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그리스 땅에는 신들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이 함께 뒤엉켜 숨쉬고 있는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다.
신과 신의 전쟁, 신과 인간의 전쟁, 인간과 인간들의 온갖 전쟁의 역사가
일년 강우량이 겨우 500미리를 조금 넘는 강팍한 산야에 새겨져 있다.

그리스 남부에 있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올림픽경기의 발상지인 고대 도시 올림피아의 유적이 있다.
고대도시 올림피아 지역은 그리스 대부분의 땅과 달리 사철 물이 넉넉한 알페이오스 강이 알티스 평원을 휘감아 흐르며 한껏 풍요한 정경을 자아낸다.
울창한 크로노스 숲에 둘러싸인 분지에 제우스 신전과 그의 아내 헤라 신전, 그리고 올림피아 경기장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알페이오스 강에 놓인 다리를 지나야 한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여성은 경기장에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남성으로 가장한 여성이 종종 발각되면 이 다리에서 밀어 강으로 떨어뜨렸다. 이러한 수컷 우월 의식은 운동 경기가 다분히 전쟁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올림픽 경기들은 전투 행위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는 모든 기술을 세분화 한 것들이다. 창던지기, 칼싸움, 레슬링, 권투, 빨리 달리기, 높이뛰기등 각종 경기의 동작들은 모두 사냥이나 살인 행위의 연습에 다름 아니다.
경기장 출입에 여성을 거부했던 의미는 아마 남성들 끼리 모여서 하는 사람 죽이는 연습이나 전투 연습의 은밀한 속성이 그랬던가 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운동 시합에서는 남자보다 여성들이 먼저였다. 올림피아에는 제우스보다 훨씬 앞서 대모신 역할을 했던 헤라 여신을 기리는 헤라 제전이 있었는데, 축제 행사 가운데 처녀들의 뜀박질 시합이 볼만 했다고 한다.
파우사니아스는 ‘여행기“에
“시합에 나선 여성들의 나이는 고르지 않다. 달리기를 하는 처녀들의 모습은 이렇다. 머리카락은 풀어 내리고, 무릎이 깡총한 키톤 차림에 오른쪽 어깨는 젖가슴까지 드러낸다”
라고 기록했다.
또 우승한 처녀는 헤라 신전에 초상을 봉헌할 권리도 가졌다는데, 실제 헤라 신전의 기둥에서 눈 높이쯤에 네모 모양으로 그림을 끼울 수 있는 틀을 깎아낸 흔적이 있다.

여성들만의 평화로운 뜀박질 시합이 남성들의 전쟁 연습 시합으로 바뀌면서 인류는 어쩌면 세상을 절망 속으로 끌어 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남녀 차별의 시작은 남성 중심의 근육질 자랑의 궁극적 결과인 전쟁의 역사로 떠안게 되었을 것이다.

도시 국가들의 경제적 부는 지중해의 교역으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이곳에 전쟁의 역사가 숱하게 많다.
유적들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목이 없는 대리석 조각상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리스 땅을 침략한 군사들이 귀환하면서 평생 자랑할 무용담의 증거로 조각상의 목을 떼어 보듬고 갔다. 여느 전쟁에서나, 고대로부터 현재 이라크 전쟁터에 이르기 까지 ‘목 베임’의 이야기는 비극이다. 이것에 비하면 조각상의 목을 떼어 간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그리스 땅에선 신은 인간을 닮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인간은 신을 닮으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지기도 한다. 이 닮고 싶어 하는 것에 바로 신과 인간이 서로 화해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아무튼 그리스의 스포츠 제전은 판헬레나의 도시국가들 사이에 단합을 꾀하고 평화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열렸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합은 신을 닮고자 하는 인간의 소박한 노력이다. 바로 이것을 통해 신과 인간과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그 댓가로 우리 인간들 사이에 한 토막의 짧은 평화라도 얻어내었을 것이다.

헤라 신전 앞에 돌무더기 몇 개가 남아있다. 바로 이곳에서 올림픽 축제를 시작하는 성화를 받는다.
우리 인류는 피로 얼룩진 전쟁으로 새로운 세기의 새벽을 맞았다. 세계 도처엔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 기준이 무너지는 소리만 들린다. 환경과 인권과 평화가 급속하게 피폐해져 가고 있다.
이미 다분히 상업화로 찌들어 버린 이 스포츠 제전에 다시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 무망한 일이지만, 그러나 세상 현실의 절박한 마음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움켜지는 심정으로 이 제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새로운 세기의 첫 스포츠 제전을 알리는 이 불꽃은 ‘신과 신의 전쟁, 신과 인간의 전쟁, 인간과 인간들의 온갖 전쟁의 역사’를 성찰하는 불빛으로 타 올랐으면 좋겠다.
인류는  ‘불의 세상’에서 ‘물’을 찾는 마음으로 아테네를 바라보고 있다. (올림픽기념, 그리스 화필 기행 展/사비나미술관/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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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 - 신은 인간을 닮고 싶어 한다 [2004.5]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22 08:26
조회수: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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