격을 판단함에 있어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방위에 부합되어야 좋은 땅이라고 본다.

즉,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기 나름의 사주 팔자가 있듯이 땅도 제 나름의 사주 팔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호순신은 풍수지리의 체계를 시간과 공간이론의 통합된 틀 속에서 인간의 삶의 터와 죽음의 터를 선정하고 그 가운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호순신은 일반적인 형세론에서 벗어나 이기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서술하고 있다.

우리시대 가장 탁월한 젊은 풍수학인 김두규 교수가 이 문제의 풍수서를 역해 한 것은
그 동안 젊은 풍수학인들이 쏟은 노력의 한계점을 돌파하기 위한 일이다.
단지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르키는 본능과 직관으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합리적인 이론적 체계에 의해서 분석이 가능해야 학문으로써 존재 이유가 있다.

동아시아 철학의 고전인 주역, 음양오행설, 이기론등의 체계로
경관을 사유하는 틀을 제시한 ‘지리신법’은 우리시대의 건강한 풍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적이다.  

김두규 교수의 풍수에 관한 열정이 조선왕조 4대 풍수서인 청오경, 금낭경, 명산론에 이어
호순신의 지리신법을 역주하여 완역 출간하게 된 까닭은
제3의 지리학이라는 풍수학을 아직도 서구 과학의 잣대로만 들이대 판단하려는
성급함에, 그리고 이기론을 재대로 해석하지 못한 뭇 술사들의 미혹함에 들이대는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김두규 교수는 나에게 풍수학의 스승이면서 귀중한 동료다.
그와 함께 한 수많은 현장답사에서 땅에 대한 맑고 투명한 그의 직관을 나는 항상 경험한다.   그리고 경관에 대한 그의 탁월한 논리적인 분석은 그의 성실성과 결합하여 우리의 ‘땅’에 대해서 희망을 확신케 한다.  

잔혹하리 만치 날마다 파괴되어가는 우리의 산천 어디에서 좋은 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명당이란 우리시대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한반도를 두쪽으로 갈라놓고 있는 DMZ에서, 작년엔 시화호에서, 어제는 새만금에서,
오늘은 부안 핵폐기장에서 풍수지리학은 우리시대에 ‘좋은 땅’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이 풍수학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무리일까.

나는 우리시대 젊은 풍수학인들과 김두규 교수의 풍수지리학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반드시 이러한 대답을 제시하고야 말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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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순신의 지리신법 역해본(김두규 번역 정리)에 대한 발문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3:32
조회수: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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